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행할 때 외로운건 외로운 것도 아니다.
오전 수업만 있는 오늘, 강의실을 나와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할 때 외로운건 외로운 것도 아니었구나.'
수업이 끝나고 터져 나오는 대화속에서 나는 아무말 없이 계단을 내려가고, 화장실을 가고, 밖으로 나와 차를 향해 간다.
운전할 땐 파업중인 엠비씨라디오에서 어떤 사람의 목소리도 없이 노래만 흘러나온다.
수 없이 스쳐가는 사람들의 얼굴만 바뀔뿐 모두 밝은 표정으로 떠들어댄다.
'군중속의 고독'
흔한말 쓰기를 싫어하는 나지만 이 상황과 이렇게나 들어맞는 표현은 찾기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난 여행가기 전에도 항상 외로웠다.
자의반 타의반 혼자 무언가를 했던 게 익숙했고, 또 편안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건 아니다.
어쩌면 평균 이상으로 많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내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고, 그 사람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딱히 열어보려 노력하지 않았던 내 탓도 크다.)
그래서 혼자를 택했나보다.
이러한 이유로 난 여행 속의 고독함과도 빨리 친해졌다.
오히려 즐겼을런지도 모른다.
특히나 여행자가 많지 않은 곳이라면 외로운게 당연한 것이니까.
쓸쓸함을 합리화하기도 쉬웠다.
그렇게 합리화하며 내심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주기를 기대했다.
(현실적일것 같지만 운명론자에다가 은근히 이상주의자다.)
하지만 그런게 있을리가...
사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20대땐 뭐든 혼자 잘 하고, 잘 노는걸 나름 멋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찌질하다 생각했지만 당시에도 속으론 운명처럼 누군가 나타나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걸 지금에야 알았다.
한국에 온지도 반 년이 더 지났다.
역시나 혼자가 익숙한 하루하루였다.
또 역시나 난 외로운걸 즐기고, 혼자가 편하다고 떠벌렸다.
최근까지도 정말 그런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서 뭔가 하고 싶지가 않다.
오늘 갑자기 이런 감정이 생긴게 간 밤에 꿨던 꿈 때문인가 생각도 해봤다.
꿈 내용은 여기 옮기기 민망할 만큼 비현실적이고, 오그라드는 대사가 난무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운이 길다.
(야한 꿈은 아니다. 이 나이에 그런 꿈꾸기도 쉽진 않잖아?)
뭔가 아련했다.
앞 뒤 자르고 요약하면 내가 처음보는 사람을 꽉 안았는데 그게 이상하게 너무 좋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진심으로 누군가를 안거나 안겨본게 얼마나 됬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온기가 필요한 순간이긴 한가보다.
이런 감정이 생긴게 꿈 때문이라기보다 지금 내 상태가 좋지 않기에 이런 꿈도 꾸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지난주, 지난주 주말은 꽤 많이 떠들고 온기흘렀던 시간들이었다.
지지난주 주말엔 관우형과 Y누나를 만났다.
형과는 한국오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만났지만 누나와는 리마에서 헤어진 후 처음이었다.
리마에서도 한 20분 봤나?
사실상 콜롬비아가 마지막이었다.
얼굴본지 10달은 됬다.
형 얘기는 몇 번했을테고 누나얘기는 거의 한적이 없을 거다.
우리가 처음 본건 멕시코 와하까였다.
사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한국에서까지 만날 사이가 될줄은 1도 예상못했다.
그건 아마 누나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우린 비슷한 성향이라 오히려 더 친해지지 못했던게 아닐까.
1대1로 있을 땐 말만 잘하는데 사람들 많을 땐 굳이 나서서 떠들진 않는 그런 성향때문에.
그럼에도 '저 사람이랑 한 번은 제대로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했었다.
단체의 대화였지만 말이 통할 것 같다는 직감은 있었기에.
언젠가 인연이되면 만나겠지 라는 생각하에 내가 먼저 그 곳을 떠났고, 콜롬비아에서 다시 만났다.
거기서도 둘이서만 딱 대화한건 하루뿐이었지만 꽤 많이 가까워졌다.
