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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jump)-black peanut

브런치 10주년 축하합니다.

by 유유이



언니가 떠났다.

어릴 적 나비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녀는

나비처럼, 정말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나는 땅콩이었다.

아빠는 작고 새까맣게 태어난 나를 땅콩이라 부르곤 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던 아빠는 이따금씩 내지르고 내던지면서 사랑스러운 딸들을 껍질 속에 꽁꽁 숨게 했다.
부모님이 심하게 부부싸움을 할 때면 겁에 질린 언니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었는데, 그 옆에서 내가 노래를 부르곤 했단다. 니가 그렇게 성격이 좋았다며 그때를 떠올리고들 했지만 그랬을 리가. 그 순간이 정말 좋아서 흥얼거린 아이였다면 병원에 데려갔어야지.




그렇게 나는 단단한 껍질 속에서 껍질인 듯 알맹이인 듯 다수에 섞여 별일 없는 듯 숨죽여 살았다.


꿈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딱히 열 올리며 재미있어하는 것들도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물으면 강아지와 산책하기, 친구들과 수다 떨기처럼 말하나 마나 한 것들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좋은 남자와 결혼해,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고, 다정히 밥을 먹고 싶었다. 나는 그냥 심심하게 태어났나 보다며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알 수 없는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 조금씩 꾸물거렸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유 없이 잘 울었다.



남편에게 끌렸던 건 그 때문인 듯하다. 감정의 기복 없이 묵묵히 하루를 보내는 그를 보며 결혼용으로 딱이라고 우쭐댔었다. 그의 견고함은 대부분의 에너지가 그 자신에게 쏠려있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언제나 무언가에 푹 빠져 이글거리는 남편은 그 대상이 한때 나였고 그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만 사랑해 달라는 요구는 너무나도 볼품없었고 오히려 그의 반발심만 키웠다.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답은 하나였다.


나도 내 것을 찾을 것.




그렇게 나 또한 이글거리겠다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글쓰기를 만나게 되었다. 못다 한 수다 욕구를 글 안에서 자유롭게 털 수 있었다. 그렇게 꽁꽁 숨어있던 알맹이가 이제는 비집고 나아가길 희망했다. 그 꿈틀거림은 안정적인 현실에서는 잠잠해있다가 불안정이 찾아올 때마다 형체를 드러내며 거칠게 요동쳤다.



견딜 수 없어 글을 썼다. 그렇게 한 편을 쓰고 나면 이상하게 서러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못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이. 그렇게 진정한 내 꿈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꾸었던 꿈은 그저 '생존'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위험이 없는 데도 구호물품 껴안고는 차갑게 웅크리며 지냈다는 것을. 단단한 껍질 속에서도 내가 살아있다고 나도 보여주고 싶다고 돌돌 거리며 진동하던 알맹이는 이제 자신을 드러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내 꿈은 욕심입니다.

죽음의 반대인 삶이 아니라

글을 써내고야 말겠다는 아주 사나운 욕심입니다.

땅콩처럼 머무르지도 나비처럼 날아가버리지도 않고

이 땅에 단단히 일어서며 때로는 폴짝 뛰고 때로는 냅다 달리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뛰어본 사람이 걷기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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