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T/C의 여행일기

아마추어 여행가의 프로 입문기

by utbia 김흥수

아마추어 여행가의 프로 데뷔 전.

첫 해외 인솔의 긴장감을 함께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여행 후 돌아와 바로 쓴 글이라 생생합니다.




04. 초보 T/C의 여행일기 2005년 5월


[물러설 자리가 없다]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단체 12명, 개인 6명. 총 18명의 단출하지만 화려한 색깔의 팀을 이끌고 첫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확정서 한 장 달랑 받고 브리핑받은 시간은 한 시간 미만. 니 신세 니 알아서 하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생깁니다. 누구든 처음은 있는 법.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큰 짐으로 내리누릅니다. (설명회에서 저를 북유럽 전문가로 소개했답니다. 고객이 불안해할까 뻥을 튀겼다는데 밟아보지도 않은 땅을 가면서 아는 체해야 한다는 사실. 이건 저와 너무 안 맞는 일입니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듯 저 역시 표가 나서 거짓말을 못 합니다. 헥헥.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새벽 7시, 전주 공설운동장 앞에서 전용버스로 단체팀 12명을 태운 후 출발. 10시 30분, 인천 공항 H투어 전용 창구 앞에서 개인 출발 6명 합류, 북유럽 담당자에게 항공권, 경비, 고객의 간단한 신상명세서를 받고 출발 준비 끝.



[출발부터 문제 발생]

북유럽 담당 Mr·백이 대한항공 카운터로 가서 티켓팅을 시작하는 동안, 뒤에 처진 분들을 안내하여 14번째 짐을 부치는데 항공사 직원이 짐을 열심히 프랑크푸르트로 부치고 있습니다. 케케겍! 어이없음. (당연히 코펜하겐으로 부쳐야 할 짐을….) 이렇게 되면 14명은 독일에서 경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출국하여 짐을 찾고, 다시 입국 수속한 다음 짐을 또 덴마크로 부쳐야 합니다.


항공사 카운터에 상황 설명을 하고 앞에 부친 짐을 전부 코펜하겐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난감…. 들어간 짐이 많아서 일일이 찾기 힘들다는…." "그래도 해주세용. 출발 직전 게이트에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1시간 후, 최종 전화. "11개는 확인했는데 3개가 분명치 않습니다." 아이고, 두야~~. 짐이 하나라도 빠지면 그분은 며칠간 손가락 빨아야 하는데…. 11시간 반 비행 내내 머리가 복잡합니다. 이 사람들을 몽땅 끌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국한 다음, 짐을 확인하고 다시 재수속해야 할까? 아니면 대한항공을 믿고, 코펜하겐에 가서 짐을 찾은 후…. 혹시 한 개라도 안 오면…. 어쩌지? 어쩌지? 자~ 운에 맡겨 봅시다. 어떻게 되겠지요. 고객들이 알면 불안해할까 봐 입 다물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유유히 경유자 게이트를 통과하여 코펜하겐행 비행기를 갈아탔습니다. 머릿속엔 온통 짐 세 개의 행방이 가물가물할 뿐이었지만….



[두 번째 문제 발생]

프랑크푸르트-코펜하겐 구간 국제선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저녁을 대체하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 항공이 경비 절감을 이유로 5월 1일부터 기내식을 폐지했답니다. 0.9L 물 한 병에 3유로(4,000원) 컥컥. 일단은 목마르다는 고객에게 물과 음료수를 한 병씩 사드렸습니다. 우짠디야…. 밤 10시에 공항 도착해서 짐 찾고 나면 적어도 10시 반. 호텔 가면 11시. 그럼 저녁은 그대로 굶겨야 하나? 이것도 어떻게 되겠지…. 일단 가보자고.


