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 의하면 인류는 수백만 년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 본능적으로 치열하게 발버둥 치며 우성 인자만 번식하였다. 본능에 따라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와 의지를 갖고 생존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중요한 목표로 존중되었다.
그런데 물리적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난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목적과 수단이 쓸모가 없어지며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의 구성원으로 생존을 위해 당연히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도덕이었던 시대는 어느새 신기루처럼 붕괴되었다.
무엇이 옳은가 하는 가치가 혼란스러워지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현대 인류는 오히려 더 근본적인 생존을 향한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다시 흉내 내어야 비로소 삶의 공허를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은퇴한 중장년뿐 아니라 노인까지도 어떻게든 다시 일을 해야 그 공허를 이겨낼 수 있다.
매우 비극적임과 동시에 기이한 세상이다. 과거 수백만 년간 오직 생존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설계된 인간이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에 따른 풍요의 시대에 접어드니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면 무언가 고상한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이 기다리는 것이 아닌 그냥 공허, 막다른 벽이다. 어쩌면 우리는 오래된 경전에서만 보았던 '색즉시공(色卽是空)'을 현실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첫 번째 세대일지도 모르겠다.
노인과 청년 모두 삶의 공허를 견디기 힘들다. 이건 더 이상 도덕적 가치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철학적이며 진화 생물학적 문제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가는 외로움과 공허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모른다.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나름의 이론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구조체 모델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이 공허의 근원은 실제 세계가 플라톤의 동굴 안에 갇힌 그림자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관념의 저 너머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자살률 1위와 함께 출산율이 0.7 이하로 세계 최하위라는 유례없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삶이 힘든 확실한 증거다.
생존의 몸부림이 치열할수록 인간은 더욱 깊은 절망과 공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짊어진 존재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일상, 깊은 한숨을 토하는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는 무엇일까. 잠깐만 실수해도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을까.
이러한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시선을 돌려본다. 봄 내음 가득한 진달래의 황홀함에 취해 잠깐이나마 나는 공허의 벽 가운데에서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