인연! 그리하여 사람만이 희망이다

비디오 무비 2001년 6월호 기사

by utbia 김흥수



앞 페이지의 글을 쓴 2년 후, 어떤 모습으로 인연이 커 가는지 그 단면을 잠시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 편의 기사가 당시 상황을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기사를 써준 박범수 기자에게 감사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라는 선물 같습니다. 박 기자는 이후에도 한참 교류가 있었습니다. 다음 해엔 곽경근 감독님이 전주에서 영화를 찍을 때 촬영장을 방문하게 해준 멋진 사람입니다. 덕분에 스타 정우성님과 점심 자리에 함께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사인도 받았고요. 물론 나는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20년 동안 천대받으며 영화를 알리는 일을 했으니까요.^^




인연! 그리하여 사람만이 희망이다

비디오 무비 2001년 6월호 기사


웃/비/아를 만나기 위해 전주로 내려간 지난 5월 2일. 전주는 영화제와 대사습놀이 등으로 이어지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축제 같은 얼굴로 우리를 반긴 그와 정을 나눌 기회도 없이 서울로 올라온 지 이틀 후 그는 비빔밥을 사주지 못한 아쉬움의 메일을 보내왔다.



일과 영화 - 직업이 나를 속일지라도


웃/비/아 김흥수. 그는 비디오 대여점 주다. 그의 표현대로 영화로 밥을 먹고 살지만 배우나 감독처럼 결코 영화인에 끼워 주지 않는 직업. 그러나 이 직업이 없다면 우리들이 영화를 보는데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해야 하는 비디오 대여점주 말이다. 때문에 영화인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객사(客舍)바로 옆 바우와우 비디오 감상실 말고도 신세계 영상이라는 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다.


강원도 삼척 깡촌 장터에 어쩌다 광목을 스크린 삼아 낡은, 영사기를 돌리던 날에는 밥맛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다던 웃/비/아. 주말의 명화 때문에 누님의 잠을 설치게 하고, 극장에서 나누어 주던 명함 크기의 포스터를 모으려고 이 극장 저 극장 방황하고, 밤늦도록 영화를 눈에 담다가 토끼 눈으로 출근했던 씨네키드 웃/비/아. 그때 보았던 찰튼 헤스톤의 <혹성탈출>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의 <애수>와 죠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그리고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그런 영화들에 아예 파묻혀 지내고 싶었기 때문일까. 웃비아는 17년 동안의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답답한 삶을 접고 전주에서 대여점 주로서 여장을 풀어 버렸다. 그 세월의 두께가 8년이나 된다.


그 두께만큼 깨달은 점이 어디 하나둘뿐이랴. 처음 비디오 대여점을 차릴 때 품었던 청운의 꿈은 이미 흑운으로 변해 버렸다. 두 가지 의미에서 말이다. 그저 눈에 담는 일만으로도 즐거웠던 영화 보기가 돈을 위해 봐야 하는 괴로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비디오 대여점이 더 이상 경제적인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두 층을 사용하던 경원동의 대여점을 한 층으로 축소하는 공사를 보는 건 씁쓸하다.


그러나 웃/비/아는 프로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여점 주들이 엑서더스처럼 이 업계를 한숨과 함께 떠난 다해도 웃/비/아는 그 떠남의 가장 마지막에 있을 사람이다. 그만큼 대여점주로서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곳곳에 산재해 있는 Unfair(불공평한)한 법들이 비디오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추방해야 할 벌레 같은 존재로 볼 때는 그 자긍심에 심한 상처를 받은 적도 있지만 말이다. 지난 98년 여름부터 99년 겨울까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Unfair한 조치에 맞서 싸운 건 두고두고 아프고도 소중한 경험이다.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그를 도와주었던 국제변호사를 비롯해 그를 격려해 주었던 웹상의 수많은 친구들. 웃/비/아는 그런 자긍심으로 그의 가게를 찾는 수많은 왕에게 당당하게 요구한다. 우리 숍에 와서는 재미있는 비디오 하나 골라 주세요! 라는 습관을 고치라고. 음식점이나 옷가게에서는 좋은 음식, 좋은 옷 한 벌 달라고 하지 않으면서 왜 유독 대여점에서는 자신의 권리인 선택권을 대여점 주에게 넘겨 버리느냐는 말이다. 정 도움을 받고 싶으면 카테고리를 좁혀 달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보고 싶은 장르를 우선 선택한다든지 혹은 오늘 기분이 이런데 이 기분에 딱 맞는 테이프를 하나 추천해 달라는 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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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bia.com - 홈을 만드는 기쁨이 더 크다.


"30평 아파트를 장만하는 기쁨보다 인터넷에 홈을 만드는 기쁨이 더 크다.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녹이 슬지만, 인터넷에 지은 집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4월 26일 홈페이지를 오픈한 웃/비/아는 기쁨을 그렇게 표현했다. 웃비아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홈페이지는 영화와 비디오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그러나 많은 영화나 비디오 사이트가 앞다투어 올리는 그런 흔한 신작 소개는 없다. 한 발짝 물러나 보면 지나간 비디오도 신작이었고, 시간이 지났다고 그 내용이 바뀐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작신드롬에 걸려 있는 고객에게는 웃비아는 조언한다. "영화는 언제 봐도 새롭다!".


