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적 단상
당신의 가장 처음의 기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는지요.
소천하신 어머님의 제사가 다가오는 밤에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 저녁 어머니와의 추억을 반추해 보다 헝클어진 기억의 실타래를 유년시절부터 더듬어 봅니다.
저의 첫 기억은 흐릿한 사람들의 모습이 웅성대며 마치 촛불에 비추어진 잔상들처럼 저를 바라보던 모습입니다.
누군지 얼굴도 분간할 수 없고 숫자도 알 수 없지만 포근한 안개처럼 주변을 감싸던 시선들에서 의식의 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번째 기억은 따사로운 오후 유치원 차량에서 바라보던 뒷 좌석의 풍경입니다.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아무 의미도 없을 듯한 그 한 순간의 기억이 왜 어린아이의 뇌리에 강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는지는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던 오후에 강렬했던 햇빛과 아련한 느낌만이 유령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기억들은 연속적이지 않는 유리 파편들처럼 부분적으로만 이어지며 기억을 떠 올려 보려 해도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척 소심해 항상 길 가장자리로만 걸어 다녔던 연약한 아이의 이미지만이 깊은 의식의 우물 밑바닥에서 헤엄 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찰나의 시간들이 흘러 거울을 바라보니 어느덧 새치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1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제 나이에는 어떤 생각을 하시며 사셨을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38세에 막내를 낳으신 셈이니 늦은 나이 셨을 텐데 자식들 뒷바라지와 경제적 어려움에 관한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지 않으셨을까요.
세상은 변하고 사는 모습도 달라졌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부모의 마음은 변하지 않나 봅니다.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바라보는 도시의 밤하늘에는 오늘도 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추적 추적 여우비가 흩날리는 늦은 밤의 분위기는 왠지 소주와 함께 진한 향의 커피 한잔을 함께 하고 싶은 묘한 느낌을 가져다주네요.
아버지도 새벽녘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창문 밖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들을 쳐다보셨겠지요.
어릴 적 부보님은 항상 지치지 않고 영원히 젊을 줄만 알았던 영웅이셨습니다.
그분들 어깨에 놓여 있던 삶의 무게의 엄숙함을 아이들을 낳고 이제야 조금씩 알 아기는 철없는 아들도 저의 아이들에겐 언젠가는 영웅으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볼 수 없고 그리운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두 분을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
주르륵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가 멈추고 조용한 밤의 적막이 다시 커튼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곤히 자는 아이들의 미소에서 내일은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