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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n 23. 2022

숫자 속에 감추어진 숨은 그림 찾기: 통계의 의도

벼락을 3번 연속 맞을 확률이라는 로또 확률은 1/8,145,060로 대략 0.000012%이다. 인류 역사상 실제로 우주에서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행운아는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우주여행(고도 100km를 넘는 비행 기준) 역사 60년간 약 600명이다. 세계 인구 77.53억(2020년 추정 기준)으로 나누어 보니 0.000007%로 로또 확률보다 훨씬 희박하다. 그럼에도 극소수 누군가는 극악의 확률을 뚫고 창백한 푸른 별을 까마득한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기회를 잡았기에 현실적 확률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숫자로 표현된 확률은 작은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all or nothing 게임처럼 무의미해진다. 


이렇듯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에는 숫자가 가득하다. 최근의 주가 폭락과 금리 인상을 설명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경제 지표들을 나열한다. 소비자 물가지수(CPI), 생산자물가지수(PPI), 국내총생산(GDP)등도 부족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까지 지수화해 발표하는 식이니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의 작은 빈자리마저 의미 없는 숫자들이 점령하고는 한다. 사람들은 숫자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하기를 원하고 이것이 합리적이며 과학적 방식이라 이야기한다. 추상적 공간을 떠도는 숫자는 어느새 논리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믿기 시작할 때 우리가 사는 현실에 구체화되며 절대적 진실이 된다. 


하지만 과학적이라는 숫자의 이면을 의심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수는 진실이지만 통계로 가공된 지표는 그 개념을 만들어낸 개발자의 의도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합리적인 정보가 차고 넘치는 정보화 세계에서 더욱 가치를 증명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의 국력을 측정하기 위한 대표적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지수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총액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GDP 숫자는 국가의 경제력을 표현하는 절대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GDP 지표는 당시 세계 대전을 치르던 정부가 전쟁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포나 함선을 만드는 군수산업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계산 인자들을 수정하면서 전쟁 무기를 많이 만들어 낼수록 국가의 경제력은 더 상승하게 된다. 삶의 질을 향상하는 자원봉사와 같은 활동은 포함되지 않으면서 오직 돈이 오고 가는 거래 활동만 포괄하니 역설적으로 부자 국가 가난한 국민을 표현하기 적절한 지표일 수도 있겠다. 보완하기 위한 여러 보조 지표들이 계속 활용되고는 있지만 우리는 이미 숫자로 계급을 나누며 사회와 개인을 차별화하고 있다.


현재의 금융 위기급 물가 급등 현상을 경험하면서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해보자. 과연 미국연방준비위원회로 대변되는 금융 세력들, 그들이 원하는 최종 결과는 무엇일까. 모두가 공포스럽게 나무를 가리키는 손가락의 개수만 바라보며 울고 웃을 때 숲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의 본질적 가치는 변화가 없다. 두려움 속에서 생존하는 핵심은 냉정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눈이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처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행운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쓸모가 없어지는 사례를 주변에서 자주 목격한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운은 결코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에 노력만이 개인의 평범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실질적인 씨앗이 된다. 씨앗이 잘 자라 열매를 맺기 위해 좋은 비료가 필요한 것처럼 숫자의 통계를 잘 활용한다면 풍요로운 성공의 비료가 될 수 있다. 다만 숫자로 표기된 경제와 사회 현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진실을 보는 눈은 혼란한 세상을 비추는 작은 촛불이 된다. 내면의 두려움을 외면적 불평과 불만으로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을 위해서 건배를 한다. 냉정하게 사고하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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