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으로
동기 H와 나는 취준생이다.
나는 강사 생활이 싫어서 다른 직종으로 여러 회사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었는데 취준생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이제는 아르바이트라도 하려는 상황이었다. H는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 실용음악학원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게 된 학원 면접이 힘들었노라며, 면접 결과도 늦게 알려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결코 남 일 같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력서를 너무 많이 넣어서 온 세상 회사의 인사 관계자분들이 나를 알 것만 같아. 근데 그중 아무도 내가 필요하지 않나 봐.'
그렇게 서로의 비슷한 처지를 위로하던 때에 그녀가 면접을 봤던 학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계가 막막할 때 한 순간이라도 숨통이 틔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 일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합격을 축하해 줬다. 그런데 내 축하를 받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언니도 힘든데 제 합격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나는 이런 말이 처음이라 놀랐다. 내가 아는 H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라, 같이 힘든 시기의 유대를 다지던 사이에서 혼자 탈출한 것만 같아서 느끼는 미안함과 혹시나 자신의 소식으로 내가 더 괴롭지 않을까 해서 해준 말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것이 정말 터무니없는 걱정이며 님이 잘 되셔도 하나도 배 아프지 않으니까 승승장구하시라고 했다.
남이 잘 되는 것에 속상한 마음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매우 오래된 질병이다. 하지만 왜 남이 잘 돼서 내가 아파야 할까?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그냥 기쁠 수 없는 걸까? 나는 이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한다.
1. 타인의 행복을 곧 나의 불행으로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하버드 졸업생을 대상으로 추적 통계를 내 만든 책, '행복의 조건'에서는 인간을 행복한 상태로 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인간관계로 꼽고 있다. 나의 인간관계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 그들이 불행하면 어떻게 나와의 관계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결국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며 나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나 스스로도 행복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2. 성공을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전제하에,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나의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 최선을 다 한 것 같은데, 온전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결과는 항상 내 기대 이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멋지게 날아오르는데 나만 저 아래로 고꾸라진 듯한 기분에 내가 만든 노래조차 나를 괴롭히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왜 실패를 한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 하자,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잘되길 바라냐'던 어떤 이의 말이 수년간 나를 못살게 굴었다. (정말 수년간이었다.) 그 수년의 시간 동안 그보다 얼마나 더 했어야 했냐고 화만 내던 나는 진정한 내 실패를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다.
비극과 슬픔은 한 발 멀찍이 떨어져서 봐야만 그 형태가 보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불행은 예견도 쉽고 판단도 쉽다. 다들 타인의 연애사엔 연애 박사가 되거나 '그럴 줄 알았어' 하고 쉽게 참견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내 것이 되면 무방비한 상태로 물에 빠진 듯이 제대로 일어설 수조차 없어진다. 지금 내게 불어오는 파도가 질투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도 알 수 없이 그저 물살이 이끄는 대로 휩쓸리며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온갖 것들이 나를 괴롭게 굴 동안 나는 화만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 감정에서 천천히 일어서, 한 걸음 밖으로 나올 준비를 했다. 그러는 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경험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건넨 응원과 애정, 나의 작은 성공, 또 다른 작은 실패 등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 이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게, 어쩌면 그때 제대로 안 했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내가 바랐던 것을 못 얻었구나.
그런 실패를 했구나.
그리고 나는 무지무지 슬펐구나. 그 실패가.
나의 실패를 진정한 실패로 만드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는 동안에는 괜히 다른 사람이 잘하는 일에 배도 아프고, 내가 한 것들은 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파하고 있다는 증거다. 용기를 내서 내가 왜 아파하는지 살펴보자. 그렇게 찬찬히 보다 보면 나를 가장 힘들게 한 말이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꺼내보자.
나의 실패가 상처가 되었다면 그곳에 햇빛을 비추자.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두지 말고 따뜻한 바람을 쐬어주자.
꽁꽁 얼어서 온갖 것들이 아프게 부딪히던 촉감에 봄이 왔노라고 알리자.
나는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렇게 봄은 오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