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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게된 이유

부제: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by 유턴



방금 전까지도 그랬다.

10여년전 수능을 앞둔 고3때도 그랬다.

책상 앞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어보려 문제집을 펼쳤지만 샤프 한 번 잡는게 그리도 오래걸렸다.

괜히 널부러진 펜들이 신경쓰이고, 먼지쌓인 책상이 걸리적거렸다.

그런데 우린 알고있다.

진짜 공부잘하는 애들은 이런거 의식안하고 책 펴고, 슥슥 문제푸는 소리를 낸다는 것을.


글도 그렇다.

잘 쓰는 사람들은 정말 꾸준히 습관처럼 쓴다.

계속 쓰니까 더 잘 써진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잘 쓰고 싶어서 책상에 앉는데까지 정말 오랜시간이 걸린다.

머릿속에는 글감이 둥둥 떠다니고, 당장이라도 명문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쓰여지지 않은 글감은 잠깐 떠올린 야한 생각보다도 못하다.

아무리 좋은 주제였다한들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뇌 주름 어딘가 깊숙이 박혀 죽을 때까지 발견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인도 우다이푸르>


<인도 디우>

공부할 때도 그랬지만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왜이리 메모장 파일 한 번 여는게 그리도 힘들까.

지금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기까지도 난 괜히 청소기를 돌리고, 옷을 정리하고, 책상을 닦았다.

잘 쓰고 싶은 욕심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끝은 어떻게 맺을지...

일단 써야 해결될 문제들인데 난 자꾸 미리 구상하고 싶어한다.

완벽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그렇게 한걸음 내딛는게 어렵다.

성격인가보다.

공부든 일이든 연애든 작은 것부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야 큰 걸 할 수있는데 난 항상 큰 그림부터 그린다.

요즘 '큰 그림'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많이 쓰이는데 나에겐 이게 썩 좋은 말은 아니다.


<인도 자이살메르>
<인도 조드푸르>

그래도 여행할 때는 거의 매일 썼다.

특히 호주에서 고생했던 날들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누군가 '기록하는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던게 기억난다.

어쩌면 그 기록들이 있었기에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20여개월 만에 여행이 아닌 일상이 시작되었고, 난 다시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생각의 회로가 뻑뻑해졌다.

그 느린 인터넷으로도 꾸역꾸역 올렸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좋아진 환경이지만 더 게을러졌다.


<멕시코 떼우띠우아칸>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게 나에겐 브런치였다.

처음 브런치를 알게된건 베타테스트를 할 때부터였지만 당시엔 시작할 생각조차 안했다.

이미 타사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여행기를 업로드 하고 있어서 브런치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여행이 매너리즘에 빠졌던 작년 가을 멕시코에서 브런치를 시작해봐야겠다 다짐하고 가입을 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왔고, 브런치는 다시 잊게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는 정말 새로운 자극을 위해 브런치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멕시코 칸쿤>
<에콰도르 키토>


'글을 써야겠다' 혹은 '어떤식으로든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싶다'고 다짐한건 채 몇 년이 안된다.

7년 전 이십대 초반, 3개월간의 필리핀 생활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인천공항도 가보지 않았던 촌놈에게 첫 해외여행 혹은 체류는 경주마같았던 나의 시야를 몽골인 수준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쓰게 되었고, 여태껏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은 나를 알에서 꺼내주었다.

여행에 대한 꿈을 본격적으로 꾸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너무 강렬했던 3개월이 현실에 적응하는데 큰 장애물이 됬다.

몸의 모든 세포가 깨어났던 그 시간들에 비해 원치않았던 학교로 돌아오는 것은 마치 수영장딸린 단독주택에 살다가 침대하나 딱 들어가는 고시원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수영장은 고사하고, 단독주택에도 살아본적은 없지만 나름 고시원생활은 해볼만큼 해봐서 그 삭막함과 답답함은 익히 알고있다.)

그렇게 학교에 부적응하고있던 2011년 2학기에 졸업 필수요건으로 '글쓰기'수업을 듣게된다.

당시만해도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은 '어렵다', '막막하다', '피하고 싶다'와 같이 온통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보통 글쓰기 수업은 1학년 때 듣는게 학교 권장 사항이지만 미루고 미뤄 2학년 2학기에 수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수업이 재밌다.
글쓰는게 좋아졌다.
글에 욕심이 생겼다.


사실상 다른 수업은 반 포기상태에 학점은 신경도 안쓰고 있었는데 이 수업만큼은 기다려졌고, 잘 해내고 싶었다.

당시 멘탈이 하한가를 달리고 있었는데 이 수업덕분에 어쩌면 '글'이라는 것 덕분에 상장폐지되는 것은 막을수 있었고, 반등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성적도 A+를 받았다.

나를 바닥에서 건져주고, 자신감을 찾게 해준 당시 '글쓰기' 교수님께 정말로 감사하다.

글도 글이지만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좋아하게 된 것도, 잘한다는 것을 알게된 계기도 이 수업덕분이었다.

그 후로도 학교에서든 대외활동에서든 프레젠테이션을 도맡아 하곤했다.




이 수업이후로 난 꽤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학교 내에서 그리고 외에서 수 많은 활동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또 내적인 성장을 거쳤고, 그 결과 서른이 되기 딱 한 해전 2015년 6월에 몇 년간 꿈만 꾸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게되었다.

과장일수도 있지만 그 수업이 아니었다면 혹은 글이 아니었다면 난 꿈도 없는 소극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페루 와라즈 69호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목표가 없어진 지금 그 때의 마음가짐을 되새기며 다시금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자 브런치를 시작한다.

주제는 다양할 것이다.

음악이나 여행이 주가 될 것이고, 굳이 내 머릿속에만 있어도 될 이야기도 가끔 올라올 예정이다.

또 얼마만에 새 글을 올릴지는 장담못한다.

살려면 자주 써야지 뭐 별수있나.

잘하지 못하면 꾸준하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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