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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믿고 싶다.

30대 중반이 되기까지 자신을 믿지 못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

by 유턴

나는 과연 나를 믿고 있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국내 축구나 야구의 우승팀이 가려진다.

한 해 농사가 끝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팀은 흉작을 맞이하기도 했을테고, 또 어떤 팀은 대 풍년이 찾아왔을 것이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는 나로서는 축구봤다가 야구봤다가 하며 즐겁게 보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국내 축구 얘기를 잠깐 해보려고 한다.

물론 인용하는 수준이니 스포츠에 관심없다고 창을 닫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국내 축구 리그는 보통 'K리그'라고 부른다.

난 그 중에서 수원의 원년 팬이고, 요즘 성적은 말이 아니지만 여전히 욕하면서도 응원하고 있다.

팬심이 이렇게 무섭다.

수원이 이렇게 빌빌대는 동안 근 10년간 정상을 지키던 팀도 있다.

바로 '전북'

말 그대로 최강자였고, 현재까지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 전북에 대항하기 위해 몇몇 팀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손톱으로 긁힐만한 상처정도만 주고, 나가떨어지곤 했다.

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최근 2~3년간 전북이 차지하고 있던 왕좌를 노리는 팀이 있으니 바로 '울산'이다.

울산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하며 포지션 별로 구멍을 메워 나갔다.

또한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도 데려왔다.



그리고 작년...

리그가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우승팀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울산이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울산은 선두를 지키고 있었고, 전북은 2위였다.

울산은 홈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고, 전북은 무조건 이긴 후 울산이 패하기만을 바라야 했다.

쉽지 않은 확률이었다.

하지만 귀신같이 울산은 수 많은 홈 팬들 앞에서 실망스러운 패배를 했고, 전북은 홈에서 '강원'에 승리를 거뒀다.

1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울산 팬들과 전북 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울산은 또 다시 칼을 갈며 투자를 이어나갔다.

현 시점 한국 최고의 골키퍼인 조현우도 데려오고, 이청용도 데려왔다.

올해는 뭔가 달랐다.

시즌 내내 1위를 놓치지 않으며 2위인 전북과 격차를 여유있게 유지했다.

그런데...

꼭 뭔가 쎄~~하면 그것이 현실이 되곤한다.

시즌 막판 울산은 주춤했고, 전북은 맹 추격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끝에서 두 번째 경기가 울산과 전북의 맞대결이었다.

두 팀의 승점은 같았지만 울산이 골을 더 많이 넣어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울산은 비기기만 하면 사실상 우승 확정이다.

두 팀의 마지막 경기는 각자의 홈에서 좀 더 낮은 순위의 팀들과 매치업이었기 때문에 이 경기가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울산의 홈이기도 했고, 작년의 기억이 예방주사가 되었기에 올해는 뭔가 다르겠거니 싶었다.



캡처.JPG

http://fourfourtwo.co.kr/bbs/board.php?bo_table=contents&wr_id=6210

이건 그 경기가 끝난 후의 기사다.

기사를 읽지 않아도 축구를 보지 않았더라도 누가 이겼고, 누가 우승에 유리해졌는지 알 수 있는 한 줄이다.

결국 전북이 이겼고,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무난히 이겨 또 한 번의 우승트로피를 가져갔다.



나는 이 경기를 풀로 봤다.

보는 내내 느낌이 묘했다.

울산 선수들은 뭔가 조급해 보이는 반면 전북 선수들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분명 상황은 울산에게 유리한데도 말이다.

경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올 시즌 우승은 사실상 넘어가는 건데도 전북은 급하지 않았다.

뭘까?

왜 일까?



경기를 보는 내내 가지고 있던 의문이 저 제목 한 줄로 모두 풀려버렸다.




타인에게 생각을 주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시라. 무엇이 떠오르는가. (코끼리?) 그렇다. 마음은 생각의 기원을 쫓기 때문에 조작이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에선 하나의 생각을 심기 위해 꿈속의 꿈속의 꿈으로 들어간다. 3단계 꿈을 이용하고 나서야 ‘간단한 생각’을 로버트 피셔의 무의식에 넣는데 성공한다.



