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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행직 공무원의 딜레마

보조, 지원, 서포트...? 교행직의 한계

by 유난

공무원을 그만둔 지도 넉 달이 되어간다.


내가 매일 아침 고속도로 톨비를 내고 장거리 출퇴근을 했던가. 행정실 제일 깊은 곳, 창을 등지고 앉아서 모니터를 때리는 햇빛에 눈이 시큰거려 눈물 흘리면서 모니터를 보았던 게 꿈이었던 것처럼 벌써 아득하다.



내가 그렇게 놓기가 어려웠던 안정된 직장, 연금, 공무원 이름값... 그만두고 나니까 정말 별게 아니었어서 그동안 내가 어떤 허상에 갇혀서 살았던 건 아니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가끔씩 '이럴 거면 더 일찍 관둘걸.'싶을 때도 있었다. 15년간의 공직생활 중에 겪었던 최악의 빌런들, 최고의 갑질들, 육아와 간병과 여러 가지 상황이 짬뽕돼서 사는 거 자체가 힘들었던 시간들. '그때 그만둘 것을 너무 악착같이 버텨왔네.' 싶었다.



나는 왜 그만둘 수 밖에 없었을까.


시어머니 같았던 교장 때문에? 태업하는 시설주무관 때문에? 교사와의 자존심싸움 때문에? 장거리 발령 때문에? 일이 지겨워서? 미래가 안 보여서?


이유는 너무 많았고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폭발한 화산처럼 모든 이유들이 나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종용하는 것 같았다.







내가 교행 3년차때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너무 진저리가 나서 교육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업무강도나 업무환경은 학교보다 교육청이 훨씬 빡셌지만 같은 직급,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있고(학교는 나와 같은 직급이 없어서 행정실은 완전 수직적 구조이다.) 내 고유의 업무가 있어서 좋았다. 그땐 며칠씩 야근을 해도, 진상진상 상진상 민원인을 만나도 참을 수 있었다. 일하는 게 즐거웠고, 일하는 내 모습에 만족했다.



그러다가 임신을 하고 출산준비를 하면서 앞으로 아이를 낳고 이런 업무강도로는 육아와 함께 병행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어서 쓰면서 교육청에서 나왔다. 그때 당시엔 육아휴직을 하면 교육청에서 나가야 했다. 암묵적으로 다시 교육청으로 복직할 수 없었다.(요즘은 그렇지 않다.) 면접 보고 힘들게 들어간 본청에서 나오기로 결심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그곳에 있으면 학교나 지역교육청에 있는 동기들보다는 승진이 빠른 건 확실하니까. 육아휴직을 하려면 명예(교육청 근무한다는, 나 혼자만 아는 명예;;)와 승진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친한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하고 학교로 복직을 했는데 예전에 학교근무 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땐 내가 너무 초짜였는데 이제 난 교육청 경력까지 쌓인 7급 주무관이었기에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행정실에서 내 일이 아닌 일에도 나서는 오지라퍼였다.


교육청 근무하는 주무관들의 마인드는 항상 학교를 지원한다는 마음이라 그때까지도 그런 게 몸에 배어있었던 것 같다.


"실장님, 바쁘시면 그 일 저 주세요."

"선생님, 그거 제가 할게요."

"그거 제가 알아봐 드릴게요."

"주무관님, 제가 알려드릴게요."


실장님께는 똑순이라고 칭찬받았고, 선생님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찾았고, 새로 온 실무사님은 나 때문에 신나서 출근한다고 했다. 오랜만의 행정실 업무가 새로웠고, 교육청 근무기간 제일 스트레스였던 민원전화가 없었고, 육아에 찌들다가 잠시 해방되는 시간이라 할만했다.



잠깐 그랬다. 그런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서서 하다 보니 일이 서서히 나한테 몰리기 시작했다.



좋은 실장님이 발령이 나서 떠나시고 최악의 실장님(일도 모르고 일도 안 하고 교장 상대도 못하고 행정실 전화기로 종일 사적인 전화통화하고 대화도 안 통했던 그녀)이 왔다.


40학급 학교의 차석은 하루종일 지출만 해도 하루가 모자라다.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더 이상 물건을 담을 수 없어서 학년별로 반별로 나눠서 물건을 주문해야 했다. 지출과 관련된 계약과 그에 따른 내부결재까지.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했던 나에게 새로 온 실장님은 예산업무도 넘기려고 했었다.


나는 인상이 착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지만 실제로는 못돼ㅊ먹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지만 싫어하면 윗사람이고 뭐고 상대 안 한다. 싸가지 없다. 강약약강이 아니라 강강약약 스타일이다.



그 실장님은 존경받을만한 분이 아니었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분이 넘기는 일을 받을 수 없었고 받을 생각도 없었다.

실장님이 온 지 얼마 안돼서 나한테 예산을 알려주겠다고 했다.(어디서 개수작?)


"계장님, 예산 해봤어? 내가 이거 알려줄 테니까~~"

"예산 안 해봤어요. 예전 실장님이 예산 관련 업무는 다 하셨어요."

"이번에 배워보는 거 어때?"

"죄송해요. 제 업무로도 너무 바빠서요."


정말 양심도 없다. 만 2돌 아기 육아하면서 출퇴근하는 사람한테 하루종일 전화로 수다 떨어서 소음공해나 유발하는 인간이 어디서 일을 넘기려고. 내가 물렁물렁 받아주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꾸하니 한번 시도하고는 그 이후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경력 13년차 7급 실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내가 의원면직을 결심하게 되었던 그 학교는 혁신학교였다.

그것도 그 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이 제일 오래된 혁신학교. 다른 학교에서 혁신교육을 배우러 찾아오는 그런 학교였다.


