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세계: 김연희

벌이라는 작고 소중한 존재를 보살피는 일

by 유유

처음엔 그냥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일에 애정이 생겨, 욕심도 생기고 눈에 띄게 성장하는 팀원 캐릭터, 혹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적 있나요? 그게 바로 연희 님입니다.

연희 님은 아빠와 함께 인천 문학산에서 벌을 키우고 있는 젊은 양봉인입니다. 지금은 누구보다 벌 키우는 일을 사랑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면 더 사랑스럽다던가요.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간 벌들의 세계에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해 버린 것이지요. 앞으로도 꾸준히 그 아름다움을 지키며 벌을 키우고 싶다는 연희 님을 만나, 그의 일에 관해 물었습니다.


“벌 키우는 일이란 무엇이고, 지속을 위해 무얼 하시나요?”


사진 @bangwoooorii

김연희 님 인스타그램 @san52_queenbee



언제부터 양봉을 시작하셨나요?

2020년도부터예요. 처음부터 직업으로 진지하게 접근한 건 아니고, 아버지가 먼저 하시던 양봉 일을 도와드리려고 했어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밖에 못 나가는 상황이 길어져 집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던 때였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웃으며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벌들이 하는 일이 참 많고 열심히 사는데, 우리도 열심히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겠니?”


아버지께서 양봉을 전업으로 하고 계셨나요?

아버지는 그때도 지금도 다른 일을 하면서 병행하고 계세요. 40여 년 전에 처음 친척께 양봉 기술을 배우셨는데, 4년 정도 하시다가 양봉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겠다고 판단하시곤 다른 일로 돈을 벌면서 살아오셨어요. 그런데 아버지 마음속에 양봉이 계속 있었나 봐요. 취미로 몇 통*씩 벌을 키우셨고, 그러다 7~8년 전부터 점차 규모를 늘리셔서 지금은 100통이 넘어요. 양봉을 본격적으로 하는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어요.

(*벌통: 벌이 집을 짓고 생활하도록 만들어준 통)


연희 님의 아버지께서 벌들을 살피는 모습


아버지께서 연희 님께 양봉을 권하신 이유가 있나요?

일단 벌이라는 존재가 재밌다고 하셨고, 또 양봉 산업이 미래라고도 하셨어요. 환경이 안 좋아질수록 환경과 관련한 일이 중요해질 거라고요. 오래전부터 말씀하셨는데,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예상이 점점 더 맞아가요. 환경이 안 좋아져서 벌이 없어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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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의 생존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 변화들:

1) 기후 변화: 개화 시기가 달라져 벌의 활동 시기와 맞지 않거나, 급격한 온도 변화나 극단적인 날씨 등.

2) 서식지 파괴: 도시화, 농업 확장 등으로 벌들이 서식할 수 있는 자연환경 감소, 벌들이 채집할 다양한 꽃과 식물 자원 감소 등.

3) 질병과 기생충: 진드기 등 벌 집단에 큰 위협이 되는 기생충 개체 수 급증 등.

4) 그 외 무분별한 농약의 피해 등.


*관련 기사: '지구의 경고' 이상기후…사라진 꿀벌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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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 일, 벌을 키운다는 건 어떤 건가요?

다른 가축을 키우는 것과 같아요. 매일 먹이를 주고 살아가는 환경을 관리해 주는 일, 건강을 살피는 일, 잘 살 수 있게 하는 일 전반이죠.

하나의 벌통에는 여왕벌 한 마리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 한 마리가 그 군집의 알을 모두 낳아요.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왕벌의 안위를 늘 살피고, 산란이 잘 되고 있는지, 벌들의 세력이 좋은지도 확인해요. 만약 왕 자리가 비면 새로운 여왕벌을 탄생시켜 데려다줍니다.

이외에도 ’잘 키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는 일들을 양봉 규모에 따라 수십 통에서 수백 통까지 동시에 관리해요. 벌통 하나에는 (평균) 벌 2만 마리 정도가 살고요.

사랑스러워 자꾸 찍게 되는 모습


그럼, 벌을 ‘잘 키운다’라는 건 어떤 건가요?

잘 살리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해충과 말벌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주는 게 중요해요. 진드기가 가장 위험해요. 작년에 제대로 방제해야 할 시기를 놓쳐 그 많은 세력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무너졌다고요?

일벌은 수명이 40일에서 6개월 정도예요. 무리 안에서 꾸준히 죽음이 있어도, 여왕벌이 그만큼 알을 낳아 개체수를 유지해요. 무리 중심으로 살아가는 벌들은 벌집 안 온도도 날갯짓으로 다 함께 조절하고, 위기도 다 같이 모여 막아내요. 양봉인들은 외부 위협으로부터 벌통을 지켜내면서 그들의 생태계가 잘 유지될 수 있게 노력해요.