[세 번째 문제 발생]

코펜하겐 공항, 다행히 모든 짐이 코펜하겐 공항에 잘 도착했습니다. 휴우~. 그런데 마중을 나오기로 한 기사가 안 보입니다. 이게 뭐야? 나는 어떡하라고? 현지 랜드에 전화를 해도 동전만 먹고 연결이 안 됨. (전화 정말 나하고는 안 친합니다) 장시간 비행에 지친 고객을 공항 안에 가두어 두고 터미널 3 투어버스 주차장을 찾아갔지만, 여행사 마크를 부친 버스는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허탈~~. 다시 전화 재시도…. 또 꼴까닥. 안내 데스크로 뛰어가서 이 전화 왜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앞에 붙은 43을 빼고 걸레요. 그건 지역 번호라고. 그럼 동전을 뱉어야지 왜 먹냐고? 또다시 환전. 드디어 연결. "기사가 한 시간 전부터 공항에서 기다리는데요." “근데 왜 안 보여?” 이번에는 공항 안을 뒤지기 시작. 멀때같이 키 큰 넘이 하얀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들고 어슬렁거리는 폼이 좀 이상하여 접근, "익스큐즈미. 혹시 H투어라고 써진 종이 든 기사 혹시 못 봤니?" "난 데요" “오 마이 갓. 너 어디서 기다렸어? 왜 버스에 인식표도 안 붙이고 이걸 들고 다녀?” 주먹으로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반가워서 그 마음도 눈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네 번째 문제 발생]

오늘은 성심 강림 대축일! (10년 전 네덜란드에서 이날 된통 당했는데 또 그 날) 당근 공휴일. 비교적 문을 늦게 여는 식당들마저도 오늘은 완전히 문을 닫았습니다. 굶으라는 팔잔가벼~~. 일단 손님들에게 방을 배정하고, 다시 방으로 찾아뵙겠다고 인사. 11까지 연다는 피자집에 전화했더니 그곳도 클로즈. 에라 이판사판.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뜨거운 물 좀 끓여 달라고 사정. 3유로짜리 물 10 병 사고, 비상식량으로 준비해 간 컵라면 들고 9개의 방문을 두드리며 물을 나누어 드리고, 배고프신 분은 컵라면이라도 드시라고…. 헥헥. 다행스럽게 18명 중 3분만 컵라면을 주문하더군요. 만약을 대비하여 준비해 간 컵라면은 6개뿐이었는데…. 이렇게 기나긴 첫날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PS ; 호텔 바에서 한 병에 4,000원짜리 물을 사면서 눈에 익은 에비앙 생수를 두고 기왕이다 싶어 덴마크 브랜드 “칼스버그” 사의 물을 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손님들이 물이 왜 그러냐고 항의를…. 컥컥 이유를 아시지요? 유럽에는 두 가지 물을 팝니다. 하나는 일반 생수 또 하나는 탄산가스가 든 스파클 워터…. 하하


04-01-2.jpg 북유럽,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초보 인솔자로 가이드에게 기선 제압을 당하면 안 됩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체면 유지를 하면서 일을 매끄럽게 진행시키려면 많이 알던가, 직위가 높던가, 품위가 있어야겠죠. 가장 좋은 방법은 직권남용입니다. 여행사의 이사라는 직함은 그런대로 써먹을 만했습니다. 아침 식사시간에 가이드와 첫 미팅. 웃비아의 최대 장점인 솔직함과 함께 약간의 거들먹거림을 섞었습니다. “이 코스 처음이다. 회사에 중요한 팀이라 동행했으니 모든 사항을 먼저 보고하여 내가 고객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눈치껏 잘 처신해 달라.” 예~~ 한 도시, 한 도시 투어가 끝나 다음 가이드와 인수인계될 때까지 이 부탁은 아주 잘 들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융숭한 대접도 받았지요. 단, 품위유지비로 가이드 팁이 좀 과다 지출되었다는 흠이…. 헤헤. 역시나 나와서도 돈은 저랑 별로 안 친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자~~ 이제부터는 초보자의 긴장감은 사라졌습니다. 고객들이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분실, 도난, 건강상 탈이 나지 않으면 별문제는 없겠죠. 비상약은 두둑이 준비해 왔고, 유럽에선 여권을 제시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으니 안전을 위해 몽땅 걷어서 가방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고객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돕는 마음만 있으면 이 업무가 그리 생소하지 않습니다. 벙어리가 입만 열지 않으면 농아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이 이후는 모두 생략하고 결과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10년간 여행 인솔을 하면서 이때만큼 손님들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전해졌나 봅니다. 지금도 이날을 잊지 않고 일하려고 노력합니다. "고객 편에 서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