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 이제 흐를래

by 유유이

"정말 친절하세요."

"굿."

"항상 친절하고 자세한 상담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시는 양대일 원장님. 상냥하게 응대해 주시는 데스크 직원분들 너무 좋아요."

"가족에게 소개받고 대표 원장님 진료받았는데 만족합니다."

"친절."

"1번 진료실 원장님 세심하고 꼼꼼하게 진료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또 습관처럼 후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냥 가까운 병원에 가보려 했는데, 어김없이 손가락은 예전처럼 검색창 위를 헤매고 있다.

이곳은 2인 원장 체제의 병원인 듯했다. 따로 병원 홈페이지도 없고 의사의 약력이나 병원 소개도 없었다. 후기가 나쁘진 않은 듯한데 같은 아이디로 여러 번 남긴 후기도 몇몇 보였다. 2인 원장 중 어떤 원장의 좋은 후기가 더 많은지 좀 더 찾아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예전 같았으면 네이버 카페까지 들어가 근처 병원을 더 샅샅이 비교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여력도 없었다. 언제쯤 방문하는 게 가장 효율적 일지 따져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통화 버튼을 눌렀다.




차라리 약을 먹는 게 나은가 싶기도 했다. 불안함을 떨치기 위해 운동하고, 애써 몸을 바삐 움직이고, 친구 만나고 하는 것들에 지칠 대로 지친 듯했다. 아니 그것들도 이제는 안 먹히는 지점에 이른 듯했다. 요즘 잘 맞는 정신과 약을 찾은 후로 삶이 달라졌다는 후기들을 요즘 꽤나 듣게 된다. 예전에는 약의 의존하는 나약한 느낌이라면 이제는 적절한 약을 잘 찾아서 알맞게 복용할 줄 아는 자기 관리의 느낌인 것이다. 몇 달 전에도 그 생각에 병원을 방문했었다. 약을 먹어서라도 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속이 어딘가 더부룩할 때에는 인지를 못하다가 트림을 한번 커억 하고 나면 속이 편해지면서 그제서야 내가 속이 불편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잘한다는 병원을 찾고 찾아 방문했다가, 두 번째 진료를 마지막으로 발길을 끊었던 건 압박감 때문이었다. 5분 단위로 예약을 잡는 병원에서 마음 편히 상담에 임할 수가 없었다.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하고 5분 후 예약자에게 어서 바톤을 건네야 할 것 같았다. 그 뒤로 이유 모를 불안감이 약간은 나아지자 호르몬의 문제라든가 글을 쓰다 보니 나타나는 증상이라든가라고 넘기고 지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다시 심해지는 불안증세에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우리집을 기준으로 정신과를 검색해 가장 가까운 곳을 클릭했다. 진료 잘하는 병원은 모르겠고, 잘 맞는 약을 찾으려면 자주 가기 편한 곳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좀 애매하네요"


내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은 의사는 지난번 의사와 같은 말을 했다. 분명 불안 상태는 맞는데 이게 약을 먹을 정도인지는 애매하다는 거다.

... 안 그래도 난 참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4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면서 파트타임 치위생사이면서 확신 없는 작가지망생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 잘 해내지 못하지만 욕심만 그득하다. MBTI검사 결과를 보면 그래프가 죄다 중간즈음에서 꼬물거렸다. 뚜렷한, 명확한, 극단적인, 독한... 뭐 이런 단어들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적당히, 어느 정도, 그럭저럭, 둥글둥글한 부류다. 내 삶도 그러하다. 딱히 별일 없는 무난한 삶이지만 애매하게 괴로웠다. 애매해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고 애매하게 숨통을 조여왔다.


