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교육 2탄
아주 가끔씩..
우리 집 랜롤드*는 키보드를 두드리시곤 한다.
*한영 오가기 귀찮으니 landlord를 랜롤드 라고 쓰겠다
*현재 필자는 동생집에서 얹혀살고 있기 때문에
타인들에게는 집주인 또는 랜롤드 로 높여 부른다
랜롤드의키보드.jpg
랜롤드께서 아주 가끔씩 심심할 때 두드리시는 키보드다.
내 기억으로 랜롤드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곧 잘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 했는데, 유툽을 보고 독학으로 한 두어 곡은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보면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발휘하곤 한다.
특히 스맛폰 게임의 경우 하루면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스코어를 내곤 하니
같이 시작하는 초보의 입장에서는 참 짜증 나는 인간이다.
랜롤드 관찰기는 차후 시간을 내서 제대로 쓰도록 해보겠다.
강의를 할 때의 일인데, 나도 모르게 특정한 문제를 풀 때면 늘 연관 지어 떠오르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무언가를 가르칠 때 어린아이 시절부터 가르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좀 큰 후에 가르치는 것이 좋은가'
뭐 이런 질문 이였던 것 같다.
그럴 때면 필자가 어렸을 때 배웠던 피아노 이야기가 늘 생각나곤 한다.
필자의 어머니는 끼가 많은 분이셨다.
노래도 잘 곧 잘 하셨고 매일같이 스트레칭을 하셔서
나이에 맞지 않게 어마무시하게 유연하셨다
언제가 물어본 적이 있는데, 고등학교 때 꿈이 무용이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당시 집안이 매우 힘들었고
위로는 오빠가 둘, 아래로 동생이 하나
게다가 엄청나게 보수적인 할머니가 계셨기에
'여자는 고등학교까지만 나오고 졸업해서 시집이나 잘 가는 게 답이다'
라는 말씀에 꿈을 포기하셨다고 한다.
당시 무용선생님이 집까지 찾아오셔서 할머니를 설득했다라고도 하셨지만
우리 할머니의 성정을 떠올려보면 씨알도 안 먹힐...
음...
그래서인지 필자와 랜롤드는 어려서부터 예체능 쪽으로 참 많이 굴렀다;;;
뭐 누구나 다 하는 태권도 수영 피아노 이외에도 미술 테니스 플룻 영어 컴퓨터 스페인어 등등
참 많이도 당했 배운 것 같다.
아직 필자가 한국에서 살 때의 이야기다.
당시 오후엔 피아노 학원에 다니곤 했는데
또래에 비해 손도 크고 힘도 좋았으며 나름의 재능(?)도 있었는지 피아노 선생님들이 좋아하셨다
(지금도 도-미/파 까지는 닿는... 전공자들이 들으면 피식하는 거 나도 안다)
게다가 사교육의 얼리어답터 이신 어머니가 얼마나 잘 해 해주었을는지...
하지만 난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한 동안은 연습하라고 방에 넣어두면 엎드려서 자곤 했다.
그렇게 돈 내고 쉬러 가던 모텔 피아노 학원은 3층에 있었는데
어느 날 내려다보니 맞은편 건물 지하에 오락실이 하나 있었다.
당시 1980년대 후반, 오락실 이외엔 게임은 구경도 못 해 본 것 같다.
집에 오락기가 있는 것도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땐 무슨 용기? 였는지
몰래 학원을 빠져나와서 오락실로 갔다.
필자의 부모님께서는 용돈을 따로 주시진 않으셨고
그때그때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을/왜/가격 등등을 밝히고
타당한지 여부를 따진 후에 사주셨기 때문에
돈 한 푼 없이 오락실에 가서 게임하는 아이들 어깨 너머로 구경만 했다.
물론 때때로 시계를 확인하며 피아노 학원이 끝나는 시간을 맞췄다가
집에 가곤 했다.
당시엔 나름 치밀했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나름의 유희를 즐기던 어느 날...
평소엔 학원 앞에 필자를 내려주시고 바로 가셨던 어머니가 그날은 유독 계단을 반층 올라갈 때까지도
학원 앞에서 떠나지를 않으셨다.
2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반층을 내려와서 가셨나 하고 상가 입구 쪽으로 머리만 빼꼭 내밀었는데
차에서 대기하시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쳐서 다시 올라갔다.
(ㅎㄷㄷ 그때의 공포란...)
3층에 있던 학원에 들어가면 못 나올 것 만 같아서
2층에서 100을 세고 다시 확인을 했다.
