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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n 21. 2022

약탈과 폭력의 경기침체: 사다리를 걷어차는 그들이 왔다

경기침체와 경쟁의 끝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6월 중순의 하늘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싫어 그늘을 찾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소나기가 올까 싶어 작은 우산을 챙겨 들고 밖을 나선다. 거울을 보니 어느새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다. 동네 단골 이발소를 찾아 거리를 걷다 골목길에서 가게 유리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네 카페의 젊은 사장과 눈이 마주친다. 손님이 없는 거리를 공허하게 쳐다보는 청년 사장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 듯 보이는 것은 아마 부슬비로 인한 착각일 것이다. 경기침체의 자화상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지난 시대를 지배했던 저금리와 양적 완화의 시대가 저물고 이른바 양털 깎기로 대변되는 금융 약탈의 시대가 복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가 무겁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실직, 해고, 명퇴, 부도, 파산이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살아나 나에게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세상이 바로 스테그플레이션의 시대, 극심한 경기 침체의 시대이다. IMF 위기를 겪은 후 대한민국의 경제는 한 단계 도약했지만 당시 실직과 부도로 넘어진 많은 개인들이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 경제적 빈곤으로 고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는 살아남지만 준비가 충분치 못한 개인은 무너지는 퍼펙트 스톰이 지금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미 애플, MS 등 미국의 빅 테크 기업들조차 2분기 실적에 대한 어려움을 발표했고 월마트, 타깃과 같은 대표 유통기업의 경우도 물가 상승과 소비자 심리 하락, 공급망 문제 완화로 재고가 증가했고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을 발표했다. 물가는 상승하고 소비는 줄어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현실이 되어간다. 


인간은 원래 꿈을 꾸는 데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제한적인 통화 팽창이 이루어지면서 급등하던 자산 시장은 사람들에게 부동산과 주식, 코인을 사들이면서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꿈은 매슬로의 욕구 중 최상의 욕구이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는 1단계의 욕구부터 채워지면 그다음은 조기 은퇴와 같은 좀 더 상위 단계로 나아간다. 미래에는 행복할 것이라는 꿈은 원초적 욕구가 충족된 상황에서 꿀 수 있고 현실에 처한 상황이 급격히 붕괴할 때는 소박한 꿈마저 꿀 수도 없다.


꿈을 꾸는데도 자격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만 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그들만의 계획된 일정에 따라 흘러가는 시대 상황에서 금리 인상과 물가 인플레이션은 그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축제의 음악이 멈추는데도 달콤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모두가 떠난 텅 빈 무대에 홀로 남는 것은 외로움일 뿐이다.


약탈적 자본주의는 항상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서민들의 자산을 강탈하지만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힘들어  사건이 벌어진 후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분석할 뿐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모든 걸 좋게 해석하고 시장이 나쁠 때는 모든 걸 나쁘게 해석하는 것은 그럴싸한 껍데기가 되어 본질을 가린다. 마치 사람이 좋을 때는 트림도 매력적이지만 사람이 싫을 때는 하품도 더러워 보이는 것처럼 본질을 냉정히 파악해야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개선할 수가 있다. 


약탈과 폭력의 경제는 개미의 세계에서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지구 상에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개미가 살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전 세계의 개미 수를 모두 합치면 약 1경~ 2경 마리가 된다고 추산한다. 그리고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개미의 무게를 모두 합하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무게를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하거나 더 무겁다고 한다.


개미 중에 사무라이 개미가 있는데 이 종의 생활 방식은 기생과 약탈의 삶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다른 개미 종의 둥지에 몰래 숨어 들어간 사무라이 개미들은 군체의 생존에 필요한 사냥과 채집, 청소 등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일개미들이 가져온 영양분을 받아먹으며 살아간다. 심지어 자신의 알조차 다른 종의 일개미들이 부화시키고 키우며 개체를 늘려가기까지 한다.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격렬하게 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기생적 삶이다. 하지만 개체가 늘어날 수로 부양하는 일개미들의 노동력이 감소하는 현상이 필연적이기에 이들은 새로운 둥지를 찾아 납치와 자원 약탈을 반복하게 된다. 현대의 약탈적 자본주의 본질이 묘하게 겹쳐진다. 


밖에서 관찰하는 인간에게 약탈받는 개미들은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연은 선악이 존재하지 않아 판단은 어리석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 사회에서 약탈과 기생적 시스템은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다음 글에서 분석과 대안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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