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보다 출생순위
머리를 자르려 간 미용실에서였다. 디자이너 선생님이 나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시더니,
"외동이시죠?"
하고 물어보셨다.
선생님의 추리가 정답이라고 해 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외동이 아니다. 그런데 보통 나를 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럴 경우 대화의 흐름은 대체로,
외동 아닙니다, 그럼 오빠 있으세요?
아니요 동생 있어요, 그럼 남동생 있으세요?
아니요 여동생 있습니다.
이런 식이다.
아마도 외향적이고 수더분한 내 모습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오빠나 남동생이 있을 법하게 다닌다. 화장품이나 옷차림에도 큰 관심 없고 놀러 다니고 운동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들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인지 내가 장녀라는 것에 별다른 의식 없이 살아왔는데 그날 머리를 자르며 선생님과 나눈 대화에서 나의 장녀 기량을 발휘했다.
그것의 발단은 디자이너 선생님이 나의 여동생과 같은 출생순위를 가졌던 것에서부터였다. 선생님의 언니는 무뚝뚝한 편이라 고민을 말해도 얼른 해결하려고 하지 공감해주지 않는다며 그런 언니에 대해 내심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셨다. 신기하게도 내 동생도 나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니는 왜 힘들다는 이야기를 안 해?"
하며 불만스럽게 나를 쳐다보던 동생이 기억난다. 그때 난,
"힘든 게 없어서 그래. "
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 대답을 들은 동생은 더욱더 뾰로통한 표정으로 '됐다, 그냥 말을 말자.' 했지만 나는 저 말이 100퍼센트 순수한 진심이었다.
생각해 보면 분명 나도 힘든 일들이 있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달픔이 솟아날 때,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마음이 힘들어질 때, 인생이 다 그런 불안과 서러움의 연속이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동생 앞에만 서면 정말 힘든 것들이 없어진다. 오히려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돼버린다. 동생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해다 주고, 이렇게 해 주길 바라면 기꺼이 그리 해 줄 수 있는 언니가 된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게 내 책임감의 형태였다.
장녀로 자라면서 나는 동생보다 우리 가족의 고난과 시련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 동생이 유야무야 모르고 넘어갈 동안 나는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면서 이 일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를 함께 궁리했다. 그러면서 엄마의 고민이 내 고민이 되는 경험을 했다. 엄마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그때부터 나는 우리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사명감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매우 무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 동생에게 그런 책임감을 나눠주고 싶지 않다. 동생에게 약하거나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편히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 보니 그 앞에서 나는 항상 강철 언니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장녀의 입장'에 대해 알려드렸더니 디자이너 선생님은 내 말을 이해해 주시며 덕분에 언니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출생순위든, MBTI든, 혈액형이든, 별자리든, 나는 상대방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는 행위는 지양하려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과 나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서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서 생긴 다름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상대가 특히 형제자매라면 그 노력을 위해서는 출생순위에서 오는 특이점을 알아야 한다. 동생이 나에게 그런 불만을 성토했듯이 나도 동생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친구 J의 '동생들의 설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족 내에서 동생으로 자란 J덕분에 나도 간접적으로나마 동생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중이다.
장녀에겐 장녀의 어려움, 동생에겐 동생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가 완벽히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를 잘 위로하는 사이가 될 순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