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배우 송일국의 집에 장난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시절 나 또한 '슈퍼맨'의 엄청난 애청자였다. 삼둥이들이 휑한 집에서 몸을 부대끼며 노는 모습을 보며 어딘가에 장난감을 숨겨놓은 게 아닐까 하며 화면 구석구석 큰 눈을 뜨고 보기도 했다. 그런 의심병과 동시에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저런 환경에서 육아를 하고 싶다는 판타지 아닌 판타지를 갖게 되었었다. 왠지 모르게 그러한 육아 방식이 마음에 들었었다. (삼둥이 엄마가 판사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는'의 역할인 것 같기도...)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장난감은 아이의 놀이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들 아이에게 정신없고 시끄러운 장난감을 쥐어주고 싶겠는가. 잠시라도 밥 한 끼 사람답게 먹을 수 있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잠시라도 정서를 나눌 수 있게, 집안일을 신속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도구라는 사실 말이다.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영위해야 장기전의 육아가 온전하게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하며, 삼둥이네의 장난감 없는 집은 추억 속에 판타지 영화처럼 마음 한켠에 묻어두었다. 그리곤 하나 둘 장난감을 들이기 시작했다. 나름의 합리화는 그래도 내 돈 주고 새 장난감을 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얻어 온다거나 선물 받아 오는 것뿐이니 괜찮다는 식으로. 그 와중에 아이의 적절한 발달을 위해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블럭이나 퍼즐 같은 아이템은 내돈내산을 했다. 그러니 집은 점점 가득 찼고 우리는 결국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했으니 빚은 늘어났고 그 돈을 채우기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돈을 벌러 나갔다. 주객이 전도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이것이 우리에겐 최선이었다.
어린이집에 한참 적응을 하고 한 해가 지나 네 살이 되었다. 미운네살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닌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은 훈육을 하는 나에게 "파워~~~!!!"라며 다섯 손가락을 꼿꼿하게 들이밀고 역공을 펼치는 아이의 기세에 실소가 터져 나오면서부터였다. 무섭게 혼을 내도 타격감이 없어 보이니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훈육이 기싸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집은 난장판이니 내 멘탈은 더욱 정리되지 않았다. 얼마 후 나의 뇌 속을 염탐이라도 하고 간듯한 인스타에 한 영상이 눈에 띄었다. 우리 아이 또래의 쪼꼬미가 정리정돈을 알아서 착착 잘도 하는 영상이었고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는 아이의 엄마의 음성이 노하우를 친근히 읊어주었다.
" 저는 아이에게 혼을 내지 않아요. 시간을 고지하고 그때까지 정리하지 않으면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까지 정리를 하지 않았으면 가차 없이 버려요. 물론 진짜 버리지는 않고 버리는 시늉만 하며 어딘가에 숨겨 놓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장난감을 찾는다면 슬그머니 다시 갖다 놓고, 찾지 않는다면 며칠 보관했다 진짜로 버리는 거예요. "
꽤나 좋은 방법 같아 보였다. 스스로 정리 정돈을 하게 유도하면서 안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적절히 처분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육아법이었다. 바로 그날 저녁 남편에게 육아법을 공유하고는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아이는 온갖 장난감과 블럭을 바닥에 깔아놓고 이제 퍼즐을 하겠다며 퍼즐상자를 집어 들었다. 이때다. 목소리를 깔고 우리집의 장난감 규칙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약속한 대로 튼튼이가 안 치웠으니 엄마가 버리는 거야. 이 블럭은 이제 버릴 거야. 진짜 버릴 거니까 울어도 소용없어."
"응. 버려!"
아이는 무심하게 퍼즐을 맞추며 대답했다. 울며불며 잘못했어요 정리 잘할게요의 시나리오가 벌어지지 않자 당황했지만 블럭 가방을 손에 꼭 쥐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비상계단에 숨겨두고는 다시 들어와 남편과 눈썹을 씰룩거리며 속닥속닥 회의에 들어갔다. 진짜로 버리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라는 가설 하나와 버려도 상관없는 흥미가 떨어진 장난감이어서 라는 가설 둘과 반항심으로 인해 속상함을 짓누르고 덤덤한 척 연기를 한다는 가설 셋을 추론했다. 셋 다 일수도 있겠다며 일단 이 방법을 계속 고수하자고 결의를 다잡고 나 또한 덤덤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전날 블럭을 버린 게 정말 아무렇지 않았는지 아이는 바로 다음날도 집안일 쑥대밭으로 만들고는 당당하게 정리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엔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구상했었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아이는 눈에 핏줄을 세우며 자지러졌다. 다시 장난감을 돌려주며 이번만 용서해 줄게 다음부터는 그러지말라는 멘트가 입에서 삐져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아이는 한동안 억울하다는 듯 울부짖었고 미안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경험하는 기이한 감정으로 아이옆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 다음 번은 수월할 듯 싶었으나 역시 아이는 예측 불허. 이것도 버리라며 같이 장난감 버리기에 동참하는 아이 말에 나는 이성을 잃고 바닥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싸그리 담아 쓰레기봉투로 내던졌다. 집에 있는 장난감의 절반 정도를 버린 듯하여 저걸 어찌 정리해서 어디에 숨겨놓을지 머리가 아팠지만, 일단은 센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버리고 난 후에도 아이는 미동도 없었고 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거리더니 얼마 후 밤잠에 들어갔다. 뭐지 이 상황.
그러한 패턴을 몇 번 반복한 후로 아이는 다행히도 정리를 잘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집의 장난감은 조촐히 남게 되어 집 또한 한결 깔끔해졌다. 그리고 그 포상으로 야금야금 돌려주려던 장난감은 어쩐 일인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없어진 과일 모형을 찾는 대신 탱탱볼을 접시에 담아와서는 과일을 먹자고 했고, 버린 자동차 장난감을 찾는 대신 쿠션에 앉아 자기 차에 같이 타고 시장에 가자고 했다. 장난감 방에서 쭈그려 앉아 '뚜쉬뚜쉬 으아악' 소리를 난발하는 시간이 줄고 거실에 나와 공을 차고, 구르고, 춤을 추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나의 시간을 벌어주는 마법은 줄었지만 비교적 쾌적해진 환경에서 불필요한 기싸움이 줄어드니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아이가 손수 준비한 탱탱볼 과일을 잠시 음미할 여유가 생겨났다.
그리곤 그 여유 안에서 추억 속에 삼둥이네를 떠올렸다. 여백 가득한 거실에서 아이들이 집안살림으로 이것저것 만들며 노는 모습. 그리고 우리집도 그 모습과 조금은 닮아있는 것 같아 혼란했던 육아 중에 자그마한 위로와 자신감을 담아내게 되었다. 내가 품었던 꿈이 판타지일 뿐이라고 포기하기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며 '유사 판타지'로 일상을 채워가는 것도 꽤나 훌륭한 듯하다. 어떠한 모습이건 진심이라면, 그리고 나아가고 있다면 충분할 테니..
당신의 판타지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