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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지면 결국 쿠팡입니다.

적당함의 오류에 관하여

by 유유이 Mar 19. 2025



 소소하지만 은근히 골칫거리인 고민을 안겨다 준 건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튼튼이의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미리 보내달라고 공지가 온 것이다. 부피가 너무 크지 않고 적당한 선물을 보내달라고는 덧붙인 말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아이의 생애 첫 산타할아버지와의 만남인 나름의 기념일이다 보니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아직 어리다보니 딱히 특별하게 필요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선물에 비해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너무 유난스러워 보이는 선물도 피하고 싶었다. 일종의 꾸안꾸 선물이랄까.


이건 너무 저렴하고.

이건 너무 부속품이 많아서 치우기 힘들 것 같고.

이건 너무 비싸잖아. 몇 번 갖고 놀지도 않을텐데.

 인스타와 카페 등을 여기저기 검색해 가며 고민했지만 적당한 선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조리원 동기에게 물어보니 나와 비슷한 고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런 거 진짜 별거 아닌데 은근히 신경 쓰인다니까. 튼튼이한테 뭐 갖고 싶냐고 물어보면 엉뚱한 소리만 하더라고. 밑도 끝도 없이 파란색이 갖고 싶다나."

" 나도 똑같이 물어봤었거든? 뭐래는 줄 알아?"

"뭐... 공룡? 아니면 포크레인?"

"바나나래."

"바나나? 하하하 너무 귀엽다."

"그래서 그걸 남편한테 말했더니 그럼 진짜 바나나 포장해서 어린이집 보내라는 거 있지."

 친구와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떻게 바나나를 보내냐며 웃어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바나나가 선물로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며칠을 고민하며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선물을 보내달라는 기한이 가까워졌다. 포장할 시간도 필요해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적당한 중장비 장난감을 로켓배송으로 주문했다. 내일 새벽 배송 예정 문구를 보며 한시름 놓으려던 순간 집에 포장지가 다 떨어졌다는 걸 깨닫고는 부랴부랴 다이소로 향했다. 정말 별거 아닌 게 사람 꽤나 피곤하게 한다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하원한 아이의 손에는 내가 포장한 선물이 뜯지 않고 그대로 들려 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개봉하지 않게 한 모양이다. 서로의 선물을 시기하고 싸우거나 분실을 우려한 어린이집의 현명한 판단으로 보였다. 이렇게 집에 돌아와서 선물을 뜯는 건 줄 알았으면 좀 더 부담없이 선물을 골랐을텐데.



 집으로 들어와 선물을 뜯어보는 아이의 옆에서 남편과 나는 숨죽이며 집중했다. 크게 환호 한다거나 폴짝폴짝 뛰며 좋아할 줄 알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점잖게 선물을 관찰했다. 그런 아이의 반응이 아쉬웠는지 남편은 아이에게 갈증 어린 질문을 쏘아댔다.


"튼튼아! 좋아? 얼만큼 좋아? 이거 갖고 싶었어? "


아이는 장난감에 집중하고 탐색하느라 리액션을 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만지고 눌러보더니  '이거 좋아'라며 환하게 웃었고 우리 부부도 아이를 따라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에게 선물을 준 대신  리액션을 되받기로 한 듯이.




  해맑게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그간의 고민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적당한 선물의 고르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계산하며  한참을 낭비한 에너지와 시간들을 말이다. 육아를 하며 나를 피곤하게 하는  대부분은 나의 이런저런 욕심인 듯 했다.


 잠시 후  찢겨져 바닥에 나뒹구는 포장지를 주워 모으며 나는 생각했다.

주저없이 바나나를 사는 어른이 되고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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