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푹 빠져서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십이층’의 〈영업 중>이라는 예능. 논제를 두고 밸런스 게임을 하듯 '이쪽이 맞다, 저쪽이 맞다' 하며 티키타카를 벌인다. 말 그대로 서로의 논리를 ‘영업’하는 게 컨셉인데, 출연진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장을 펼친다. 짓궂고 과도한 영업에 빵빵 터지기도, 조곤조곤 조리 정연한 영업에는 진지하게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가벼운 킬링 타임용으로 보던 그 프로그램이, 뜻밖에도 커트보를 두른 미용실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날도 그는 퉁명스러웠다. 지난 첫방문 때 냉담했던 응대의 기억도 흐릿해졌고 어쨌든 머리가 마음에 들었던 터라 다시 한번 방문한 것이다. 첫 질문을 하자마자 그때의 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른 시술이 들어가지 않는 한 커트만으로 다른 스타일은 못 내죠."
어울릴만한 스타일을 물었더니 딱 잘라 정답으로 내 말문을 막았다. 당당하고 칼 같은 미묘한 어투에서 나는 미묘한 위축감을 느꼈다. 내가 당연한 질문을 한 건가.(긁적)
그는 저번처럼 신중하게 커트를 시작했다. 내 몸과 머리의 각도, 커트보의 대칭을 바로 잡으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조정하더니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에(커트보) 쿠션 갖고 계세요?"
"네?! 아네..."
학생 주임 선생님께 몰래 숨긴 핸드폰을 빼앗기듯 그는 쿠션을 날카롭게 꺼내갔다. 순간 쿠션은 아까 어시스트 분이 주신 거라고 변명을 할 뻔했다. 안정을 찾은 듯한 그는 빗질을 시작했다. 정갈히 쓸어내리고 고르게 가른 후 머리칼을 툭툭 잘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안정시켰던 대칭이 조금씩 이탈하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그는 가차 없이 바로 잡았다. 나는 중심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머리 자르는데 이렇게 까지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시선을 잠시 돌리자 커트보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잘려나간 머리가 생각보다 짧아 보였다. 비싼 돈 주고 자르는 거니 이왕이면 많이 잘라야 그나마 마음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조금 더 잘라달라고 할까. 하지만 길이와 대칭을 정밀하게 쌓아 올리는 작업으로 보이는 레이어드 컷 작업 중 그 흐름을 끊고 수정을 요청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조금만 자르고 가자. 이 김에 좀 길어보지 뭐.
합리화를 시키며 마음을 돌리려 1분 정도를 소요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45000원의 커트값이 아른거렸다.
" 죄송한데... 조금만 더 잘라주실 수 있을까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몇 초간의 멈춤 끝에 입을 뗐다.
"아까 2~3센티 정도 잘라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만큼 자른 건데... 그럼 처음부터 다시 잘라야 돼요."
그렇다. 분명 내가 2~3센티 정도 잘라달라고 애매한 요청을 했었고 변심을 한 상태이다. 죄송하다고 말하려 하는데 그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한 번 더 말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서 그래요."
한번 더 내뱉은 그에 말에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굉장히 잘못을 한건 같기도 했고, 굉장히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몇 센티 더 자르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더 부정확한 말투로 애매하게 대답했다. 긴장이 되어서 버벅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큰소리로 되물었다. 몇.센.치.요?
가위조차 화가 난 듯해 보였다. 나는 숙연하게 시선을 조아리며 곳곳이 자세를 유지했다. 매번 똑부러지질 못해 이렇게 머리 하나 자르는 데도 이러고 있다며 타박을 시작했다. 거울 속 얼룩덜룩한 새치와 푸석한 얼굴이 선명해졌다. 나는 애써 입술을 비벼대며 핏기를 끌어냈다. 아니 근데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입술을 좀 더 질끈 물었다.
커트가 다 끝난 듯 그는 고데기를 집어 들었다. 앞머리도 자르고 싶은데 커트가 끝난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잠시 고민을 하다 처음부터 다시 하는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냉큼 말을 꺼냈다.
"혹시 커트가 끝난 건가요?"
"아니요. 스타일 잡고 나서 앞머리도 자르고 숱도 더 칠 거예요."