무의식 깊숙한 곳까지 주입된 생각은 강한 믿음으로 발현된다. 전북현대를 보며 <인셉션>이 떠오른 이유다. 전북은 진정으로 믿는다. ‘중요한 경기에서 매번 이겼다. 그러니 또 이길 것’이라고 말이다.



(중략)



마음은 생각의 기원을 추적한다고 했다. 전북은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일어나는 마음에 확신을 얻는 케이스다. 그렇지만 울산은 생각을 좇았을 때 좋지 못한 추억에 맞닿는다. 의심이 싹트고, 그만큼 중요할 때 응집력이 약해질 수 있다. 믿어지는 생각과 믿고 싶은 생각은 다르다. <인셉션>에서 위조꾼 임스는 말했다. “(생각을 심는다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XX 어려울 뿐이지.”



-포포투(FourFourTwo) '[from울산] 전북은 믿었고, 울산은 믿고 싶어 했다' (2020.10.26)-






그래, 그거였다.

'믿음'

자신을 향한 확실한 믿음.

'나는 된다, 성공한다, 극복한다, 이긴다'와 같은 믿음.

그런데 그 믿음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전북은 스스로를 믿었고, 울산은 믿고 싶었던 거다.



나를 되돌아 봤다.

나는 믿고 있나? 아니면 믿고 싶은 건가? 어쩌면 믿으려 하지도 않는 건가?

2020년의 나는 적어도 믿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10대, 20대의 나는 믿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믿음'이라는 것의 가치를 아예 몰랐던 게 더 맞다.

그냥 나는 안될 놈이고, 나는 노력의 DNA가 없는 놈이고, 의지도 약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운도 따르지 않는 팔자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그런 쪽으로 '믿고' 있었다.



그래도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적지 않은 경험을 하고 나서는 최소한 믿고 싶어지긴 했다.



어떻게 하면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매일 노력하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뭘 위해 그렇게 사는 걸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들의 열정, 노력, 치열함이 부러웠다.

내가 아예 이런 것들을 모르고, 놓치고 살아왔다면 괴롭지도 않았을 것이다.

삐딱하게 핑계만대면 되니까.

"아 쟤는 원래 잘사는 집 애잖아."

"걔는 집안이 머리가 좋더만."

"XX이는 피지컬이 개 좋아서 뭘 해도 잘 돼."등등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편하긴 했을거다.



하지만 남보다는 나에게 화살을 돌리는 사람이라 이런 핑계같은건 비겁하게 여겼다.

무조건 원인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있었다.

내가 바뀌면 된다.

그래, 여기까지는 잘왔다.

좋은 생각의 회로다.

맞다.

생각이 바뀌었으니 행동이 바뀔 것이고, 결과도 만들어낼 것이다.

좋다, 좋아.



그런데....

왜 옛날부터 사람은 안 바뀐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진짜 존나게 안 바뀐다.

드럽게 안 바뀐다.



아 그러면 환경을 바꿔볼까?

어? 이래도 안되네?

근데 진짜 열악한 환경에서도 쟤는 해내네?

쟤는 나보다 더 힘든데도 하네?

계속 성공하네?

와...진짜 태생적인 무언가가 있는건가?

노력의 DNA가 존재하는 건가?



이렇게 타협할만 했다.

이렇게 좌절할만 했다.

이게 딱 작년 중반까지의 내 마인드였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는 저 마지막 물음에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아니다."



온오프라인에서 알게 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도 해보고, 나름 분석도 해봤다.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확신' 이런 것들이었다.

얼마만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가 생각의 차이를 불렀고, 그 생각의 차이가 생활 패턴의 차이를 만들었고, 또 다시 패턴이 어떤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 나는 항상 생각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던 건데 어쩌면 단순했던거다.

그냥 무의식적인 혹은 의식적인 '스스로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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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럼 그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건데???'

결국은 결과다.

결과...

아이러니하고, 화날만한 답이지만 어쩔 수 없다.

결과가 믿음을 만들고, 믿음이 결과를 만들더라.

인간은 어디서 신내림을 받고, 행동하는게 아니더라.

작든 크든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 확신을 바탕으로 계속 노력하고, 그 노력으로 또 결과를 만든다.

