름의 나열 ch.3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처럼, 여름의 매미가 시끄럽게 운다. 한낮의 더위에 옷이 쩍쩍 들러붙을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도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린 한 해의 절반을 실감하지 못할 때, 매미가 힘차게 울기 시작하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이건 한여름의 소리. 벌써 두 번째 계절을 지나고 있다.
나는 약수가 나오던 산 밑에 자리한 작은 동네 낡은 주택가에 살았다. 컴퓨터도 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아침밥숟가락 놓자마자 뙤약볕에 나가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노는 것이 일이었다. 약속을 잡지 않아도 밖에 나가기만 하면 동네 아이들이 늘 놀고 있었는데, 서로 이름도 잘 모르고 가끔 처음 보는 친구가 있어도 어색한 것 없이 어울려 놀았다. 놀이라고 해 봤자 특별할 것도 없었다. 개구리집짓기, 개미굴 찾으면 땅 파 보기, 살구나무 올라가기... 햇빛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나 덜렁대는 탓에 자주 넘어지느라 성할 날이 없는 두 무릎까지 아주 동네 어른들 말씀대로 영락없는 ‘왈가닥’이었지만, 그래도 아빠 눈에는 예쁜 늦둥이 딸이었다.
아빠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뒷산을 자주 가셨다. 산모기를 쫓느라 땀으로 끈적한 팔뚝을 연신 쓸어내리며 열심히 산을 올랐다. 여름의 뒷산은 눈만 돌리면 풀벌레와 곤충들이 정말 많았는데, 아빠는 곤충을 정말 잘 잡았다. 동네 문구점에서 산 싸구려 플라스틱 채집통을 들고 아빠를 쫓아 산을 오르면, 어느새 채집통에 곤충들이 가득 담겼다. 사마귀나 여치, 방아깨비는 흔하게 잡을 수 있었고, 지금은 보기 힘든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도 심심찮게 잡히곤 했다. 나는 아빠가 잡아주는 곤충 중, 매미를 제일 좋아했다. 가끔 숫매미를 잡는 날엔 소리도 우렁찬 게 너무 신기했고, 뭣보다 매미는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공격성이 없어 잘 물지 않으니 겁 많은 내가 만지기도 부담이 없었다. 아빠가 잡아주는 매미들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 기였어서, 나는 어린이용 동물도감을 열심히 뒤지면서 이름들을 찾아보곤 했다. 참매미, 애매미, 이건 말매미, 저건 쓰름매미… 가만히 들여다보면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과 매끈한 등이 참 예뻤다. 그렇게 동생이랑 같이 몇 시간을 채집통만 들여다보면서 한참 구경하다 저녁노을이 질 때쯤엔, 꼭 집 주변 풀숲이나 뒷산 초입으로 가서 곤충들을 풀어주고 와야 했다. 그래야 아빠와의 놀이가 끝이 난다. 그마저도 재밌다고 동생이랑 시시덕거리며 달려드는 모기들을 정신없이 쫓으면서 집으로 내달렸다. 빈 채집통을 달랑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둑했지만, 매미 울음소리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예쁜(사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것 같지만...) 모습의 매미는 나무에 붙어 한 달 남짓 살다가 간다. 우렁차게 울어대는 이유도 한 달 안에 번식하기 위한 짝을 찾아야 하기 때문인데, 어릴 적 아빠의 놀이를 생각하면 가뜩이나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을 맘대로 뺏은 것 같아 미안해질 정도로 치열한 삶이다. 그래도 매미는 곤충 중에선 꽤 장수하는 편에 속한다. 땅속에서 날개도 없이 기어 다니는 모습으로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으며 무려 약 7년을 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미는 일생 대부분은 땅속에서 기어 다니며 보내는 셈인데, 야속하게도 땅속에서의 모습은 ‘매미’가 아닌 매미의 ‘유충’이다. 우리는 한 달 남짓 사는 성충만을 ‘매미’라고 부른다.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문득 궁금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비로소 '매미'라고 불릴 때, 누군가의 기준으로 매미가 아니었던 땅속의 7년을 돌아보며 매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7년의 준비와 인고 끝에 드디어 짧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화한 듯 말하지만, 사실 이들은 땅속에서 구부정한 모습으로 주어진 생을 다 살아내고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아름답게 장식할 줄 아는 곤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한 달의 짧은 시간은 매미의 장식된 죽음이 아니려나. 어쩌면 매미는 긴 시간 땅속에서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매미가 아니라 ‘유충’이라 불릴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