그런데 ‘무너졌다’라고 표현할 땐 그 집단이 무너져서 벌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거예요. 해충의 공격이나 급격한 날씨 변화 등이 그 이유입니다. 작년에는 진드기를 막지 못해 수많은 무리가 순식간에 무너졌고요. 요즘 같은 기후 변화 속에서 위기를 잘 넘기면서 벌통 수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에요.


그럼에도 꾸준히 벌통 수를 늘려오셨다니 대단해요. 계속 늘리시나요?

관리할 수 있는 규모에 한계가 있어 끝없이 늘리지는 않아요. 벌 개체 수와 벌통 수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월동이 관건이에요. 겨울이 지나면 어떤 양봉인은 벌통을 많이 잃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잘 지켜내기도 해요. 겨우내 잘 지켜낸다면 다른 양봉인에게 벌통을 판매하고, 판매한 만큼 봄부터 다시 늘릴 수 있어요.


사진 - 이희성 @bangwoooorii


젊은 양봉인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많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요?

맞아요. 일단 첫 진입이 어려워요. 양봉을 하려면 꼭 필요한 시설과 자재가 많은데, 소규모로 하든 대규모로 하든 다 필요해서 처음 시작할 때 돈이 많이 들어요.

보통 물려받아서 하지만, 물려받더라도 힘들어서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아요. 나라의 지원사업도 다른 축산업에 비해 적은 것 같아요. 젊은 양봉인이 없으니 발전 속도가 느리고 오히려 산업이 도태되는 듯해요. 연구가 잘 이뤄지지 않아 산업 자체 데이터도 많지 않고요.


어떤 걸 가장 힘들어하나요?

농사와 비슷할 거예요.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여러 고충이 있겠지만 고정 수입이 없다는 불안감이 가장 크지 않을까요. 한 달에 얼마씩 일정한 수입이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계절을 거치며 열심히 벌을 키워도 그 결과가 좋을지는 한참 뒤에 알 수 있으니까요.

일단 겨울만 되어도 봄까지 벌이 살아 있을지 없을지 모르잖아요. 날씨와 환경 영향을 많이 받으니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데다, 그렇다고 한 번에 큰돈을 벌 수도 없고요.

꿀의 가치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요. 요즘은 꿀 말고도 단맛을 내는 대체 식품이 많아서인지 예전만큼 꿀을 잘 먹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연희 님은 왜 계속 벌을 키우기로 했어요?

전에 회사 생활을 7년 정도 했는데, 그 일을 정리하면서 이런 자연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막상 해보니 생활비로 충분할 만큼 수익이 잘 나지 않아서 지속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는데, 사람들의 지지와 인정 덕분에 계속 하게 되었어요. 직거래 마켓*에 나가 직접 판매하러 다니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받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큰 도움이 되었거든요.

(*직거래 마켓: 생산자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나 가공식품, 수공예품 등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오프라인 마켓입니다. 연희 님은 파주 ‘햇빛장’과 인천 ‘파머스마켓’에 꾸준히 나가고 있어요.)


벌을 키우면서 산속에서 혼자 일하다가, 마켓에 꿀을 팔러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불안감이 씻겨요. 저를 보고 믿고 사주시고,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시면서 응원해 주세요. 그때마다 “그래, 좋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사가 안 돼도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어 재밌고, 장사가 잘되면 더 신나고요.

드셔보시고 “진짜 좋은 꿀이네요”라고 하며 알아봐 주시고 사 가는 분도 많아요. 대체로 어르신들이 좋은 꿀맛을 잘 아세요. 설탕이 흔치 않은 시절에 좋은 꿀을 많이 드셔보셨기 때문일까요? 한 번 사 가신 분이 다음 달에 다시 와서 구매하시거나 주변에 몇 번씩 선물하시는 걸 보면 인정받는다고 느껴 기분도 좋고, 자부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하게 돼요.

그래서 마켓에 더 열심히, 많이 나가서 저희 꿀을 더 알리려고요. 제 꿀을 원하는 누군가를 위해 계속 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꿀을 맛보게 하고 싶어요.



이 일을 지속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이 있나요?

우선 생산자로서 좋은 꿀을 담아내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겠죠.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야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잖아요. 저는 생산자이면서도 대표와 마케터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니까, 꾸준히 마켓에 직접 나가려고 해요. 거기에서 저희를 찾아오는 팬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팬을 계속 만들어가려고요.

꿀을 담는 패키지를 예쁘게 만드는 것과 저희 이야기를 알리는 홍보물도 중요해요. 최근 저희 이야기를 담은 홍보물을 제대로 만들었어요.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의 도움을 받았고, 양봉장에서 아빠와 제가 작업하는 모습과 제품 사진을 예쁘게 찍어서 넣었어요. 그 리플릿과 명함, 포스터를 지난 마켓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그 덕분인지 매출이 크게 늘었어요.


