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와 조감독
2023년 새해 인사가 오갈 때 조대리에게서 조금 특별한 연락을 받았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 같은 상투적인 인사 대신
’나 올해는 꼭 영화를 찍어야겠어.‘
하고 시작된 그녀의 말은 ’ 도와줄 거지?‘ 로 끝났다.
나는 그 연락이 무척 기뻤다.
나와 조대리는 대학교에서 알게 된 사이로 우리는 각각 30,27살에 1학년으로 입학한 늙은 신입생이었다. 나는 실용음악, 조대리는 영화과였는데 우연하게 친해진 뒤로 졸업 후에도 동기 친구들보다 더 친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 덕분에 나는 단편 영화에 들어갈 음악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영화라는 종합 예술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하는 작업에 조대리가 참여한 적도 있었다. 2019,2020년 만들었던 공연의 영상을 같이하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콘티, 일일촬영계획표를 짜는 방법, 촬영의 기법 등등의 것들을 조대리에게서 배워나갔다. 생전 모르던 촬영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가는 과정은 성가시고 힘들기보다 즐거움이 더 큰 작업이었다. 그건 나의 취향과 성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었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도 순식간에 특별한 이야기처럼 맛깔나게 설명해 주는 그녀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면, 그게 무슨 내용이든 재미나게 듣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만든 영화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재미와 재기 발랄함이 묻어나서 나는 그녀의 감독커리어가 흥행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안정적인 경제력이 필요했고 학교 입학 전에 조대리였던 그녀는 졸업 후에 또 다른 회사의 조대리로 입사하게 되며 내가 간절히 바랐던 그녀의 흥행을 조금씩 미뤄졌다. 나도 그녀도 그저 속으로만 기원하던 조감독의 영화를 드디어 올해 만들어보자고 움직이게 된 것이다.
어떤 것이 그런 다짐에 불씨를 일으켰는지,
왜 굳이 올해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어째서 다른 사람보다도 나에게 제일 먼저 이런 다짐을 말한 것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예술이란 것은 늘 불현듯 시작한다.
매일 출근해서 조대리로 회사원의 삶을 살던 그녀의 하루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불씨가 커다란 불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조대리가 조감독이 되어가는 순간을 옆에서 기록하는 기록자이자 영화의 프로듀서로 이 여정을 함께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