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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발을 설명하지 마세요.

by 유유이



이 책을 집어든 건 다름 아닌 난감함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내뱉은 '마음이 아파서 그래'라는 말을 후회한 것은 집에 돌아와서였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식탁에 앉아있던 아이는 별안간 자기 머리를 때려댔다. 나는 화들짝 놀라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튼튼아 자기 머리 때리는 거 아니야."

"아까 형아가 머리 이케이케 했어."

"응. 근데 머리 때리면 안 돼. 그 형아는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야. "

"마음이 아프면~ 머리를 때려? "

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아.. 아니..."

나는 뭐라고 해야지 할지 몰라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아무튼 머리 때리면 안 돼. "




주말에 아이와 함께 쇼핑몰에 가는 건 내가 좋아하는 나들이이다. 벌레, 꽃가루, 더운 거, 추운 거, 걷는 거 등등 싫어하는 거 많은 남편이 유일하게 즐거이 걷는 곳이 바로 쇼핑몰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와의 나들이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이 가장 우선시되어야겠지만 싫은 내색이 온몸에 드러나는 남편과 함께 할 땐 언제나 남편의 니즈를 맞추게 된다. 물론 그날은 나도 사고 싶은 운동화가 있었다. 쇼핑몰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해 남편도 몇몇 옷을 구매하고 나 또한 꼭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구매해 한껏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쇼핑몰 내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의 낮잠 시간 때가 되어서인지 아이는 좋아하는 돈까스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튼튼아 밥 잘 먹으면 아빠가 맛있는 거 사주신대. 얼른 먹자."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사주지 않았던 간식을 인질 삼아 몇 숟갈을 떠먹이고 가게를 나왔다. 마침 근처에서 유기농인지 뭔지 하는 건강하게 만들어져 보이는 푸딩 하나를 샀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겨우 찾은 자리에 앉아 푸딩 뚜껑을 열자 갑자기 옆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가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무엇이 잘 안 되는 건지 중간중간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리곤 자기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세게 때리던지 내가 가서 말려하나 싶을 정도였다. 잠시 후 보호자가 와 아이를 말렸지만 아이는 진정되지 않았다.

보호자가 온 걸 보고는 더 이상 쳐다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튼튼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튼튼이는 홀린 듯 그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불편했는지 다른 자리를 찾아다녔다. 굳이 다른 자리로 옮길 이유는 없었지만 그런 남편을 별말 없이 지켜보았다.

우선 지나친 아이의 시선을 돌려야 했기에 상황을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4살 아이에게 장애를 설명하려 하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자꾸 내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기 머리를 내리치는 아이를 일상적으로 건조하게 대하는 그 부모에게 감정이입을 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 관련된 일에 너무 쉽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어쩐지 그 사람의 행운을 모조리 빼앗아 얻은 것 같은 부채감이 느껴졌다.


"우와 푸딩 엄청 맛있다. 먹어봐. 아~."

입으로는 푸딩을 날름날름 받아먹으면서도 여전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두 손으로 아이의 볼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튼튼아 저 형아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거야. 계속 쳐다보면 형아가 마음이 안 좋을 수 있어. 쳐다보지 말고 얼른 푸딩 먹자."

나는 급하게 푸딩을 먹이고 자리를 떴다.




아이들은 지난 일을 예고도 없이 불쑥 꺼내기를 잘한다. 그날 저녁 간식으로 좋아하는 요거트를 먹으며 신이 났는지 춤을 추다가 대뜸 머리를 세차게 때린 것이다. 그리곤 마음이 아프면 머리를 때리는 거냐고 묻는 아이를 보며 다시 정정해야 했지만 이번에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장애가 있는 것을 마음이 아프다고 얼버무린 탓에 아이에게 혼란을 일으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아이는 마음이 아니라 머리가 아픈 건데 왜 마음이 아프다고 표현했을까. 아이 앞에서는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잘 모를 땐 말을 아끼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 비겁한 '어른 어'로 상황을 종결시켰다.

"아무튼 자기 머리 때리면 안 돼."


쇼핑몰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리고 집에 돌아와 머리를 때리는 아이 앞에서, 그리고 그 후에도 두어 번쯤 장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떠올렸었다. 그리곤 잘 모르겠고 급하지 않다는 핑계로 서서히 잊혀 가고 있었다.

얼마 후 마치 나의 쇼핑몰 사건을 알기라도 한 듯, 어린이집에서 반가운 알림장을 보내주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아이들에게 이해를 도울 책을 친절히 알림장에 공지를 해준 것이다. 유레카. 그래. 책이 있었지.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 책들 중 튼튼이가 이해하기 적당해 보이는 책 하나를 빌려왔다.


'달라도 친구'

서로 다른 외모, 성격, 관심사를 가진 일곱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다. 의기양양하게 아이를 옆에 앉히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의 의도대로 흘려가지 않았다. 다양성과 포용을 가르쳐야 하는데 아이는 등장인물에 꽂혀 자꾸 이름을 묻는 것이다.

"얘는 누구지? 얘는 이름이 뭐야?"

쓸떼없는(?) 조연들의 이름 묻기에 슬슬 짜증이 올라올 때쯤 의족을 낀 찬희가 등장했다. 나는 두 눈을 바짝 치켜뜨고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의족이 낯선 아이는 재잘거림을 멈추고 쇼핑몰에서 만난 형처럼 넋을 놓고 찬희를 바라보았다.

"튼튼이는 다리가 몇 개지? 그래. 두 개지? 그런데 찬희는 다리가 하나뿐이래. 다리가 하나면 걷기 어렵잖아. 그래서 이렇게 가짜 발을 끼고 다니는 거야."

"가짜 발?"

"응. 아... 그러니까..... 가짜...... 음. 로보트 발."

"로보트 발???!!"

다시 아이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로보트 발을 한 찬희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장에서도 그 다음 장에서도 찬희만 찾아댔고 찬희가 보이면 큰소리로 외쳤다.

"오!! 로보트발!!!"

그 이후로도 그 책을 읽을 때마다 아이는 로보트 발을 외쳐대며 신나 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또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로보트 발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는지에 관해 그리고 찬희라는 이름 대신 로보트 발이라고 불러대는 아이에게 또다시 가르침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나는 이 책을 펼쳤던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보았다.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모두의 이름을 궁금해하고 반가워하며 아무런 의도 없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니 말이다. 아이는 이미 순수했고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걱정하는 것일까. 정작 다름의 자연스러움을 체화시키지 못한 나의 기우인 것 같기도 했다. 쇼핑몰에서 만난 아이를 보며 당황하고 측은해하다가 황급히 떠났으니 말이다. 마음이 아파서 그렇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마도 내 마음이 아파서였던 듯하다. 그렇다면 내가 아파놓고 남에게 아프다고 누명을 씌웠으니 아주 어이가 없다. 책을 읽어주면서도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을 결핍의 시선으로 바라봐놓고, 정작 아이에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며 부자연스럽게 읽어내었던 것 또한 그렇다. 부모의 모든 것을 습자기처럼 흡수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어떠한 설명이나 교육자료보다도 실제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마음가짐과 행동일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색안경이 그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졌듯이.

언제나 해결책을 찾다 보면 필요한 건 더하기보다 빼기였다. 작지만 어엿한 아이에게 꾸역꾸역 채우려 하기보단 나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 도움이 되는 책'

여러 생각 끝에 나를 위한 책으로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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