그냥 친해졌다기보다 얘기할 때마다 느낀건 '이 사람 참 나랑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점이었다.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한국에 별로 없는데 우연치않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진심으로 반갑다.
나이나 성별을 뛰어 넘어서 말이다.
대화가 정말 편해진다.
마치 한 팀에서 10년은 뛴 투수와 포수처럼 사인을 주고 받는다.
이 날도 서로 주절주절 많이도 떠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신논현의 아침을 봤고, 전철보단 버스를 골라 한 시간 넘게 푹 잔 상태로 여주에 도착했다.
난 평소엔 말을 거의 안하다가 내 말을 듣고 공감해줄 사람만 나타나면 압축해놨던 말 덩어리들을 막 쏟아내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운이 아예 없지는 않은지 가끔가다 이런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툭툭 등장하곤 한다.
그러니까 안 죽고 살겠지.
지난주말도 꽤나 의미있었던 날들이었다.
한 달 전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자칫 잊혀질수도 있을(하지만 잊고 싶지는 않은)사람들에게 마구 연락을 했었다.
나의 모든 지표가 바닥을 치다못해 지하로 뚫고 들어갔던 시점이었다.
혼자 육개장에 한 잔하고 그냥 들어가기 싫어 편의점에서 맥주까지 한 캔 마시던 날, 유일하게 통화까지 했던 병석이.
포카라에서 한참 힘들 때 나타나 트레킹까지 하고, 그 후에도 꽤 오랜시간 같이 있었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까 초반에 만났던 친구들은 기억이 흐릿해져 연락도 끊어지기 마련인데 이 친구랑은 가끔이라도 꼭 연락을 이어왔다.
인연이 이어진다는건 쌍방의 노력이라는 사실을 더욱 절실히 느끼는 바다.
내가 소홀할 땐 병석이가 꾸준히 해줬고, 반대로 내가 자주 하던 시기도 있었고.
나만 연락하다가 소극적인 리액션에 내가 뒤돌아선 적도 있고, 반대로 나의 시덥지않은 반응에 지쳐 돌아선 사람들도 있었다.
병석이는 오자마자 무언가 열심히 배우고, 일하느라 굉장히 바빴다.
거기다 내 지인들에겐 이미 굉장히 멋있는 놈이 되어버린 '사랑쟁취남'이라 연애까지 하느라 더 바빴다.
[여행할 때 연애, 이렇게만 해라] 이런 제목으로 책 써도 애지간히 팔릴 듯~
아무튼 내가 한국에 온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여차저차 보지 못했고, 정말 못본지 2년이 다되어가는 시점에 얼굴보고 썰을 풀 수 있었다.
그것도 여주에서.
끊어지지 않고, 만났다는 사실도 의미있지만 나에게 더 고마운건 병석이가 여주까지 와줬다는 사실이었다.
31년 인생을 되돌아보면 군대+외국+서울살이 잠깐 빼고, 여주에만 살았는데 누군가 나의 지인을 초대한건 처음이었다.
여주에서 만나는 애들이라야 죄다 고향친구들이니 아무리 늦어도 각자 집에가서 잤으니까.
음...병석이가 오기 전 부터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고, 설레었다.
누군가를 초대하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어쨋든 경기도라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만 또 쉽게 접근할 수있는 거리는 아니라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다.
내가 사람 만나러 서울을 갈 때마다 느끼니까.
그래서 이번 병석이의 방문은 고맙고, 의미있었다.
내가 잠자리에 예민하니까 남의 집에서 자거나 초대하는걸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딴데서 자는거랑 초대하는건 다른 의미였다.
내가 대접하는건 또 다른 뿌듯함이 있었다.
나중에 내 공간이 생기면 자주자주 불러야겠다.
지금이라도 놀러오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웰컴이지만.
그나저나 한국와서 아직 못 본사람들 있으면 좀 봅시다.(봤어도 또 보자~)
저랑 지인아니어도 됩니다.
그렇게 다들 지인이 되는거 아닌가요ㅋㅋㅋ
그래도 한창 여행중엔 꾸준히 근황 주고받던 이웃분들도 계셨는데...보자 보자 했던 분들도 계셨고...다들 어디가셨는지...
저 쓸 돈은 없어도 술 살 돈은 있으니 부담없이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