그는 이 홈페이지로 웹 빌리지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HTML이 선정한 이달의 베스트 웹사이트로도 선정되었다. 토마가 예수님의 상처를 손에 대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믿었듯이 웃/비/아는 자신을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컴맹이었던 그가 인터넷에 접속한 동기도 바로 이 호기심 때문이었다. 접속한 후 깨달은 두 가지. 인터넷은 여행의 욕망을 대신해 주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고, 인연 만들기가 가능한 매우 유익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웹상의 글이 비록 단편적이긴 하지만 그 파편을 통해서도 정이 충분히 싹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가 홈페이지를 만든 건 그동안 그의 소맷자락을 스쳤거나, 혹은 대화를 나누었거나, 혹은 앞으로 만나 엮게 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의 인연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웹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썼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저와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여행 - 사람이 가장 인상 깊다


어떤 이는 비우기 위해 떠나고 어떤 이는 채우기 위해 떠난다. 웃/비/아는 여행을 좋아한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웃/비/아.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에 실습생으로 S식품에 근무하면서 17년 동안 서울, 춘천, 원주, 제천, 광주, 순천으로…. 그렇게 역마살 아닌 역마살에 고생해야 했지만, 그 타의적인 역마살을 전주에 묶어 버렸다. 장돌뱅이처럼 노곤한 삶의 짐을 완전히 풀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되어 버린 예향 전주에서 말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생을 진열장에 쟁여 놓고 삶을 대여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역마살이 도진 걸까? 이번에는 한국도 아닌 일본, 유럽과 미국 그리고 최근에는 인도를 다녀왔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말이다.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었다. 불혹의 고개를 오르면서 문득 생각해 보니 남은 건 훌쩍 커버린 자식과 생계의 수단이었던 비디오테이프와 감당하기 벅찬 은행 빚…. 정작 자신을 위해 무얼 투자했던가? 그의 표현대로 가진 건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아직은 튼튼한 두 다리.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서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을 채우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웃/비/아는 정체된 삶을 열정으로 요동치게 하려고 떠났다. 하나의 삶을 비우고 다른 삶을 채우기 위해 떠났다. 그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국땅을 여행하면서 어느 곳의 무엇을 가장 인상 깊게 눈에 담았을까? "전부 다요!"라는 그의 대답은 듣는 이를 잠시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래도 한 가지만 꼽아 달라고 채근하면 그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다시 사람이다. 웃/비/아는 저 멀리 가는가 싶다가도 결국에는 부메랑처럼 사람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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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교류한다는 건 깊어지는 과정?


복 중에는 인연 복이 제일이고 오복의 뿌리도 인연 복에 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는 옛사람들의 말이다. 사람과의 인연을 무엇보다 제일로 치는 웃/비/아. 눈이 파랗든 피부색이 검든 그는 상관하지 않고 친구가 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여행 중에 웃비아의 옷을 스쳤던 파란 눈의 사람들 그리고 검은 피부색의 사람들. 돌아와 여장을 풀고 그냥 잊어버리면 단지 서로가 몸을 부딪쳤을 뿐이지만 교류하면 소중한 친구로 곁에 남는다. 교류한다는 건 깊어지는 과정이다. 답장이 오면 정확한 독해를 위해 영어사전을 뒤적이고 또 뒤적이고 하면서 말이다. 수십 장의 편지지를 구기고서야 겨우 하나 완성되는 편지. 그렇게 보낸 영문 편지가 두 해 동안 수십 통에 달한다. 그러나 밀려오는 영문 편지를 짧은 영어로 어떻게 일일이 감당하랴. 그렇다고 한 번 엮은 인연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 웃/비/아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그걸 대신했다.


e-mail의 즉각성이 정성과 기다림의 즐거움이 배여 있는 종이 편지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시대에 맞는 인연 만들기가 아닌가. 웃비아의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논두렁, 메주압바, 이칸도, sally ,chris.....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헤아리며 불러도 다 부르지 못할 수많은 사람. 단 한 번이라도 웃비아의 홈페이지를 들른 이들에게 그는 '인연'이라고 말한다. 웃/비/아는 최근 난민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아프리카 케냐의 역사 선생님인 와찌라씨를 친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웹상의 친구들에게도 그 친구를 소개했다. 좋은 인연을 만들라며 말이다. 웃/비/아는 그 검은 피부 친구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심심할까 봐 비디오테이프를 일주일에 서너 개씩 빌려주었다. 그 친절이 목각인형으로 돌아왔다. 인연 만들기를 취미로 일삼는 웃/비/아는 말한다. 인연은 자연스럽게 엮어지기도 하지만 만들기 나름이다. 십년지기를 두고 여행 중 잠깐 만난 사람과 오랜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그게 인생의 묘미가 아니겠냐고. 그리하여 그는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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