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 사랑하는 이에게
암스테르담 97. 4. 25
3일간 산을 한 곳도 보지 못했다.
물이 육지보다 높다는 말이 실감 나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말로만 듣던 풍차도 보고, 튤립 꽃밭도 보았다.
그림 같은 곳에 직접 와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유럽 사람들은 정말 한가하고 편안해 보인다.
같은 땅에 살면서 우리는 왜 그리 쫓기는 걸까?
며칠간 돌아본 유럽은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만 유럽 땅에 태어나는 것 같다.
그때그때 감흥을 글로 옮겨 놓고 싶지만, 마땅히 쓸 시간이 없다.
떠나기 전에 사전 준비를 너무 완벽하게 하여 우리나라를 여행하기보다 쉬우니 걱정하지 마라.
아는 것만큼 보인다더니 너무 많이 알아서 오히려 감흥이 떨어질까 걱정이다.
전화 거는 방법에 익숙지 않아 자주 연락 못 해 미안하다.
걱정할 일은 없는지? 늘 집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퓌 센 97. 4. 26
성 하나를 보려고 먼 길을 왔다.
바바리안 알프스 자락의 풍광만으로도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구나.
참 대단하다. 인간의 상상력과 가능성에 찬사를 보낸다.
이 성을 완성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물과 땀을 흘렸을까?
산허리에 이런 구조물을 만드는 인간의 노력이 무서워진다.
엽서가 실물보다 낫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실제로 봐도 대단히 그럴듯하다.
무엇보다 자연과의 절묘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이 성을 짓게 된 계기와 그 후의 일을 알고 보면 참으로 인생이 무상하다.
이 또한 교훈이 아닌지….
하이델베르크 97. 4. 28
3일 동안 독일을 본다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여행이다.
동화 속의 왕자가 사는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가장 높은 쾰른 대성당,
로렐라이의 전설이 있는 라인강, 황태자의 첫사랑을 그리며 하이델베르크를 돌아 지금 뮌헨으로 향한다.
동구권을 돌고 뮌헨은 하루 더 머물면서 돌아보면 4일로 독일 여정은 끝이다.
이곳은 다음 여행 때 당신 손을 잡고 다시 오도록 하자.
북쪽의 베를린과 함부르크를 지나 스칸디나비아 3국을 다녀오는 코스를 계획해야겠다.
선진국의 진면모를 곳곳에서 느낀다.
독일 사람들은 어감과 달리 무척 소박하고 친절하여 정이 간다.
어젯밤 동물원 옆 유스에서 때아닌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피곤해…. 도착할 때까지 눈을 붙여야겠다.
부다페스트 97. 5. 01
30분 후면 비엔나 역에 도착한다.
당신과 함께하지 못한 마음이 날이 갈수록 저려 온다.
한 곳이라도 더 보려는 욕심에 이제야 pen을 들어 정말 미안하고….
계속되는 여정을 정리하고 다음에 맞을 도시를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하여 가끔 실수를 하지만 그것이 곧 경험이라 내 몸에 여행의 덕을 쌓아 가고 있다.
지난 3일도 많은 일이 있었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를 놓고 저울질했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마운 분을 만나 신세도 지고….
여행은 무엇을 보느냐보다 누구를 만나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부다페스트는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는 도시다.
벌써 5월이다.
집 떠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 체감 시간은 며칠밖에 안 된 것 같다.
기다리는 너는 하루가 여삼추겠지?
잘 참아 주면 돌아가서 다 보상 하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