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머무르겠다고 한 결심을 후회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불편한 건 주차난이다. 그 때문에 외출을 했다가도 퇴근시간 무렵이면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 신세가 되어버렸다. 차를 구입하면 자유롭게 누비고 다닐 거라 기대했지만 저녁시간엔 발목이 묶여버렸다.
두 번째로는 편의시설이다. 오래된 구축아파트에 개발이 덜 된 지역이라 그런지 주변에 음식점이나 마트, 병원 등의 상권이 형성되어있지가 않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이 재개발지역으로 묶여 그나마 있었던 가게들도 문을 닫게 되었다. 어지간한 곳은 차로 들락거려야 했고, 식사는 의도치 않게 매일 집에서 해 먹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처음엔 이 김에 요리실력도 늘리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부실한 식사로 한 끼 때우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결국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쇼핑 없이는 못 사는 처지가 되었고,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동네에 갈 일이 있을 때면 그동안 저장해 놓은 쇼핑리스트를 해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예상했던 터. 어느 정도는 불편하지만 장점을 생각하면 감수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상권대비 고속도로 나들목과 굉장히 가까워 외부 지역을 가기 편리하다. 먼 지역을 출퇴근하는 남편을 생각해도 그렇고, 타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나 부모님을 생각해도 이곳이 제격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자연을 좋아하는 터라 근처에 절을 품고 있는 산이 있다는 점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 산 아래로 내천길이 이어져있고 그 길 주변으로 시골스러운 풍경이 펼쳐져있다. 조금만 걸어가면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건 포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장점이었다. 아이를 키우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이가 걸음마가 익숙해질 무렵, 비좁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기 무리라는 생각에 결정한 이사를...
바로 앞 동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신축으로 가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이었고, 이 동네가 좋다며 평수가 더 넓은 코앞의 집으로 선택했다. 처음엔 막혔던 숨통이 트이듯 더는 바랄 것이 없이 기뻤다. 기나긴 복도를 걸어갈 필요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바로 내 집인 계단식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너희 동네는 주차가 문제라 신축을 갔으면 좋았을걸이라며 안타까워하시는 시부모님께 한 계단 씩 행복해지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유식을 먹으며 겨우 아장 거리는 시기에서 끊길 줄 모르는 에너지의 아이를 키우는 시기가 되자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냥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아이의 체력은 날로 날로 뻗쳐가니 일상의 동선들을 최대한 줄이고만 싶었다. 매일 먹고 사고 병원에 가는 현실에 부딪히며, 고속도로고 숲이고 나발이고 편의시설이 제일이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다. 신축은 못 가더라도 그나마 상권이 잘 형성되어있는 동네로 갔어야 하나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지 못한 또 하나의 문제는 육아 동지의 부재이다. 어린 또래 아이들이 별로 없는 터라 미친 에너지의 날뛰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날이 갈수록 힘에 겨웠다. 얼마 전 남편 친구 부부와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였던 날, 그 아쉬움을 더욱 절실히 느꼈었다. 다 같이 놀기 좋은 시기가 찾아온 건지 그날따라 아이들의 텐션이 하늘까지 치솟았었다. 얻어맞은 것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쉬지 않고 깔깔대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매일이 이렇다면 미운 네 살의 힘겨운 시기도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색종이 하나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거실을 뱅글뱅글 도는 것만으로도 자지러지리는 그 순간 어떠한 장난감도, 개입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친구처럼 잘 놀아주는 엄마라고 자부했었는데, 그 순간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나마 동네에 친했던 동갑내기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사를 가버렸다. 둘째까지 있는 집에서 이 동네에 남아 아이 둘을 키우기엔 버겁다며, 결국 상권과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로 옮긴 것이다. 그 집에 몇 번 놀러 갔었는데 아이들이 바글대는 놀이터와 널찍한 지하주차장을 체험하고 돌아오면, 우리 집의 현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와 숨이 턱 막혔다. 분명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쩌랴. 이미 주어진 현실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순 없었다. 분명 시기마다 원하는 니즈가 바뀔 것이고 매번 떠돌 수도 없다며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하지만 자아가 강해져 모든지 싫다 하는 난동질을 나누어 짊어질 육아동지 없이 온전히 둘만의 시간으로 보내는 것에 지쳐갔다.
