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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 좋은 5가지 이유

출산을 고민하고 계신가요?

by 유유이

어릴 적 엄마가 육아도우미 일을 다니셨을 때 나는 유치원생쯤이었던가. 아기를 워낙 좋아한 탓에 엄마를 따라가 그 집 아기와 놀아주기도 했었다. 키우던 강아지도 워낙 예뻐하며 자식처럼 키워왔으니 주위 친구들이 항상 너는 아이를 낳으면 물고 빨고 하며 육아를 잘할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육아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아이의 탄생으로 인해 나의 삶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급선회할 수 있으니 선뜻 배팅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금쪽이 같은 육아 프로그램이 오히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꽤나 가중시킨 것도 같다.

이렇다 할 취미도 없고, 워커홀릭도 아니었던 나는 '딱히 할 게 없으니 이쯤 되면 주변에 다 있는 아이를 나도 가져야겠지' 하는 무기력한 마음으로 2세를 준비했다. 이 어중간한 마음으로 인생의 어쩌면 가장 큰 대사를 결정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몇 년을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았고 결국 우리 튼튼이는 시험관을 통해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어설픈 발음으로 내 말투를 모방하며 삐약거리는 3살이 되었다. 새벽 내내 졸아가며 분유 한 스푼 두 스푼 세는 시기를 거쳐, 소고기 20그람 잎채소 20그람을 저울 해가며 이유식을 저어대는 시기도 지나, 이런저런 짐꾸러미 벗어던지고 어른이랑 같은 밥 먹으면서 놀러 다니는 시기가 찾아오니 아이가 생기니까 이런 게 좋더라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 바빠서 잡념을 할 새가 없다.

INFJ의 MBTI 유형인 나는 하나님이 걱정 그 자체로 인간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실험으로 내가 탄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걱정과 불안의 잡념 덩어리이다. 내가 빼빼 마른 것도, 하필(?) 내 남편과 결혼을 한 것도, 지금 여기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모두 불안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출산은 엄청난 선물을 선사해 줬다. 바로 잡념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생기니 더 신경 쓰고 걱정할 일이 많이 생기긴 하지만 그것도 가만히 앉아서(혹은 누워서) 쉴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곯아떨어지고 아이의 울음과 함께 깨어나 지체할 새도 없이 하루가 시작되는 일과에 잡념은 비집고 들어왔다가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휘발되어 버리고 만다.


2. 소소한 행복을 자주 많이 느낄 수있다.

카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란 사람은 해외여행을 가도,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아도, 소문난 맛집을 가도 심박수에 별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사는 게 그다지 큰 재미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식'이 나의 심장을 내리칠 줄 알았더니 웬걸. 아이 없이 카페 가기, 아이 없이 친구 만나기, 아이 없이 책 읽기가 '버킷리스트'에 자리 잡는다.

아이를 키우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기분 좋은 음성은 생각보다 짧은 찰나이다. 대부분은 나의 혼을 쏙 빼놓는 소음에 가까운 음성이 대부분이다. 비단 아이의 음성만이 아니다. 갖가지의 장난감 소리, 동요 소리 등이 배경음악으로 늘상 깔려있고, 아이와 씨름하는 나의 말소리 또한 내 의지로 내뱉어졌음에도 굉장한 소음으로 두개골을 댕댕 울려댄다. 일상이 그러하다 보니 그저 무소음의 공간도 갈망의 대상이 된다.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으니 100일 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아이를 재우고 주어진 휴식시간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오밤중에 밖으로 나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껑충껑충 뛰어다녔었다. 한 발로 두 번씩 발돋움하며 폴짝폴짝 뛰어다닌 게 거진 30년 만이었을까. 본능적으로 신난 발걸음이 절로 나왔었다.

그렇게 일상의 소소한 일에도 찐하게 만끽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폼나게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덤으로 혼자만의 동굴을 사랑한다는 화성인을 비로소 진정 이해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개이득. 이해심도 넓어지니 말이다.


3. 부지런해진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이런 댓글을 봤다.

'육아는 신이 주신 갱생 프로그램'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놀게 하려면 곱절로 움직이고 준비하고 애써야 한다. 나의 안위와 발전을 위해서는 여유가 될 때, 시간이 될 때, 기분이 내킬 때 겨우 좀 깨작거렸다면, 나의 2세를 위해서는 신기하게도 열의가 샘솟는다.

거기에 2번의 내용처럼 나만의 시간이 존귀해지니 그 시간을 위해 나머지 일들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게 된다. 밍기적거릴수록 나만의 시간이 줄어들기에 최대한 빨리 전부 끝마치는 부지런함을 장착하게 된다. 게으른 내 모습에 대략 20년 넘게 자괴감을 몸서리쳐 왔었는데 육아라는 고난(?) 앞에서 정신을 똑띠 차리는 모습을 보며 역시 매가 약인가 싶다.



4. 남편과 한편이 된다.

타인과 매우 가까워지는 데에는 같이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이는 배우자와 나의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자 동시에 공공의 적이기도 하다.

"얘 좀 봐봐 진짜 귀엽지"라며 같이 세상을 다 가진 찐한 웃음을 지으며 팬클럽 활동을 하다가도 "쟤 오늘 왜 저렇게 까칠해?" 라며 같이 눈을 흘기며 안티로 돌아서는 기이한 상황이 자주 펼쳐진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괴롭게 하는 대상을 공유하게 되니 '남의 편' 인 것 같은 배우자가 이제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전우'로 거듭나게 된다.


5. 많이 웃는다.

남편과 동지애를 나누며 생활하다가도 갖가지 트러블이 자주 일어나기는 한다. 설거지하고 집정리하고 씻기고 약 먹이고 양치시키고... 할 일이 태산인데 '화캉스' 떠나 감감무소식인 남편을 보고 있자면 화장실 문을 때려 부수고 싶은 활화산 같은 분노가 치밀지만 아이 앞에서 재물 손괴의 범법 행위를 벌일 수는 없는 법.

"튼튼아~ 아빠 응가하러 가서 변기 만들고 있나 보다"라는 농담으로 깊은 빡침을 표현하는 것으로 일단락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분노조절장애인가 싶었던 나란 인간도 아이 앞에서는 웃을 수밖에 없으니 일단 웃고 만다. 다소 어색하더라도, 그렇게 웃어버리면 신기하게도 3-4분 정도 후 활화산은 휴지기에 들어가더라. 그리고 피곤함에 취해 아까의 분노 상황을 되새김질할 새도 없이 잠이 들어버리기 일쑤. 그런 패턴이 무수히 반복되니, 이제 분노에 대해 대범해졌다. 일단 웃고, 자버리면 별일이 아닌 게 되더라.

물론 아이가 귀여워서 많이 웃기도 하다. 많이 웃게 해주고 싶어 웃기도 하고.



여기까지 겨우 3세까지 아이를 키워본 엄마의 오만 가득일 수 있는 육아의 좋은 점이다. 훗날 아이가 거뭇하게 수염이 나고, 나의 볼이 발그레져 잠을 못 이루는 시기들을 겪고 나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 50가지', '졸혼을 추천하는 이유 500가지' 적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고 외로울 때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chatGPT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제는 일어나지 않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밤을 설치기보다는, 불면증이 일어날 새도 없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곯아떨어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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