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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육아를 아시나요

by 유유이



엄마의 일상은 너무나 바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엄마이자 아내이며 딸래미이자 며느리이고 거기에 '나'이기까지 하니까. 그중 어느 하나라도 등한시할 수는 없다. 해야 할 일이 과중하다고 시어머니 생신을 모른 척할 수 없고, 육아 동지로서 무병장수해야 할 남편에게 간장 계란밥만 주구장창 차려 줄 수 없으며, 100세 시대가 도래하는 미래를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한 마음으로 어정쩡하게 쉬는 게 오히려 더 피곤하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욕심쟁이의 하루를 살아낸다.


하지만 미운 네 살의 아이가 모든 걸 거꾸로 말하고 하루 종일 논리 상실한 요구와 짜증을 쏘아대면 '엄마'라는 본캐는 집어던지고 '옆집 아줌마' 아니 '지나가는 행인' 정도의 부캐를 장착하고 싶어진다.

어디서 애 우는 소리가 들리네.




그날은 병원에 환자가 별로 없어 월급 루팡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번 주는 또 무얼 해먹을지 레시피를 뒤져본다던가 마켓컬리에 먹을만한 밀키트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겠지만, 요즘 네 살짜리 꼬맹이가 나의 멘탈은 너덜너덜하게 초토화시킨 탓에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구부정하게 한쪽 턱을 괴고 릴스를 까딱까딱 내려보던 중 좋아하는 인터넷 방송인의 실시간 방송 알람이 울렸다. 아이를 낳고는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방송이지만 팬들의 단톡방에는 남아있었던 터라 알람을 보게 되었고 할 것도 없는데 오랜만에 들어볼까 하고 조심스레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오랜만에 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약간의 전율이 왔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차분하면서도 정갈한 그녀의 음성에 온몸이 노곤노곤해지는 듯한 생각지 못한 힐링이 일어났다. 예쁘면서 지적이고 개구지면서도 줏대 있는 그녀를 내가 좋아했던 이유가 논리가 아닌 감각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퇴근할 때까지 야금야금 청취를 이어 나갔다.


방송은 가벼운 농담과 사적인 일상으로 시작해, 흘러 흘러 요즘 이슈인 ‘김수현 논란’까지 닿았다. 며칠 전 친구와 가볍게 씹어댔던 그 논란에 대해 그녀가 입을 열자 흥미와 함께 이어폰 음량을 조금 더 올렸다. 그녀는 누구를 탓하거나 감싸기보다 그 사건이 우리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무방비하게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어갔다. 며칠 전 친구와의 수다를 그녀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부끄러웠고 음량을 올렸던 손으로 괜스레 눈을 비비고 머리를 쓸어댔다.
역시, 이래서 내가 좋아했지. 육아로 시들해졌던 덕질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 이어폰은 퇴근길과 함께 육아터까지도 꼭 붙은 채로 떨어질 줄 몰랐다.


막장 드라마만큼이나 재밌는 방송에 나의 본캐도 잊은 채 머리카락 속에 이어폰을 꼭꼭 숨기고 아이를 하원시켰다. 여느 때처럼 아이는 신발을 벗지 않겠다로 시작해서 씻지 않겠다, 옷을 입고 씻겠다 등등 이유 모를 잡도리를 해댔다. 평소라면 낮잠을 안 잤나 또 중이염에 걸렸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바들바들 참을 인을 세우며 아이를 구슬리고 설득하며 안간힘을 썼겠으나 공교롭게도 나의 모든 신경이 머리카락 속 이어폰에 몰빵 된 터. 아이의 짜증은 잠들기 전 나지막이 들리는 TV소리만큼이나 안개 낀 소리로 윙윙 거렸다. 나는 영혼 없이 자근자근 대답했다.

응. 그래. 근데 씻어야 돼.


남편도 퇴근을 하고 돌아왔다. 운동을 가는 날이라 남편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다시 집을 나섰다. 자연스레 몇 번의 대화가 오가며 함께 식사를 했지만 내 연기력 덕분인지 아니면 남편의 회로도 어딘가 쏠려있던 건지 내 귀에 박힌 그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자연스레 식사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비행기에 탑승시킨 숟가락을 몇 번이고 나르는 노고까지 곁들였으니 멀티태스킹이 몇 단계까지 가능한 건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거지를 하는 중에도 블록을 던지고 울고 소리 지르고 하는 아이의 난동은 계속 됐다. 나는 차분히 설거지를 하다가 무너진 블록을 재건해 주기를 반복했다. 슬슬 아이를 재울 시간이 되자 이어폰을 빼야 했지만 방송 속 주제거리가 더욱 흥미진진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본인이 싫어하는 사람이 대성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오래 지켜본 그녀는 거짓말이나 과장은 절대 안 하는 투명한 성향이었기에 싫어하는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그 획기적인 마인드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호기심이 들끓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채팅창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나도 사슴님처럼 되고 싶다 채팅창이 들썩거렸다.

< 좀 나르시시즘일 수도 있는 발언인데... 저는 웬만하면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아요. 그런데 내가 싫어한다? 뭔가 있는 거지. 그런 사람이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잘 안 풀린다? 그것도 또 별로거든. 그리고 또 싫어하는 사람이 잘되면 그거만큼 큰 자극제가 또 없어요.>


... 이렇게 멋나는 나르시시즘이 또 있을까. 그렇게 그녀는 요즘 느낀 감정들과 깨달은 점 들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느낀 순수한 재미에 엄청난 몰입이 일어났다. 몰입했기에 멈출 수 없었고 결국 이어폰을 꽂은 채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책 읽어 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책 읽어 주기란 아무런 필터 없이 글자를 읽기만 하면 되는 행위여서 순조롭게 무의식 상태로 행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한권만더읽어줘'와 '안돼.늦었어' 의 줄다리기가 오갔겠지만 무의식은 시계를 볼 새도 없이 무한대로 읽어댈 에너지가 충분했다. 그러니까 책 읽어주기가 힘들었던 건 목이 아프기보단 언제나 그다음을 향한 염두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혼 없는 책 읽기가 5권쯤 이어졌을 때 놀랍게도 아이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작년 여름 캠핑장에 가서 낮잠도 안 자고 수영장에서 놀다가 나와 내 품에서 스스륵 잠든 그때 빼고는 단 한 번도 갑자기 잠든 적이 없던 아이였는데 어쩐 일인지 '지나가는 행인 모드 육아'에서 예상치 못한 순조로움이 일어난 것이다.


나의 재미에 푹 빠져 아이를 등한시하니 벌어지는 순조로움. 아이러니하도다. 물론 진심의 상호작용은 모두 빠진 하루였으나 나의 영혼은 엄청난 충전이 일어났다. 그래. 이렇게 채우는 날도 있어야지. 그러니까 오늘 하루 약간의 편법의 시간 보냈지만, 나름 셀프 육아의 시간을 보냈다며 합리화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미안해. 아가야. 근데 엄마도 아직 더 커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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