선순환이다.



나는 무언가 진득하게 노력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결과'이다.

내가 이룬 결과가 누군가 한테는 로망이었을수도 있다.

그 사람이 만약 그걸 이뤄냈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내가 꿈이 컸을수도 있고, 그 꿈에 비해 노력이 부족했거나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운이 없었을 수도 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운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이런건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없으니까.

그게 모든걸 말해준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

내가 잘 될거라는 확신이 없다.

내 미래를 바라보면 뿌연 연기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 포기해야하는게 맞는걸까?

난 '전북'이 될 수 없는건가?



이 역시 '아니'라고 대답할거다.

왜?



'전북'도 창단하자마자 강하진 않았거든.

전북은 1994년 창단한 이후로 2009년이 되어서야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한 번의 결과를 만들어냈고, 그게 바탕이 되어 믿음이 생겼고, 더 큰 투자를 했고, 올해까지 7번의 우승을 더 하게 되었다.

전북이 과연 첫 우승까지 본인들이 할 수 있다는 믿음, 스스로 강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버틴 것일까?

만년 중하위권 팀이 그런게 있었을리가 없다.

그런게 없었음에도 계속 노력하고, 버티고, 투자하고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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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결과를 달고 태어나서 응애응애 하나?

물론 부모나 주변 환경이 아주아주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이고,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에는 인정하지 못하겠다.

환경이 안 좋더라도 어느 시점에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성취감으로 쭉 자신을 믿으며 계속 성장한다.

반면에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지라도 그 환경에 안주하고, 무언가 이뤄본 경험이 없다면 꾸준히 침체하더라.



그렇다면 지금 현재 성취가 없는 사람들은 어떡해야 할까?

답은 하나다.

그냥 계속 하는 것 밖에는 없다.

이 답이 어이없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유일한 답이다.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때까지 꾸준히 하는 수 밖에 없다.

환경을 바꿔보기도 하고, 투자를 해야할 때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도전의 시기가 오면 망설임없이 뛰어들고, 존버해야할 때는 말 그대로 버텨보는 거다.

괴롭더라도 말이다.



나도 어느정도 프로세스는 잡혔고, 실행도 해나가는 것 같은데 이게 참 중간중간 나타나는 장애물을 넘기가 쉽지가 않다.

정말 작은 것부터 봐도 그렇다.

'매일 저녁 한 시간씩 뛰기'

어떻게 보면 되게 쉬운 과제인데 막상 결과를 뜯어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인생은 수 많은 변수의 연속이다.

한 10일 빡세게 뛰니까 갑자기 몸의 어느 부위가 안 좋아지더만.

그걸 회복시키고 뛸까? 그냥 쌩까고 뛸까?를 고민하다가 며칠이 그냥 흘러버렸고, 그게 두달이 되는건 순간이었다.

그 후에는 뭐 핑계대기 더 쉬웠지.

날씨, 약속, 야구, 다른 해야할 일들...

항상 변수 앞에서 무너졌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고, 그에 대한 솔루션이 생겼다.

이것 역시 단순하다.

그냥 다시 하는거다.

대신에 디테일한 변화는 괜찮다.

'아, 내가 저녁에 시간이 안나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서 뛰어보자~'

뭐 이런 작지만 적극적인 변화말이다.

이 대목에서 '아... 나는 게으른 인간이라 안되나보다.'하고 무너지면 그게 최악이다.

계속 다시 해보고, 쓰러지면 또 해보고, 변화를 줘서 또 해보고, 장비를 갖춰서 계속 해보는거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나를 막고 있던 장애물들은 쓰러져있고, 뿌옇던 연기 또한 사라져있을 것이다.

그게 어느 시점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다.

운도 분명 작용할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의 크기도 중요하지 않다.

운이 따라주고, 안 따라주고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이면 된다.

어쨋든 결과가 나오면 된다.

그 순간 나를 믿게 될 것이다.

그 한 번의 확신이 또 나를 움직이게 할 것이고,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을 줄 것이다.

그것이 선순환이 되어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가득찬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최근에 침체기가 좀 길었는데 다시 멘탈잡고, 움직여봐야겠다.

그러려고 쓴 글이다.

순전히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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