포스터 등 홍보물 디자인 - 디자인모로 @design_moro_


또, 꿀을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려고 해요.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람들에게 꿀을 알리려고요. 먼저 올해(인터뷰 시점-2024년) 꿀젤리를 만들었어요. 저희가 직접 양봉한 꿀을 넣고, 다른 성분에도 신경 써서 만들었어요. 시중 일반 젤리에 비해 덜 달고 향긋해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반응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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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님은 '그라운드패킹'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양봉한 꿀과, 그 꿀을 넣어 만든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꿀Bee젤리'(아래 사진)를 시작으로, 앞으로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나갈 거라고 해요. 선물 같은 '땅'(그라운드 ground)을 '담아낸다'(패킹 packing)는 브랜드 이름처럼, 자연이 주는 건강한 재료를 선별해서 믿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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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양봉한 꿀을 넣어 만든 '꿀Bee젤리'


이 외에도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또 있나요?

자연 속에서 꿀벌과 가까이에서 지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싶어요.

벌 중에서 꿀벌은 유순한 편이라 웬만해선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요. 위잉-하는 날갯소리를 무서워하는 분도 많은데, 사실 인간에게 편안한 주파수라서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대요.

꿀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사랑스러워요. 그 작은 생명체가 지구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리고, 자연과 꿀벌이 가져다주는 소중한 선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 모두 치유받는 경험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또 있어요. 다른 생산자가 생산하는 좋은 꿀을 찾아서 알리고 싶기도 합니다. 꿀의 맛과 품질을 잘 알고 구별해 낼 수 있는 사람으로서요. 믿고 살 수 있는 꿀 브랜드를 만드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말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고 계시네요. 지금은 어디에서 양봉하세요?

인천 문학산에서 하고 있어요. 인천 사람들에겐 아주 친숙한 뒷산 같은 곳이라, 문학산에서 양봉한다고 하면 인천 분들이 “문학산에서 양봉을 할 수 있어요?”라고 많이 물어보기도 해요. 양봉은 “물, 꽃, 나무”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물, 꽃, 나무만 있으면 된다니, 사실이지만 예쁜 시처럼 느껴져요. 인천 문학산에서 양봉해서 특별한 점이 있나요?

일단 제가 문학산 자락에서 30년 넘게 살았어요. 오래도록 함께해 온 산에서 양봉한다는 점이 제겐 가장 특별해요.

또, 문학산에는 아까시나무(아카시아)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서 꿀 중에서도 향긋함이 최고인 아카시아꿀을 얻을 수 있어요.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는 5월에 벌들이 온 산을 날아다니며 모아 온 꿀에는 문학산 아카시아꽃의 풍부한 향이 가득 담겨요.


인천 문학산 아까시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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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식물 번식에 필수적인 수분 매개체로, 꽃가루를 옮기는 꿀벌이 많아질수록 식물군 생태계가 더욱 다양해지고 건강해집니다. 그래서 꿀벌의 가치를 알리고 보호하는 단체는 “지역 양봉인의 꿀을 먹으면 그 지역의 벌을 살려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라고도 말합니다. 인천 문학산의 꿀벌 지킴이는 연희 님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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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일하는 건 어때요?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일하시나요?

아빠가 기술을 알려주시면 습득해서 같이 하고 있어요. 실전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이제는 저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기도 해요. ‘이런 건 바꿔보자’, ‘이런 약은 안 쓰면 좋겠다’ 같은 것이나 내년 계획을 세울 때도요.

정보를 얻는 방식이 각자 다른데, 아빠는 유튜브에서 많이 얻으시고, 저는 양봉협회 같은 곳에 가서 다른 양봉인을 직접 만나서 얻고 있어요. 저희끼리만 하기보다는 다른 양봉인들의 이야기도 듣고, 노하우도 전수받으면서 같이 나아가려고요.

사진 - 이희성 @bangwoooorii


꿀이 몸에 좋은 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요. 자주 먹을 수 있는 활용법이 있을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매일 아침 우유와 꿀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더라고요. 뜨겁지 않게 미지근하게 데운 우유에 꿀을 섞어서 마시는 거예요. 빵과 함께 먹는다면 더 든든하겠죠. 또, 목이 아플 때 꿀을 머금고 몇 분 있으면 자연스럽게 목으로 흘러 내려가서 목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그렇게 아침마다 꿀을 먹으면 건강하게 달콤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요즘 기대되는 것이 있나요?

지금 150통의 벌들을 다가올 봄까지 얼마나 잘 지킬 수 있을까. 이게 제일 큰 관심사예요. 이번 겨울을 지나고 봄에 벌이 얼마나 살아있을지가 저희에겐 곧 성적표라서 무섭기도 하지만 잘 지켜내고 싶어요.


-2024.12.

인터뷰이: 김연희

글: 유혜인

사진 제공: 김연희, 이희성

사진 - 이희성 @bangwoooorii




어느덧 봄이에요. 벌들이 잘 살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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