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반작용으로 미국 및 유럽에서 인종 차별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 폭증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인종과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질적 위기감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 소련 붕괴 이후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시각에서는 단기간에 G2 국가로 성장하며 '중국의 꿈(中国梦)'라는 구호 아래 지역 패권을 넘어 글로벌까지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중국에 상당한 불쾌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에서 선언한 대로 현재의 양강 G2체체를 넘어서 2049년에는 미국을 앞지를지도 모를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추정도 현실적 공포입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된 데는 독재적 정치 리더십을 가진 양국의 정치인이 대중의 인기를 위해 경제 전쟁으로까지 비화시킨 것입니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지켜보기만 하던 전 세계도 이제는 누구 편에 서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혼란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 중국몽은 미국의 아메리칸드림에 대응해 만들어진 정치 구호에 가깝지만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여 엘리트 공산당 독재를 합리화시키고 민주주의 후퇴를 불러와 우리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정치 어젠다입니다.
아시아인 차별과 혐오는 이미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약 백 년 전 2차 세계 대전시 일본을 생각해 봅니다. 동양의 작은 나라로 업신여겼던 일본에 기습을 당한 후 미국은 당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서부지역에서 거주하던 일본인들을 강제 수용소에 격리하는 포고문을 발표합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잡아다 강제 수용소에 넣은 것을 비난하지만 사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인종 차별을 넘어 무력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니 도덕성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면 미국은 지금이라도 중국인들을 잡아다 강제 수용소에 집어넣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인종 차별이 국가의 공권력으로 확장된다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비극입니다.
서구권에서 정부 주도의 아시안 인종차별이라는 비극을 잉태시켰던 장본인 일본은 반성할 줄 모르고 종전 후에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한번 더 까불게 됩니다. 1980년대 뉴욕의 중심 부동산을 싹쓸이하던 일본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참다못한 미국은 일본을 불러다 일본 엔화의 환율을 폭등시키는 플라자 합의를 체결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의 버블 경제는 더욱 커져가다 순식간에 터지게 되어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제를 모르고 설치다 혼난 일본의 사례를 보고 중국도 배워야 하는데 역사에서 배우기는 쉽지 않은가 봅니다. 미중 갈등으로 우리까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미국 및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아시안 혐오 대상에서 중국인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다는 사실이 우울합니다.
과거 트럼프 집권 혼란의 4년 동안 미국의 제재에 대항하는 중국의 대처는 자신의 논리에는 합당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 입장에서는 반중 감정을 정말 급격하게 고조시킨 악수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중국의 시장이 크고 포기할 수 없더라도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발전해 나가기는 불가능합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미국에 적대적인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자원 및 인프라 개발에 투자를 받은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경제적 식민지화된 관계로 중국 편에 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아무리 경제 원조를 미끼로 유혹한다 하더라도 자국 중심의 이기적 정책만을 추구한다면 진정한 동맹을 만들어 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세계의 패권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에서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로의 이동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혹자는 미국 및 유럽에 비교해 기초 과학 기술 부족의 한계 등을 이야기 하지만 인구, 자본, 정치가 삼위일체가 된 중국은 시너지 효과로 인해 언젠가는 장벽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우리만 해도 불과 십수 년 전에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여겼던 일본과의 소재 기술 격차를 따라잡은 사례가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정치적 목적의 보복 차원에서 반도체 기초 화학 재료의 한국 수출 제한으로 타격을 주려 했던 일본을 기업과 정치권이 합심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함으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기술 격차 극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경제와 안보 두 방면에서 줄 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한국의 수출 비중은 대략 중국이 25.9%, 미국이 14.5%로 중국과 미국 어느 한편에 서기 참 애매한 상황입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중국의 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의 수출도 동일하게 증가하여 우리의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일본, 인도, 호주를 포함한 쿼드(Quad) 동맹을 만들어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이에 대항하여 동맹국을 모으고 있으니 총만 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이미 전쟁이 시작된 상황입니다.
경제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 명암도 순환 주기를 거치며 잘 나가는 시기가 있으면 반드시 어려워지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여야 하는데 주도권을 가진 선택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즉 미국의 요청에 의해 미사일 방어망을 자국 내에 설치하거나 혹은 홍콩이나 신장 위구르에서 자행되는 인권 탄압에 침묵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비겁한 침묵이 아닌 미국과 중국 양국에 무언가를 제공함으로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해답은 스스로 얻어야 합니다.
정리하면 현재 폭증하는 아시안 인종 차별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일 텐데 중국의 무리한 팽창 정책으로 우리도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주변의 거대 국가에 굴복하거나 항거했던 나라는 역사가들의 평가에 차이가 있습니다. 고구려와 신라가 한 예가 될 것입니다. 비록 당장은 어렵더라도 독자적 주체성 확립은 중요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미국과 중국이 우리에게 매달리게 만들 정책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시도해 본 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