그 또래 친구가 이사한 뒤로는 놀이터에도 시큰둥해졌다. 처음엔 어르고 달래 적당히 집 근처에서 놀리다 들어갔지만 좋아하는 간식 미끼도, 으름장을 놓는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 동네의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말에나 갔었던 내천 길이 하원 후 들르는 코스가 되어버렸다. 그곳에 가기까지 차도만 있는 길도 있고, 잘 닦인 길이 아니다 보니 날뛰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게 녹록지는 않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산책로가 길게 펼쳐져 있어 자유롭게 뛰놀기도, 킥보드로 활주 할 수도 있다. 내천 길에 돌멩이를 던지며 동그랗게 퍼지는 물결들과 소금쟁이를 관찰하는 것 또한 아이가 꽤나 좋아하는 것들이다. 운이 좋은 날은 오리 가족들을 만나기도 한다. 새끼 오리들이 있어서 인지 동네 사람들도 오리들을 만나면 손주 자식 보듯 예뻐하며 헤엄치는 오리들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내천 길을 시시해하면 집 근처에 자리한 오래된 초등학교로 향했다. 구석진 곳에 작은 모래 놀이터가 있어, 다이소에서 구매한 모래놀이 장난감을 챙겨가 모래놀이를 하기도 한다. 운동장 전체가 모래로 되어있다 보니 어르신들이 종종 맨발 걷기를 하고 계신데, 그 모습을 보면 튼튼이도 질세라 신발을 벗어던진다. 그러다 보니 이제 그 운동장만 가면 아이와 함께 맨발로 뛰어놀곤 한다. 처음엔 맨발로 사부작 거리며 노는 게 다였는데 요즘은 맨발로 함께 축구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때로는 거리가 좀 있는 도서관으로도 향했다. 4살 아이가 걸어서 오가긴 조금 무리인 거리이기도 하지만 아이의 체력도 키워줄 겸 찬찬히 걸어간다. 가면서 만나는 신호등, 강아지풀, 포크레인 등이 이야깃거리가 되어 한참 떠들다 보면 산에 둘러싸인 도서관이 나온다. 어린이 도서관에 들러 장난만 치다 오기도 하고, 종합자료실에 들러 내가 책 고르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올 때도 있다. 최근에 들렀을 땐 오며 가며 보았는지 짝다리를 짚고 한 손으로 책을 후루룩 훑으며 고르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는 일상을 보내고 나면 아이 재울 때 같이 나가떨어지는 피로를 안고 살기는 하지만 어쩐지 그런 하루가 쌓여갈수록 마음 한편이 점점 든든해져 갔다.
무엇보다 요즘 가장 찐하게 느끼는 이곳의 매력은 쉴 새 없이 보내주시는 사랑이다.대부분 연배 있는 분들이 거주하는 동네다 보니 돌아다니다 보면 몇 걸음 걸러 마다 사랑 담긴 인사와 눈빛을 받게 된다. 아이가 종알거리며 걸으면 그 말에 맞받아치는 농담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힘차게 내달리고 있을 때면 어쩜 그렇게 잘 뛰냐며 칭찬세례를 퍼부어주신다. 그렇게 주고받는 사랑 옆에서 나 또한 덤으로 그 사랑을 함께 하니 거리를 거닐 때면 훈훈한 마음이 물씬 차오른다. 그것이 익숙하다 보니 요즘은 걷다가 누구라도 마주치게 되면 미리 칭찬받을 준비를 하듯 앞서 생긋 웃기까지 한다. 이 동네의 대스타처럼...
그래서인지 아이는 낯선 사람을 만나도 비교적 잘 적응한다.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흔히 아이들이 나이 든 사람을 꺼려하는 것과 달리 동네 어르신들에게 애정 어린 말을 건네는 아이의 모습들을 보면, 받은 사랑이 고스란히 스며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엔 먹고 싶다는 포도를 한 박스 사서 집으로 향하는데 옆집 할머니댁에 드리고 싶다는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었다. 많으니까 이만큼만 갖다 드리자며. 종종 이뻐해 주시며 아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나 요플레를 꺼내 주시곤 했었는데 그 기억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아이는 포도를 들고 옆집에 가서는 집에 안 가겠다고, 할머니와 놀고 싶다고 한참을 떼쓰다 혼자 놀다 오기까지 했다. 남편은 그 집에 틀어진 TV 때문일 거라고 웃었지만, 나는 그 비밀이 구축에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이렇게 유년시절을 동네 사람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라나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훗날 이 사랑이 아이에 정서에 엄청난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이 든다. 최근 심리 연구에서 일상에서 스치는 경비원이나 가게 점원 같은 인연들과의 긍정적 교류가 삶의 행복도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접했었는데 쌓여가는 자양분이 나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
종종 신축에 사는 지인들에게 놀이터에서 아이들 소음,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으로 커뮤니티에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빈번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매끈한 신축이 편의를 위해 모였기에, 편의를 침해하는 요소가 배려받기 힘들기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이곳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품게 되었다. 구축의 길들은 다소 울퉁불퉁하지만 자세히 들여보면 저마다의 반짝이는 모서리에서 있다는 것을. 매끈한 길은 빠르게 지나쳐 버려, 그 모서리를 놓치고 말지도 모른다.
아이와 긴 길을 걷는 시간, 흙과 자연을 만끽하며 공존의 감각을 배워가는 순간들, 그리고 '사랑'.
이러한 것들이 분명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엄청난 자산이 될 것 같아 투박한 이곳에 점점 정을 붙이게 된다.
불편이 불행은 아니니까,
오늘도 나는 구축의 모서리따라 천천히 걸어가기로 한다.
적당함의 오류에 관한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