괜히 설레발친 것 같아 가만히 있을걸 하고 입을 닫았다. 그는 고데기로 곱게 머리를 편 뒤 앞머리를 얼만큼 자르고 싶냐고 물었다. 정확히 말해야 할 것 같아 커트보에 숨어있던 손가락이 다급히 튀어나왔다.
"여기쯤, 턱 선에 맞춰서 잘라주세요."
"그렇게 툭 자르라고요???!!!"
황당하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레이어드 된 머리카락에 이어지지 않는 쌩뚱맞은 앞머리를 요구한 모양이다.
"하아"
그제서야 참을 수 없는 탄식이 튀어나왔다. 당당히 고개를 틀고 단전부터 뜨거운 호흡이 뿜어낸 것이다. 여태까지는 내 잘못도 있었던 거 같은데 이번 일은 정말이지 너무 무례했다.
아니 퍼스널 케어니 맞춤형 상담이라느니 다 맞춰주고 상담해 줄 것처럼 광고해놓지 않았어요? 내가 묻는 말에 칼같이 딱 잘라 말할 거라면 그렇게 광고하면 안 되죠. 고액의 커트비용에 그런 서비스 비용까지 포함된 거 아닌가요. 제대로 상담을 안 해주니 내가 중간에 말을 바꾸는 불상사가 생기는 거죠. 아니 그리고 좀 더 잘라달라는 게,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아참. 아까부터 내 몸이 문제라도 있는 마냥 계속 고쳐대던데 내가 일부러 몸을 비대칭하게 만든 것도 아니고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아주 등등한 기세로 쏘아 붙었다. 마음의 소리로.
분노의 날숨질에 그가 태도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당황하며 내 눈치를 보는 듯이 차분히 되묻고 확인하는 그의 모습에 끓어올랐던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진 것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의 친절함이 의무는 아닌 것도 같았다. 애매한 뉘앙스들을 가지고 명확하게 따지기도 뭐 한 듯했다. 친절하면 고마운 것이고 마음 안 든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음부터 찾지 않으면 될 노릇이다. 그렇게 차가운 호흡을 이어가려 했지만 어쩐지 꽁한 마음이 풀리질 않았다. 내가 어여쁜 아가씨였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괜시리 서글퍼지도 했다. 속상한 마음에 후기를 남겨볼까도 했지만 그것은 분풀이에 지나지 않으며 나에게도 그에게도 별 도움은 될 것 같지 않았다.
사과.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보면 사과를 받는 것이다.
보통은 이런 경우에 상대가 내 눈치를 보거나 미안해하는 듯한 행동, 나에게 괜한 말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의 행동을 사과로 인식했었다. 자기도 잘못한 걸 알기는 하나 보다며. 오늘도 미용사의 돌변한 말투며 행동으로 그가 잘못을 인식하고 고치려 한다고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뒤끝이 남아 후기를 남길까 하는 약간의 복수심을 키우는 걸 보면 나는 그가 적당히 사과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합리화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기분이 나빴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진상손님처럼 보이진 않을지 계산했고, 내가 느낀 감정이 합당한 지에 대해 검열하며 결국 별일 아니라며 넘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나쁜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자의식 과잉,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체면치레 그리고 갈등을 피하려는 회피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 편하려고 상대에 사과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는 억울해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핑계를 대며...
하지만 그동안 작은 낌새만으로도 쉽게 용서를 한 탓에 정말이지 좋게 좋게 넘어가며 무탈한 하루와 인간관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 덕에 소중한 사람들과 더욱 두터운 신뢰를 쌓게 되기도 하고. 물론 모든 것은 사람 바이 사람, 상황 바이 상황이겠지만.
사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반드시 말이어야 할까. 하지만 언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에도 분명 사과의 개념은 존재했을 것이다. 지레짐작한 사과로 용서해 왔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결국 뒤끝이 남아 앙금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며 서로 따뜻해지기도 했다.
말로 표현해야 사과다 .
아니다.
마음을 담은 행동도 사과로 인정할 수 있다.
혼자 화냈다 풀어졌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커트보 안에서 즐겨보던 밸런스 게임을 제시해보고 싶다.
여러분은 어떤 쪽에 마음이 기우시나요.
혼란스러운 저를 영업해 주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