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백지에 한반도를 그려보자. 인간의 뇌는 보이는 모든 것을 자신이 익숙한 형태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하늘에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에서 사랑의 하트를 찾기도 하고 심지어 거미줄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국토도 예외가 아니다. 근대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는 한반도의 모습을 토끼 모양으로 비유하며 숙명론적인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인들은 토끼의 이미지처럼 순하고 순응적인 기질을 지녀 외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일본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의견이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역설적이게도 후일 친일파로 변절한 최남선이 호랑이 형상을 처음 주장하였다고 한다.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용맹한 형상은 멋스럽지만 현실은 가슴 아프게도 남북 분단으로 인해 허리가 반쯤 잘린 불구 호랑이가 되었다.
한국 조폐 공사에서 발행한 호랑이 불리온 메달 3종은 아기 호랑이의 랜드마크 여행을 표현하고 있다. 2020년 서울에서 시작된 여정이 2021년 강릉을 거쳐 2022년 설악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뒷면에는 한글을 활용해 한반도를 형상화한 모습과 호랑이 무늬를 함께 표현함으로써 예술성을 높였다. 외국 거래처에 선물하려다 귀여운 아기 호랑이를 떠나보내기 망설여져 그냥 보유하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국토와 정부 상징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국가 상징물도 지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관습상으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동물 또한 한국 호랑이다. 88 올림픽 마스코트도 '호돌이'였다.
사실 중요한 것은 국토의 형상이 어떤 모양인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떤 위상과 이미지로 국제 사회에 인식되고 있는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고 군사적으로도 '2022년 가장 강력한 국가' 6위(출처: 미국 US 뉴스&월드 리포트(USNWR))에 올랐다. 단 하나의 소원을 원한다면 군사 강국도 아니요 경제 강국도 아닌 문화 강국을 염원했던 백범 김구 선생님이 최근의 K-한류 열풍을 보았다면 분명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추락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무역 수지 적자는 역대 최장기 적자를 넘어서 이제는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상당하고 사회 정치적인 갈등은 이제 거의 한계치에 다다른 느낌이다. 외교는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교육 정책은 마녀 사냥식 조리 돌림을 당한다.
뮤지컬 영웅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죄로 법정 앞에 선 안중근 의사는 판사에게 '누가 죄인인가?' 묻는다. 조선을 침략하고 민중을 수탈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은 안중근 의사가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 가장 큰 범죄 행위이며 원인이다. 그러나 권력 앞에 진실은 외면되고 현실은 왜곡된다.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침이 오면 물러나고 그러다 밤이 되면 또 찾아오는 순환일 뿐이다. 분노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느끼는 마음속 답답함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 이득을 위해 우리 국민을 대립과 갈등으로 유도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죄인임을 말할 용기가 없는 나는 죄인이다.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되어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소망한다.
현재는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 그리고 모두가 나눠 쓰는 시간 자산이다.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무관심으로 모른 체하는 비겁함이 나라의 발전을 뒷걸음치게 한다. 한반도의 호랑이의 허리가 반으로 잘렸음에도 나의 무관심이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삶을 망치고 있다.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 미안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