(당시엔 시간 개념이 별로 없었을 때라 100 까지 세기란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반층 내려와서 확인...
후후... 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너
오락실이 있던 상가 지하로 들어갔다.
주머니에 10원짜리 하나 없던 나였기에
그날도 마구 비웃어 주마! 라며 게임하는 아이들 뒤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터억...
어깨 위로 묵직한 손이 올라왔다.
'아 뭐야 무거워~'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후우...
야동보다 아버지께 들킨 기분? (중3 때)
식탁에 앉았는데 주머니에서 담배가 흘러나와 걸렸을 때? (고2 때)
시험 보다가 컨닝중에 교수님이 톡 치고 갔을 때? (대학생 때)
더 설명 안 해도 알겠지?
급으로 놀랍고도 두려웠던 순간이었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등짝 스메싱 몇 번 당했으면 좋았을 것을...
어머님은 아무 말씀 없이 손을 잡으시고는
나를 지상세계로 이끄신 후에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셨다.
왜 혼내지 않으시지...
설마 아빠가 오면 아빠한테 혼나는 건가?!
ㅎ ㄷ ㄷ
당시 오후였는데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실 시간 즈음에는...
휴...
반가운 얼굴로 귀가하시는 아버지가 그렇게나두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뭐 지금에야 한 줄 SSG 쓰고 지나가지만
그 당시엔 태어난 이후 처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듯하다.
다음날 피아노 학원에 갈 시간이었는데
어머니가 조용히 부르시더니 내게 질문을 하셨다.
'진아, 피아노 치기 싫어?'
(헉... 뭐지 왜지? trick question 인가?
왠지 'ㅇㅇ' 해도 맞을 것 같고
'아니' 해도 맞을 것 같은 기분?)
한참 머릿속에 계산을 한 후에
'ㅇㅇ 재미없어...'
라고 답한 후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맞는 건가... ㅎ ㄷ ㄷ
(혹시나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쓴다 - 필자의 부모님은 화를 내시거나 체벌류의 혼내기를 하시는 일이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필자는 다른이 들 보다 두 배 아니 세 배의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차라리 몇 대 맞고 말지 안 때리는 게 더 두려움
하지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 이번에 콩쿠르 있으니까 거기서 입상하면 피아노 그만둬도 돼.
대신 입상 못 하면 계속 피아노 배우는 거다?'
윗글을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피아노 사건이 최초의 선택 이였던 것 같다.
1. 콩쿠르에서 입상 -> 피아노 그만둘 수 있음
2. 콩쿠르에서 입상 실패 -> 계속 피아노 다녀야 함
입상 못 해도 그냥 안 나가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을 왜 그때는 못 했을까...
아니 그전에 콩쿠르가 있는 건 어찌 아셨는지...
그렇다...
피아노 학원 원장이 집에 전화해서 내가 요즘 계속 결석인데 무슨 일 있냐고
물었을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아이러닉 하게도 피아노를 그만두기 위해서 미친 듯이 연습했다.
우오오오오오~!~!~!~!
입상만 하면 그만둘 수 있다~!~!~!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미친 듯이 피아노만 쳤다.
아마 내 등 뒤로 우리 어머니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시며
1. 입상 실패 -> 피아노 계속
2. 입상 -> 상 받으니 좋아서 피아노 계속
을 계산하시고 계시지 않으셨을까...?
2~3달 후
하얀 정장을 차려입고 콩쿠르에 나가서
2등을 했다
오오...
어떤 대회에 참가해서 입상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으로 느껴봤다.
스테이지 위에 서서 박수와 조명을 한껏 즐기며
트로피를 받을 때는 너무나 황홀한 기분
그날 밤 외식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나보다 더 기뻐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고 손에 쥔 이후에 식당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기 전까지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음식이 나왔고
어머니께 트로피를 드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 한 미소를 지으시는 어머니께
한 껏 행복한 얼굴로
'나 이제 피아노 안쳐~!'
라고 말했다.
ㅋ
그날 밤 잠에 들 무렵 거실에서 아버지와 대화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오늘날까지 기억한다
'... 어휴... 저 독한 새끼...'
그때의 충격(?)이 컸는지 어머니께서는 랜롤드거 어느 정도 나이를 먹기 전까지
음악을 권하지는 않으셨다
(결국 바이올린과 트럼펫을 하게 됐지만)
가끔 심심할 때면 인터넷을 검색해서 악보를 찾고 랜롤드의 키보드를 두드려보지만
한 마디도 제대로 못 치겠다.
동영상만 보고 독학을 해서 곡을 마스터하다니...
어휴... 저 독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