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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 Dec 31. 2020

2020을 보내며







2019년 12월 31일의 나는 파리에 있었다. 파업으로 인해 버스와 지하철의 운행이 중단되어 많이 걸어야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 덕분에 즐거웠고, 1년 전 도쿄에서 맞은 새해와는 사뭇 다른 도시의 모습에 새해 카운트다운을 할 때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2020년은 정말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고 꿈꿔오던 유럽 생활을 할 생각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감이나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혼란스러움은 느끼지조차 않았다.



2020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나는 서울에 있다. 내가 겪은 2020년이 2019년의 나의 바람 혹은 상상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만, 개인적으로는 또 그렇게 나쁘기만 했던 한 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7개월 간의 네덜란드 생활과 5개월의 한국 생활로 이루어진 나의 2020년은 전반기와 후반기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자유로움, 여유로움 그리고 다이내믹함으로 설명된다면 한국에서의 생활은 바쁨, 지루함, 무료함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네덜란드에서 4개의 수업을 들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비대면으로 20학점을 들으며 쉴새없이 몰아친 과제와 시험들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나온 것임은 분명하다. 또한, 25명이 함께 하는 기숙사에서 살다가 자취방에 혼자 사는 것 또한 생각보다 더 큰 차이를 가져왔다. 그 당시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쉽지 않은 기숙사의 환경에 백퍼센트 만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시 서울로 돌아와 혼자 작은 방 안에서 살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살던 그 때가 매우 그립다. 매일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고 밤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이제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2주 간 자가격리를 하며 외로움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는데, 그 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는 내가 흐로닝언에 있을 때 사랑하던 큰 나무들과 넓은 잔디밭 그리고 공원에서 날씨는 만끽하는 사람들 등을 전혀 볼 수 없어 더욱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적응이 되었으나 가끔씩 흐로닝언이 생각나는 날이 종종 있다. 이처럼 2020년의 7개월이 나를 생각보다 많이 바꾸어 놓았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 내 일상 속 작은 선물처럼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내가 그렇게 즐겁지 않았던 것은 역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다시 마주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코로나로 인해 엉망이 된 계획들. 완전하게 만족스럽지 못했던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장기 일탈. 불확실한 미래. 이러한 것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했다. 사실 지금도 복잡하다. 뉴스를 보면 좋은 얘기보다 끔찍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더 많고 사람들은 모두 화가 많아졌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풀 수 있는 방법도 한정적이며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자유롭지가 않다. 모든 것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많은 것이 코로나로 인해 변했다. 그 누구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무섭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중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짜증나고, 참아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도 안타깝다. 가고싶은 곳도, 보고싶은 사람도 많은데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겪고 있기 때문에 누구한테 징징거릴 수도 없다.



2020년의 나 자신이 가장 변한 점이 바로 이 것인 것 같다. 감정에 조금 더 솔직했다는 점. 잘 몰랐는데 흐로닝언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친구들이 너는 왜 이리 감정 표현을 안 하냐고 타박한 적이 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가 없고 그냥 항상 비슷한 상태인 것 같다고.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몰랐고, 지금도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정말 많이 아끼는 친구한테 우리 기숙사 친구들의 얘가 너 좋아한다고, 아낀다고 표현한 적 있냐는 질문에 그 친구가 눈을 흘기며 장난스럽게 한 번도 없다고 서운해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 후로 조금씩 어떻게 내 생각,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어떻게 이런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너무 바빠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적도 없었고 이런 깊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는데 2020년은 나에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아주 넘치게 주었기에 이러한 부분에 있어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어렵지만, 작년의 나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나는 나 자산을 조금 더 잘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느까는 바를 더욱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건강하게 한국에 잘 돌아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성장을 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21년에는 조금 더 행복하고 나 자신을 더 아끼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내년에도 날 행복하게 해줄 흐로닝언에서의 추억을 조금 더 마음 속에 간직해야겠다. 물론, 상황이 좋아져서 또 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도 없고.




굿바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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