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잘하고 싶은 사람
우리 엄마는 나를 28에 가지셨다.
얼렁뚱땅 선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해서 낳은 첫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 말을 지독히 안 들었다.
다른덴 몰라도 눈만은 아빠처럼 큰 쌍꺼풀을 달고 나오라고 그렇게 타일렀건만, 반항하듯 엄마를 쏙 닮은 무쌍 커플로 태어났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엄마 인생에서 역대급 어려운 육아가 시작되었다.
유치원 지우개 도둑질 사건, 119 호출 1건, 응급실 1건, 자퇴선언 1건, 무단결석 1건(이상일 수도 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대학 등록 취소 1건, 학사경고 1건 등의 멋진 이력을 지닌 나의 지난날로 봤을 때 나는 결코 좋은 딸은 아니다.
그것이 피부에 와닿게 시작한 것은 엄마가 늘 하시던 '이담에 꼭 너 같은 딸 낳아라'던 말이 점차 무서워지기 시작하고서부터인데, 엄마가 나를 낳았던 28살을 지나고 나서는 그 두려움이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되었다. 이런 나를 낳아 기르시다니.
그 위대한 일을 해낸 여성의 사진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선 꿈에도 몰랐을 시절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사진이다.
그 '나 같은 딸'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올해로 34세 미혼여성이 되어 여전히 엄마의 불효녀로 살아가는 중이다. 이건 사실 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어릴 적 다투는 부모님을 보고 '나는 결혼 안 해!' 하고 선언했던 적은 있지만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꼭 먼저 가더라'라는 식으로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셨고 나는 알게모르게 그 말에 안심했다. 마치 나이를 먹듯이 결혼이란 것도 살다 보면 의례 자연히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나도 누구나 겪는 결혼을 평범하게, 무사히 잘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그러나 나는 20대 초반까지는 입버릇처럼 말하던 '결혼 안 해'를 꿋꿋이 고수했다. 그땐 나도 나를 잘 모를 때이기도 했고 혼자 스스로를 책임지면서 자유롭게 사는 싱글 여성들이 시크하고 멋져 보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자 그동안 간과하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크게 두 가지 문제이다.
1. 혼자 멋지게 살 수 있을 만한 커리어를 가지기가 쉽지 않다.
나는 나름 작곡이란 것이 전문직종이고 열심히 공부하면 뭐든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그것만으로는 멋진 커리어를 만들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멋지게'를 이뤄줄 경제적 소득을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싶어서 찾아보니 30대가 되면서부터는 취직도 알바도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아 졌다. 어떤 일에 열정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새로운 것을 시작할 엄두부터가 나질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내가 꿈꾸던 '블랙 앤 화이트 인테리어의 깔끔하고 넓은 집에서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로 시작되는 독신 생활은 첫 줄부터 어렵게 됐다. 간신히 내는 월세집으로는 여유로운 독신여성이 아니라 간신히 살아가는 노처녀가 될 것이다.
2. 사실 나는 현모양처 체질일지도.
조던 피터슨 선생님은 저명한 임상심리학자이자 비평가, 작가이다. 비록 임상 심리학에 포함된 인문학, 사회학적 지식은 적지만 재미있어서 강연을 찾아 듣곤 하는데 그중에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다.
주제는 어째서 사회의 고위관리직이나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성비가 고르지 않냐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간을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해서 특정하기 힘들듯이(MBTI포함) 제각기 고유한 형질은 남녀를 구분 않고 발현되지만 임상심리학적 연구 결과에서 남녀 각각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형질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런 불균형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성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진취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유형은 커리어에서 두각을 나타내, 결과적으로 큰 소득이나 명예로 이어진다. 반대로 관계지향적 사람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이루는 것보다 가정을 돌보고 유지하는데 기쁨과 안정을 느낀다.
내 욕심으로는 둘 다 쟁취하고 싶지만 가정을 돌보며 상대방의 커리어를 위해 내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무엇에 근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할 자신도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앞서 말한 1번이 어려워진 것인지, 1번을 경험해서 현모양처에 대한 가능성이 열린 것인지는 마치 닭이냐 알이냐 하는 문제처럼 가리기 어려운 문제지만.
내가 어릴 때 말하던 '결혼 안 해'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부모님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결혼 생활이 아니라 결혼으로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결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여기서 말 한 '잘 한 결혼'이란 것에는 여자들이 꿈꾼다는 결혼식이나 웨딩드레스 혹은 결혼반지, 깜짝 놀라 자빠질 프러포즈 같은 건 없다. 이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나란히 같이 걸어갈 좋은 친구를 구하고 싶다는 뜻이다. 심적으로도 온전하고 법적으로도 완전한 그런 친구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같이 걸어가고 싶은 남자가 한 명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돈도 있어야겠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쉽지 않다. 남들은 쉽게 쉽게 하는 것 같아 보이더니 막상 내가 결혼을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자 이것만큼 어렵고 난해한 일이 없다.
어른들이 결혼을 인생의 당연한 수순처럼 말할 때는 독신주의를 외치다가 세상에 독신주의와 비혼이 유행처럼 번지자 결혼주의가 되어버린 어느 지독한 청개구리의 말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