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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n 03. 2022

오늘 걱정은 오늘로, 나의 해방 일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군대를 막 제대한 청년에게 가장 두려운 공포 중에 하나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직 부대 막사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강제된 자유의 억압은 인간에게 항상 해방을 꿈꾸게 하고 억압된 현실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마음속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게 한다. 


시간이 흘러 사회인이 되면 해방이 되나 싶지만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간다. 매일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의 악몽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돈이 없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자영업자는 갑자기 일거리가 떨어져 매출이 사라지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악몽을 꾼다. 세상은 두려움이 펄펄 끓어 넘치는 도가니 속에 인간을 집어삼키려 한다. 


학생이었을 때 나의 두려움은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시험이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꿈이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 후에 공부에 대한 걱정 없이 지내는 좋은 시절이 오나 했지만 조직 생활에서 경험하는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은 더 큰 실패에 대한 자괴감으로 마음속에 낙인찍어졌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면서 타인과의 치열한 경쟁 없이 스스로 하는 공부는 오히려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러나 나태해지는 자신을 이기기 위한 경쟁은 남과의 승부보다 훨씬 힘들기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박사 수료 후 아직까지 졸업 논문을 쓰지 못하고 있다. 논문을 쓰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견딜 마음이 스며들면 언젠가는 할 수 있으리라 마음을 고쳐 먹는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삶은 무료한 생활에 즐거움을 준다. 귀촌을 준비하기 위해 작년에는 <조경 기능사>를 취득하고 수목과 화초에 대해 공부해 보았다. 어머니의 품처럼 언제나 아낌없이 베푸는 자연 속에서 삶에 대한 걱정은 작디작은 해바라기 씨만도 작아지는 듯하다. 매년 광대한 평야에 피는 이름 모를 꽃 앞에서 내일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고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년이 되면서 결과를 얻기 위한 공부가 아닌 즐거움을 위한 공부가 많아져 간다. 은퇴 후 작은 나무 위의 집을 지어 보고 싶어 건축에도 관심이 생겼다. 무심히 지나쳤던 무수히 많은 철근 콘크리트 빌딩 숲에는 각각의 건물마다 설계와 건축 이야기가 숨겨져 있겠지. 며칠 전 <전산응용 건축제도 기능사 실기> 시험을 치렀다. 평생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CAD(Computer aided design) 프로그램을 사용해 간단한 선긋기부터 시작해 하나씩 독학해 보았다. 단순한 도면이지만 그 속에는 이야기가 있다. 단독 주택의 지붕에 놓인 시멘트 기와인 암기와 3켜와 수키와 1켜, 그리고 용머리 기와는 함께 어우러져 멋진 구조물이 된다. 지붕 속에 옹기종기 모여 추위와 더위, 비를 막아주는 지붕을 받치고 있는 그들에게서 생명을 지니지 않았더라도 가족의 의미를 본다. 

지금 이 순간을 채우는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의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흘러가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살아 있음을 감사할 수 있다. 감사야 말로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이 된다. 내일은 또 다른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나의 해방 일지는 오늘에 감사함으로 충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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