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세뇌
아들!!!
빨래할래? 아니면 청소기 돌릴래?!
일요일 오후면 늘 집안에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지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었다.
'빨래는 넣어두고 중간에 드라이 넣고 마지막에 가져다가 게어야 하니까 세 시간쯤...'
'아 날도 더운데 의자 뺐다 넣었다 하면서 청소기 돌리려면 땀날 텐데... 어휴...'
어느 것 하지...
뭐가 덜 귀찮지???
빨리 선택을 해야지 덜 귀찮은 걸 하지
늦으면 이도 저도 안된다.
1 빨래 2 청소
앗! 맞다 싱크대를 보니 빨래를 했다간 중간에 비는 시간에 설거지도 덤으로 해야 할 것 만 같다
왜 그땐 '둘 다 안 할래!' 같은 건 상상도 못 했을까.
여기엔 어머니의 고도의 전략이 깔려있다.
그래서 오늘 소개해 보고자 한다.
8학년이니까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머니가 빨래를 하시는 날 이셨으니 분명 주말이었을 거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2층이었고
아파트의 코인 런드리, 그러니까 동전 빨래방은 1층에 있었다
'큰아들~ 빨래 바구니 무거워서 그런데, 1층까지만 내려다 줄래?'
'?'
뭐 그 정도야
'ㅇㅇ~'
뭐 1층까지 몇 걸음이나 된다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게 시작이었다...)
빨래 바구니 배달(?)은 늘 있던 건 아니었다.
한 주 부탁하시고 나시면 그다음 주는 패스, 그다음 주엔 빨래 끝나고 빨래방에서 집으로 배달..
가끔은 드라이어에 넣을 섬유유연제 택배를 부탁하셨다.
(1-2층 오고 가는데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주말, 여지없이 배달을 마치고 베이스로 복귀하려는 찰나,
'엄마 심심한데 빨래 (세탁기에) 다 넣을 때 가지만 같이 있다가 가자~'
'ㅇㅇ!'
'요즘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뭐해?'
'밥 먹고 애들이랑 농구하지...'
(그렇게 자연스레 잡아두셨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매주 배달을 하고 엄마랑 놀아(?) 드려야 함에 익숙해지고 있을 때
'아들 같이 해볼래? 엄마 도와주면 빨리 끝내고 올라가서 떡볶이 해줄게, Deal?'
헉... 떡볶이라니...
-필자는 미국에 살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쉽사리 분식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가끔 먹는 떡볶이 / 순대 / 등등 은 특식 중의 특식...-
(뭐 냉장고에 재료 다 있어서 언젠간 해 주실 거였지만;;;)
(남자 애들은 초 단순하다)
'오케이!!! 여긴 흰 옷 만 여긴 색 옷 넣으면 되는 거지?!'
폭풍 같은 정리를 끝내고 집으로~
(빨래 분류하는 법을 실습하게 하셨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가 지나고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주말이 되면 빨래통을 들고 동전 빨래방에 내려가서
빨래를 분류하고 세제를 넣고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BUT!!!
꼭 동전지갑은 늘 어머니 손으로 들고 오셔서
당신의 손으로 동전을 넣고 가셨다.
크으...
이 빨래 교육 중에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동전 넣기랑 시작 버튼 누르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다.
그래서 못 하게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또 몇 주가 지나고...
'아들... 오늘 엄마가 아파서 그런데 빨래 좀 해줄 수 있어?'
'아파? ㅇㅇ 내가 할게'
...
(실습 완료)
'유부초밥 먹을래? 엄마가 밥 하는 동안 잠깐 빨래 좀 가져다 놔줘'
(천천히 오시기에 이미 끝내고 올라옴;;)
8학년 이 후로는 자연스레 빨래를 하게 된 듯하다
어떤 한 주는 불현듯 빨래가 너무 하기 싫어져서
'나 빨래하기 싫어!!!' 했더니
'그럼 청소기 돌릴래???' 하셔서
딜레마에 빠졌던 것 같다.
그렇게 교육이 끝났다.
빨래를 하다가 문득 옛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