교사들은 수업과 연구에 집중하고 일부 부장교사(교무, 혁신)와 전담교사(안전, 정보화)가 교무업무를 지원했으니 그 지원팀이 얼마나 업무 과부하가 걸렸을까. 그런 이유로 얼마나 많은 애매한 업무들이 행정실로 넘어왔을까.



매번 싸웠다. 매번 공문을 갖고 핑퐁을 하고 매번 공문 배부에 불만을 가진 교사와 주무관들이 교감, 행정실장을 찾아왔다. 교감과 행정실장이 이게 어째서 교무실일인지, 이게 어째서 행정실일인지를 두고 싸웠다.

사실 별 것 아닌 공문이었다. 어쩌면 그냥 접수만 하면 되는 시답잖은 공문들.


"별 것 아니니까 저희가 접수할게요." 했던 호의가 후에 과도한 업무로 되돌아왔다. 계획을 세워라. 실행해라. 결과를 보고해라 등등.



"나는 애들 가르치는 교사인데 대피훈련을 왜 제가 해요? 실제로 대피하는 상황일 땐 전 교실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있을 텐데요..?"(안전담당교사)

"애들 가르치는 것도 바쁜데 이건 행정업무잖아요. 행정실에서 해야죠."(담임교사)

"행정실이 교사들 지원하라고 있는 부서 아니에요?"(어떤 교사)


날 선 대치가 이어질 때마다 상처받았고 화가 났다. 핑퐁 싸움에서 이겼을 때도 찝찝했고 졌을 때는 분노했다.



교행직도 나름의 고유한 회계업무가 있다. 그 일은 당연히 하는 거고 '지원'이라는 미명 아래 온갖 잡무들, 쓰잘데기 없는 일들, 교사들이 안 하고 넘긴 일들, 그동안은 교사들의 승진점수에 반영된다고 계속 교사들이 해오다가 승진점수 항목에서 빠지자 고스란히 행정실로 배분된 업무들...


무의미했고 어떤 보람도 없었다. 그런 업무 분장 때문에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있는 날은 온종일 기분을 잡쳤다.



교행직의 한계였다. 학교에서 우리는 주류가 아니다. 주류는커녕 작은 물줄기 조차 되지 못하고 작게 고인 물 정도..? 학교의 중심은 학생교육이고 교사들이 학생교육을 주도하고 있고 우리는 그 일을 보조하고 지원하고 서포트하고... 그 '보조, 지원, 서포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 와중에 공무직은 노조를 통해 보호받는다. 작은 이슈라도 있으면 '이 업무는 공무직에게 시키면 안 됩니다. 땅땅땅.'하고 노조에서 부리나케 공문을 뿌린다. 솔직히 부러웠고 자괴감이 들었다. 한때 유행했던 '내가 이러려고 ㅇㅇㅇ을 했나?' 대사가 절로 나왔다.



나는 공무원으로서 내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다 보면 이것도 행정실에서 해야 하고 저것도 행정실에서 해야 하고 행정실에 일이 넘쳐나고. 그렇게 한다고 보람은 있나? 의미는 있나? 그저 '덕분에 일처리 잘 됐어요. 주무관님,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인사에 감지덕지해야 하고 '일 잘하는 사람' 타이틀에 나 혼자 만족하는 거..



일부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서 만족과 보람을 느낀다. 아이가 교육을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반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그 과정이 쉽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고. 이것도 친한 선생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애들을 가르치는 일은 좋지만 오히려 그 외적으로 행정적인 잡무가 많아서 회의감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았다.



행정실은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들도 같은 학교 교직원, 하루종일 하는 일도 큰 범주로는 (학생교육활동의) 지원.


허무했고 지긋지긋했다. 너무 자주 딜레마에 빠졌다. 내 업무를 열심히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다 보면 나한테만 일이 몰리고, 사무적으로 적당한 선에서 내 업무만 대충 처리하자니 내 양심에 어긋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이렇게 행동하고 후회하고 저렇게 행동하고 내내 불편했다.



그게 교행직 공무원을 그만두는 순간에 주요하게 작용했던 면직 이유였다는 생각이 일을 그만두고 조금 지나서야 정리가 되었다.



오늘 어떤 댓글을 읽고 공감하여 조금 흥분해서 글을 썼는데 나는 일을 그만두고, 사실 마음속에 있던 독이 많이 빠졌다. 그땐 매일매일 누군가 미웠고, 공문 하나에 손이 벌벌 떨리기도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그런 일을 여러 번 당하다 보니 약간의 트라우마(?) 증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화가 날 일은 아니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학교에선 내가 쌈닭이 된 것 같았는데 지금은 둥글둥글 돌멩이가 된 것 같다. 미운게 별로 없고 예전을 생각하면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추억이 많다.



그럼에도 내가 블로그에 교행직 면직 이야기를 쓰고, 면직상담(?)도 하고, 브런치에도 올린 글이 2주가 넘도록 '요즘 뜨는 브런치북 10' 순위권에 떠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교행직 분들의 댓글과 메시지와 메일을 받고 있어서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분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 남들은 공무원 중에서도 제일 편하다고 하고 하는 일이 없다고 하고 워라밸이 좋다 하고 꿀빤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종종 피어나는 교행직의 억울함과 분노와 깊은 빡침을 여전히 알고 있다. 어쩌겠냐고, 이 자리에서 또 열심히 하고 즐겁게 하고 버텨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교행 블로그도 있지만 나는 그냥 그 별것 아닌 일이 힘들어서 그만둔 사람도 여기 있다고, 그만두고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를 깊게 떠올리는 날엔, 그만두고도 아직 못 그만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분노의 댓글을 달아준 분에게 위로를 전한다.


주말이니까 다 잊고 맘 편히 쉬세요.



(교사나 공무직을 비난하고자 쓴 글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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