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가 낳은 극단적 선택
아무것도 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 어제 업로드한 글이 평소보다 더 반응이 없다. 풀이 죽어버렸다. 글을 올린 지 1시간쯤 지났을 때 글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했고, 하루가 지난 지금 모든 게 엉망이라는 생각뿐이다. 재능도 없는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육아도 집안일도 점점 구멍이 나고 있는 듯하다.
뚜렷한 목표도 없이 일단 써보자며 시작한 지 일 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딱히 그려지는 무언가 없이, 그저 남은 건 집착뿐이다. 좋아요 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오히려 더 큰 집착으로 자라났다.
새 글을 올릴수록 오히려 반응이 점점 줄어드는 듯했다. 뛰어난 실력이 아니니 B급 아니 C급 에세이로 승부를 보겠다 한 주제에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떨어진 것을 아쉬워했다. 메타인지 마저 바닥을 쳤다. 마음에 드는 글을 한편 완성하면 세상을 얻은 듯 우쭐해하다가 잠잠한 피드백 앞에서 금세 찌질해졌다. 피드백을 위해 글을 쓴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휘둘리는 걸 보면 나에게 글쓰기는 피드백, 그러니까 인정욕구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그만해야 할 때라는 알람이 울리는 듯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다. 잠깐만 쉬려고 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다.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무의미안 쇼츠를 돌리고 돌리다 보니 음지의 영상이 점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나의 우울을 알아챈 게 분명했다. 배고픔이 극에 달하자 먹다 남은 된장찌개와 햇반을 꺼내 먹었다. 다 먹은 그릇을 그대로 둔 채 손가락만 까닥거렸다. 지우려 했었던 어제 글을 다시 눌렀다. 길기만 하고 뻔한 글이었다.
근데. 잠깐만.
조회수가 치솟아있었다. 뭐지.
Chat GPT는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 패턴의 조회수 상승은 어딘가에 노출된 것이라고 하면서도 어디에 노출되었는지는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노출이 되기는 한 건지 , 노출이 되었다면 수많은 알고리즘에 의미 없이 얻어걸린 것인지, 아니면 혹시 어떤 편집자나 관리자의 의해서 선택된 건지 진실을 알고 싶었다. 이곳저곳을 뒤져 정답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드러난 건 변함없는 좋아요 수와 비어 있는 댓글뿐이었다.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밀려왔다.
명분. 명분을 찾고 있었다.
새빨간 하트에 대한 갈망과는 조금 달랐다. 조회수 상승에 대한 진위 파악이 또다시 집착으로 변모한건 아마도 계속 써도 될 빌미를 만들고 싶은 것. 내 글의 어느 구석 하나쯤은 그래도 읽어줄 만하다는 증거를 찾고 있는 것이다. 육아를 핑계로 알바만 하고 있으니 그럴듯한 구실도 필요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을 조회수로라도 퉁치고 싶다. 생각해 보면 여태껏 비슷한 패턴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내 글의 의미를 증명할 건덕지를 찾고 또 찾았다. 부정적 피드백이 보일 때에도 어떻게도 좋게 해석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니까 나는 완벽한 답정너였다.
만약 이 사태가 완전한 우연의 해프닝이라면. 이 글을 읽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그만두게 될까.
꾸준함이 답이라고들 한다. 꾸준히 하면 결국 기회가 찾아온다는 그 말은 기회를 맞이할 확률을 높이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확률은 말 그대로 확률일 뿐. 꾸준히 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의 말은 널리 퍼지지도, 솔깃하게 전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 확률을 믿고 나아갈 확신의 미라클은 내게는 없는 듯하다.
그냥, 쓰고 싶다.
아마도 나는 계속 이 모양일 것이다. 희미한 신호들에 호들갑 떨었다가 또 무너져버렸다가. 평생을 이래 왔으니 못 고친다고 봐야 한다. 애매한 모양새로 명분을 찾아 헤매겠지만 그 명확함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아무리 끌어다 붙여도 결론은 '하고 싶다는 감각' 그것뿐일 것이다.
하고 싶으니 해야지.
이건 단단한 결심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감이다.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