애매하다는 말이 무언가 내 병명이 꾀병이라는 말을 에둘러 말하는 것 같았다. 지난번 병원에서 받았던 MMPI 결과지를 살펴보더니 앞 뒤가 안 맞는 답변이 몇 가지 있다고도 했다. 내 병명이 꾀병이라는 것에 더욱 힘이 실리는 듯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라고 나가야 하나 싶던 찰나 의사는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대기했다가 진료를 다시 이어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는 터라 다음으로 미뤄야 할 상황이었지만 기다려 줄 수 있냐는 의사의 말에 주춤거리다 알겠다고 했다.


아직까지 딱히 큰 피드백은 받은 것은 없었다. 그냥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타자를 치는 저 방의 의사가 조금 더 해줄 이야기가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방금 들어간 환자와의 약속 시간을 지키려는 모습에 대기 시간이 길수록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초조함이 밀려들기도 했지만 오늘은 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는 나에게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 같냐는 질문으로 했다. 어린 학생이 된 것 마냥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이제 본격적인 꾀병에 혼쭐 내기가 시작되는 건가 싶었다.

"유유이님은 잘못하고 계시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심지어 정말 열심히 살고 계세요. 심지어 육아에, 일도 하시고, 글도 쓰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뭐가 문제일까. 뭐가 불안한 걸까. 더 열심히 글쓰기에 매진하지 않고, 더 현명하게 육아하지 못하고, 더 잘 해내지 못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의사는 예를 들어보자며 두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첫 번째는 학창 시절이다. 그때에는 왜 지금처럼 미래에 대해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글쎄요. 그때는... 가정환경이 불안정해서? 말도 안 되는 핑계인가 싶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치위생사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으시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살고 계시죠.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내 현재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건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학창 시절의 미진하고 모호했던 그때를 지금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은 그렇게 냉정하고 잔인하게 굴기만 하는 곳은 아닐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두 번째는 과거에 취득했다가 장롱 속에 들어간 자격증이었다.

" 애견미용 자격증을 따서 일을 하게 되면 개들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이 돼서 그 일을 안 하셨다고 하셨죠. 애견미용 자격증을 갓 딴 초보를 채용하면 혼자 다 케어하게끔 내맡길까요. 아니에요. 숙련자가 옆에서 도와주고 봐주고 교육해 주고 한단 말이죠. 요가 자격증도 따면 처음부터 숙련자처럼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다 하면서 느는 거예요. 과정이 있어요.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요."

부끄러운 고개가 연신 끄덕였다.


"유유이님은 자꾸 극단적인 앞날을 걱정한다는 거예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그럼 마음이 편할까요. 상위권에 있는 아이들은 오히려 수능에서 한 두 문제 가지고 미래가 갈려요. 더 불안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거예요. 그냥 하는 거라고요. 극단적인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아요.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유유이님이 과연 미래에 보잘것없이 살고 있을까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의사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 쉬운 말로 제법 논리가 정연하게 나를 안심시켰다. 의식적으로 불안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주어진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나머지는 인생에 흐름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컨트롤이 안될 때에만 복용하라며 신경안정제 세 알을 처방해 주었다.




이 약을 과연 몇 알이나 먹게 될까. 지난번 한참을 검색하며 고심해서 찾아갔던 병원에서 처방해 줬던 우울증 약은 한 알도 먹지 않았었다. 약의 부작용이 두려워서였다. 어쩐지 이번에도 이 약을 먹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엔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이유 모를 불안과 낫지 않는 고관절의 통증, 지속되는 피로감과 날뛰는 감정들... 그 바닥에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고 통제 가능하다고 믿었던 오만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서 시작된 오만이 나를 뻣뻣하게 얼어붙게 했을까. 잘 한다는 병원을 찾아갔을 때는 별 성과가 없었는데, 기대 없이 찾아간 병원에서 큰 울림을 준 상황이, 의사가 해준 조언과 일치한다는 것이 더 깊은 각성을 불러왔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수업에서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신이 아니에요. 신이 되려 해서도 안되고요."


나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워서 신이 되려 했을까. 이제는 놓아주고 유유히 흘러가보아야겠다.

우연과 물음표를 사랑해 봐야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나 이제 흘러볼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로보트발을 설명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