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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by 유유이




잡아당겨지는 옷자락의 감각을 인지하고서야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남편과 내 사이에 선 채로 우리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우리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미안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순간에는 미안한 감정을 느낄 새조차 없었다. 엄마 아빠가 중요한 이야기 중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자 아이의 칭얼거림은 멈추었다. 그 뒤론 아이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싸움을 이어나가다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마음이 추스려지자 다시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 화해한 우리의 모습을 보았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 남편과 나 모두 갈등 상황에 있어서 회피형이라는 점이다. 나는 주로 상황을 좋게 해석하며 애써 좋은 방향으로 합리화시키는 식의 회피. 남편은 감정을 억제시키고 일단 상황을 모면하려는 회피. 그러니까 우리 둘 다 대체적으로 참는 성향이라는 거다. 그래서인지 우린 남들처럼 치열하게 싸우지는 않아 왔다. 그렇게 4년을 연애하고 나름 무난한 결혼 생활을 해오다 결혼 5년 차에 아무 징조도 없이 이혼 위기를 맞이했었다. 남편의 일방적인 잘못이었지만 어쩌면 그동안 회피해 온 문제들이 고스란히 묵혀있다 터진 게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이혼 위기를 넘기며 많은 대화를 약속했지만 아이와 탄생과 함께 모든 게 흐려져갔다. 당장 아이를 재우고 먹이고 놀아주느라 둘만의 시간은 없어졌다. 찬란한 아이를 마주하고 있으니 싸울 일이 얼마 못 가 녹아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며 현실적인 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그 찰나쯤 남편의 직장이 바빠지게 되자 침전되었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원래 같았으면 대화하기 아주 적절한 최상의 타이밍을 기다렸을 것이다.

최상의 타이밍이라 함은

1. 나의 흥분된 감정이 가라앉아야 하고

2. 풀어야 할 갈등에 대해 충분한 분석을 거친 뒤

3. 남편의 기분이 최상인 시점에 (보통은 배고프거나, 피곤하거나, 졸리지 않고 자유시간을 즐기고 온 직후이다)

4. 아이가 자거나 없는 상황.

하지만 그 타이밍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새벽같이 출근하는 남편을 아이가 잠든 후에 불러내기란 자멸 행위일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썩어 문드러지기 일쑤였다. 조곤조곤 싸우지 못하는 우리가 아이 앞에서 싸운다는 것은 우리 같은 회피형을 복제해 내는 것과 다름없으니 그동안은 대부분 참아왔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잠들려 했지만 내일부터 썩어 들어갈 생각을 하니 그것도 암담했다.


결국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조곤조곤 풀어갈 판타지를 품은 채, 순간의 충동으로 말을 내뱉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큰소리가 오갔고 감정이 치밀어 오르자 결국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엔 소중한 아이가 거짓말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미숙한 싸움이 이어지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가 달랐다. 끝까지 아무도 회피하지 않았다는 것. 그만하자며 자리를 뜨려는 남편을 끝까지 붙잡았고 남편도 결국 자리를 지켰다. 아무도 참지도 도망치지 않고 모두 내뱉은 끝에 다행히도 우리는 접점을 찾게 되었다. 싸웠기에 넘겨짚지 않을 수 있었고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썩어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싸우길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이가 보였다.


밝아 보였다. 장난도 치고 웃기도 하는 걸 보니 마치 우리와 함께 화해를 한 것 같았다. 명랑한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씻기는 사이 문득 아까 우리 사이에서 옷깃을 잡아당겼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네 살짜리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불안한 음성과 조숙한 눈빛이 스쳤다. 지금의 저 명랑함이 혹시 애씀일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정리가 필요하다. 아이의 세상에 지진이 훑고 갔으니 무너져 내렸으리라. 무너진 파편 속에 번듯한 새집이 불쑥 들어왔으니 이질적일 그 세상에 파편들을 차근히 치워야 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아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친구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싸우는 이야기를 빗대며 엄마 아빠도 그렇게 싸우고, 너 한번 나 한번 하기로 하듯이 화해했다고 했다. 일방적인 변명처럼 들릴까 남편도 함께 이야기하게 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는 더욱 해맑은 표정으로 엉뚱한 말을 내뱉기만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침실로 가 책을 읽어 주고 마사지도 해주었다. 남편과도 잘 풀었고 아이도 웃고 있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눕자 어딘가 껄끄러웠다. 유독 해맑았던 아이의 모습이 마음이 걸렸다. 감정과 정서라는 게 몇 마디 말로 말끔해지는 게 아닐 거란 걸 왜 간과했을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의 몸을 다시 어루만지며 물었다. 너는 어땠냐고.

그러니까 너를 물었어야 했다.



어. 엄마 아빠가 너무 시끄러웠어. 어. 그래서 귀가 아팠어. 그리고... 어어.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어.



가슴팍이 아려왔다. 아려움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가 머리까지 퍼졌다. 많이 아팠구나. 철저히 나만 생각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미안한 눈물이 차올랐지만 눈물로 호소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처럼.

눈을 고쳐 뜨고 이를 악물었다.


정말 미안해. 너를 많이 불편하게 했어. 많이 힘들었지. 크게 소리치는 건 정말 잘못한 거야. 그건 고치도록 엄마 아빠가 반드시 노력할 거야. 지금은 사이좋게 화해했지만 엄마 아빠는 또 싸울 수도 있어. 친하게 지내다 보면 싸울 일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엄마 아빠는 싸워야 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새우등을 지키려면 결국 고래 등을 지켜야 하기에.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기에.

싸움을 선언하고 말았다.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흉터 가득한 새우이기에. 복잡한 감정이 요동 치려 했다.

이내 단단한 손으로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우리 모두의 등을 어루만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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