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알고 싶다면, 일단 가만히 쳐다보자.
만약 다양한 초능력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까? 개인적으로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리스트 최상단에 올려놓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라도 남들보다 먼저 알 수 있다면 현재 영위하고 있는 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을 자신이 있다.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의 세계에서 핫한 회귀물이라 불리는 장르도 과거로 돌아와 미래를 아는 자에 대한 상상을 그려내고 있다. 간단하다.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으면, 현재 그에 대비한 포지션만 구축하면 돈을 버는 것은 쉬운 일이 된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웬만한 다른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그 부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일을 아는 것은 투자의 세계에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가질 수 없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류는 예로부터 앞 일을 알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추구해 왔다.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구름과 동물들을 관찰하였고, 다가올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 하늘의 움직임을 연구해 왔다. 수학의 통계학도, 과학의 모델링도 결국은 예측의 영역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방법은 경제지표들을 비롯한 다양한 통계치이다. 수출 통계를 비롯해서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실업률 등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뿐만 아니라 유가와 같은 개별 상품의 가격 상승률, 기업의 매출액 성장률, 아파트 가격 등락률 등과 같은 미시적인 통계치까지 수많은 단서들이 미래를 엿보기 위한 도구들로 쓰인다.
그렇다고 단서들을 찾았다고 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있게 될까? 그건 또 다른 얘기이다. 퍼즐 조각들을 한데 모았다고 해서 무슨 그림이 나올지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조각들을 맞춰 봐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난관에 부딪힌다. 이 퍼즐은 맞추는 방식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퍼즐이다. 그래서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얻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한 가지 능력을 더 가지고 와서 도움을 받는다. 정확한 설명서는 아니지만 어떤 그림이 나올지 대략의 형태를 잡아놓은 큰 그림을 미리 깔아 둔다. 우리는 그것을 통찰력이라 부른다.
통찰력. 영어로는 Insight라고 번역되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통찰력을 '사물이나 현상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꿰뚫어 보는 능력'이라 정의하고 있다. Insight는 웹스터 사전에서 'the ability to understand people and situation in a very clear way' 또는 'an understanding of the true nature of something'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합하자면 통찰력은 '대상의 본질을 보는 능력'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혼동하면 안 되는 점이 있다. 통찰력은 말 그대로 보는 능력이지, 대상을 재단하고 받아들이는 기준이나 도구가 아니다. 다르게 얘기하면, 통찰력은 안경이지, 프레임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게 사용되는 일이 많다.
대상이나 현상을 순수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나의 주관을 잠시 뒤로 물려야 한다. 말 그대로 관찰이라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양이에게 있어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쓰다듬어 줄 때마다 가르릉 거리며 눈을 감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음에도 쓰고 다니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옆 사람이 기침할 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불편한 표정과 코로나 팬데믹에서 생겨난 트라우마들을 관찰해야 한다. 쉽게 우리 집 고양이가 날 좋아해서 그렇다고 여기든가, 사람들이 아직 잘못된 정보로 불안해해서 그런다고 간단히 나의 주관을 섞어서 판단해 버리면 통찰력으로 발전할 수 없다. 고양이 전체에 대한 행동양식을 연구할 길이 없어지고, 코로나 팬데믹이 사람들의 행동양식 근간을 뒤흔든 변화를 알아챌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를 그려낼 수 있는 방법 또한 발견할 수 없다.
그럼 나의 주관은 언제 필요한 걸까?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기준은, 나만의 사고체계는 중요하지 않은가? 세상을 통찰하는 능력과 단단한 사고체계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니다. 상호보완적이지도 않다. 통찰력이라는 기반 위에 사고체계라는 건축물을 세워야 하는 관계이다. 세상의 본질을 볼 수 있어야 나의 사고체계는 더욱 오류가 적어지고, 견고해진다. 주식시장이 왜 이렇게 흐르고 있는지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내 주식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잔 파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국내 통화정책에 대한 본질을 꿰뚫고 관찰할 수 있어야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때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안 오를 수 있음을 판단할 수 있다.
서두에 얘기한 미래를 예지 하는 능력에 현실적으로 가장 가깝게 다가간 것이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도달한 이는 많지 않고 그들 역시도 완벽하지 않다. 필자 또한 얻지 못했고, 다만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팩트를 체크해보려 하고 가공된 데이터가 아닌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를 찾아보고 이를 토대로 하나씩 살펴보려고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저는 잘 모릅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엔 퍼즐을 어디에 맞추면 될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초능력을 얻기를 고대하면서 수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같이 해보자.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째려보기보다는 쳐다보기를 먼저 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단단한 땅 위에 서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