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 사랑하는 이에게
런 던 97. 4. 16
무사히 도착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것에 아주 만족한다.
말로만 듣던 London! 지금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
오늘은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렸더니 다리가 아프다.
긴장해서인지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앞으로의 여정이 너무 기대된다.
그만큼 당신에게 미안하고.
다시 쓸게….
그리니치 97. 04, 18
3일의 London 탐험을 무사히 마쳤다.
아쉽지만 이제 스코틀랜드로 떠나야 한다.
지금 타고 있는 도크랜드 경전철은 운전사가 없는 아주 귀엽게 생긴 열차다.
조금 전 그리니치에서 황당한 사건이 있었지만 나중에 전해줄게.
템스 강을 물밑으로 걸어서 건넜다. 신기하지?
그냥 터널이야…. 지하도!
런던은 너무 우리에게 잘 알려져 낯설지 않다.
왠지 예전에 왔던 곳같이 친근해….
넓은 공원과 잔디가 너무 부럽다.
벌써 보고 싶다. 함께하고 싶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지.
세인트 폴 성당에서 성공회 예절에 따라 미사를 드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촛불을 켜두었다.
에든버러 97. 4. 19
첫 여행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아직 얼떨떨하다.
지난 3일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하긴 어렵고,
아무쪼록 여행 잘하고 있다.
국제 미아 될 이유가 없을듯하니 염려하지 마라.
앞으로 남은 날도 기대되고, 또 기대 이상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불한 비용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돌아갈 수 있으리라 본다.
벌써 보고 싶어 진다면 낯간지러운 말이 될까?
수고 많을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만 든다.
인버네스 97. 4. 20
흔들리는 차 안에서 쓴다.
서울 - 홍콩 - 런던 - 에든버러 - 글랜 코우 - 네스호수 - 인버네스.
이제 에든버러로 돌아가 밤 버스를 타고 새벽에 런던을 도착한다.
엽서의 그림은 스코틀랜드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이곳의 경관과 분위기는 도저히 사진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브레이브 하트와 롭로이의 고장. 내가 좋아하는 스코치 위스키의 원산지.
유럽에서 물을 사 먹지 않는 지역이다.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더군.
이곳 사람들은 때가 안 묻어서 꼭 천사들 같다.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에 불과하지만 벌써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체험했다.
여러 사람이 도와주고 있어 생각보다 쉽게 여행한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나보다는 당신과 집 걱정이 앞선다.
정말 모두 잘 있겠지? 벌써 보고 싶구나.
P.S : 영준아! 솔아! 엄마 말 잘 듣고 모든 일에 도움을 주기 바란다.
브르헤 97. 4. 21
서울을 떠나 올 때 시계를 1시간 늦추고 홍콩에서 다시 8시간을 늦추었다.
6일간의 영국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막 벨기에 오스탕트에 도착했다.
이제 시계를 1시간 다시 앞으로 당겨야 한다.
조금 전 런던을 떠난 열차가 람스게이트 항구에 도착했고,
비행기처럼 날렵한 배를 타고 대서양을 2시간 만에 횡단했다.
이제 어설픈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이상한 곳에 도착했다.
못하는 영어가 그리워지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지금 브뤼셀을 향해 달리는 이 기차는 비행기보다 더 좋다.
좋은 경험 혼자 하여 대단히 미안하다.
나의 여정에 성원을 보내주길 바라며….
추신 : 이곳은 브뤼셀, 굉장히 큰 궁전 안, 우체국을 찾아서 겨우 부친다.
브뤼셀 97. 4. 22
이곳 날씨는 런던보다 더 스산하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브뤼셀은 큰 도시다. 하지만 서울에 비하면…….
오스탕트부터 산을 보지 못했다.
약간 언덕에 있는 브뤼셀은 현대화되어있지만 곳곳에 중세가 그대로 묻혀있다.
어느 정도 크기일까? 전주보다 큰 것은 확실한데 규모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현대식 건물은 서울에 버금간다.
시청사를 기점으로 관광하기 좋은 도시다.
로테르담에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반나절 보고 떠난다는 것이 아쉽다.
영국에 비해 사람들이 쌀쌀맞고 영어가 이상한 느낌이다.
안내판도 영어가 아니라 낯설다.
TRAM(전차)을 타고 몇 군데 더 들러야지….
생 미셀 대성당과 그랑 플라스 광장은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오줌 누는 아이는 찾기 힘들어 포기했고.
정말 쪼끄만 하여 실망한다더라. 그 말에 위안을 삼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