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하는 동화.

by 유유이


가끔 아이가 잠에 들지 못할 때면 즉석에서 이야기를 지어서 동화처럼 읽어 주곤 했다.

몇 달 전 캠핑장에 놀러 갔었는데 책을 안 가져온 탓에 아이를 재울 때 한번 해보았는데 1편을 다 지어내고 난 후 바로 후회를 했었다. 또 읽어줘의 무한 반복이 시작되었기 때문.


실제 책을 읽는 것은 영혼 없는 눈과 입만으로 가능한 단순 육체노동이나, 지어서 읽어주기란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엄청난 정신노동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 해준 뒤로는 싹을 잘라야겠다는 생각에 이제 이야기가 없어, 생각이 안 나, 머리가 아파 라는 갖가지 핑계로 거부해 왔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동화 지어내서 읽어주기 행위에 대해 잊고 있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 말이다.

비가 와서 찌뿌둥한 건지 짜증스럽게 일어난 아이는 안아달라고 칭얼거리다가 갑자기 대뜸 잊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그 책 읽어줘. 꼭대기 사과 이야기!"


꼭대기 사과가 뭐지 싶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캠핑장에서 지어냈었던 동화였다는 게 떠올랐다. 사과나무에 여러 사과들이 열렸고 그중 꼭대기에 달린 사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꼭대기 사과를 아래 사과들이 질투했던 거 같기도 하고. 생일잔치를 한다고 노래도 부르고 했던 것도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는 그 이야기를 아이가 아직까지 기억하고는 읽어달라고 한 것이다. 그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에 그 말에 순간 마음이 오묘했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인정해 준 첫 독자를 만난 느낌이랄까.


사실 요즘에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내가 업로드하는 여러 글들의 반응에 아직까지도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글들 뿐만 아니라 만든 음식, 집안일, 운동, 새로 배우고 있는 것 등등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 스스로 평가를 하고 채찍질을 했다. 하루라도 허투루 시간을 보낸 것 같으면 자책하고 침울해지기 일쑤였고, 어젯밤에도 그러느라 속상한 마음으로 잠들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이가 위로를 해주듯 내 이야기에 책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었지만, 내 책이 언젠가 이렇게 나오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설렘의 순간이었다.

고마워. 아가.

근데 그 책... 다신 못 읽어...

기억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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