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그림보기 첫번째
일주일에 한번씩 그림 편지를 띄우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하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 그림이다.
그림을 왜 좋아하냐면 딱히 대답하기가 버겁다. 어쨋거나, 어린시절부터 화집의 그림으로 시작하여
물감의 겹침, 그림안의 스토리텔링, 연필선 하나하나안에서 즐거움과 까닭모를 행복감을 느낀다.
나의 삶이, 그림과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하나하나 그림편지를 쓰는 것으로 첫글의 포문을 열자.
이 그림의 제목은 Revolter이다. 사전적 의미로 revolt가 '반란, 봉기, 저항'을 의미하니, 반란자 정도 되겠다. 반란자라고 하면 프랑스대혁명에 깃발들고 젖가슴이 드러나도 전우의 시체를 밟고 전진하는 여성 정도가 등장해줘야 될 것같다만 팀 아이텔의 반란은 이토록 차분하고, 소심하다.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일의 화가이다. 근래, 활발하게 활동하는 (내가 아는) 유럽의 소설가, 작가, 철학가, 화가들은 죄다 머릿카락님이 희박하여 60%의 얼굴맹인 나는 매번 '그가 그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팀아이텔도 말하자면 유사하다. 신라이프니찌화파라로 분류되는데 큰 의미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요즘같이 각종 의미없는 이미지가 창궐하는 시절에 그의 그림은 명료한 '구상화'의 범주안에 속한다.
고독한 느낌을 표방하고 있으며, 넓은 면적대비와 색의 대비를 세련되게 구사한다. 늘 사람이 등장하되, 그 사람은 화면안의 개체로 존재한다. 말하자면 사람자체를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느낌이랄까. 그 대상 자체에 집중하고 있지않다.
나는 이 그림에서 아랫쪽 선의 위치와 각도를 근사하게 바라본다. 처음엔 가로막힌 벽이, 소심한 뒤돌아섬과 넓은 대비, 간결한 느낌의 회색이 그림의 인상을 좌우했다면, 보면 볼수록 살짝 비틀어진 아랫쪽 선의 각도와 희미한 그의 몸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캔버스에 물감을 얇게 펴 발라 유화물감의 물질성을 최소화 시킨다. 캔버스 화면에서 느껴지는 물질의 가벼움까지, 마치 지금의 현대적 삶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대하고 복잡하여 알수없는 시스템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의 봉기란 겨우 이런 모습일런지 모르겠다. 여러 팀아이텔 그림들이 자주 나를 매혹시키는데, 그는 국내의 <학고재>에서 여러차례 전시를 했다. 일전에 약 2호크기로 나뭇가지 하나 그려놓은 그림조차 삼천만원정도를 호가하는 가격에 이름값이 대단하고나라며 뒤돌아섰는데 이미 그 그림엔 빨강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구글링을 하여 그의 그림을 찾아보면 간간 그의 전시장 사진을 볼 수 있다. 자신의 그림 안에 늘 '대비'를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처럼 전시장에서도 늘, 200호에 가까운 대작 맞은 편에 2호정도로 아주 작은 그림을 큰 면적 안에 위치시키곤 한다. 여전히 세련된 지점이랄까.
가끔씩 그의 작품이 국내에 들어오면 눈호강을 하는데, 그가 동시대 화가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가 성장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함께 볼수 있어 더욱 즐겁다. 그가 그림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함께 보면서 말이다.<20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