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은 필요 없어요.
나는 얼마 전 15년간의 직장 생활을 끝냈다.
마지막 퇴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내게 남편이 퇴직선물 하나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갖고 싶은 거 없냐고 물었다.
그런 생각이 있으면 말없이 준비해서 짠~하고 내밀었어야지.
역시 '전국 말만 잘하는 남편 협회장'답다.
"명품백이라도 하나 사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가방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아니면 뭐 목걸이나 반지 같은 거라도.."
“끼고 나갈 데도 없는데. 내가 필요한 거 생기면 살게~"
그렇게 대화를 끝낸 지 넉 달 정도가 지났다.
"여보~ 나 퇴직기념 선물로 아이패드 하나 사도 돼?"
"아이패드? 왜?"
"왜긴. 사고 싶으니까."
"그래. 아이패드 괜찮네. 좋은 걸로 사~"
갑작스러운 아이패드 이야기에 남편의 표정과 대답은 일치하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허락도 받았고.
근처 코스트코에 가서 전시된 아이패드 9세대, 10세대, 미니, 에어, 프로 모델별로 구경하고 집에 와서 최저가로 검색해 보았다. 아이패드라고 다 같은 아이패드가 아니네. 사양도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저렴한 건 40만원부터 비싼 건 200만원 가까이 되었다. 돈 아끼려고 넷**스, 쿠*와우도 다 해지했는데… 내가 전문적으로 태블릿이 필요한 사람도 아니고… 업무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검색을 해볼수록 마음은 아이패드 프로로 기울었고(자, 이제 합리화를 시작해보지.) 나는 한번 사면 오래 쓰는 스타일이니까… 글 쓰거나 그림 그릴 때 쓸 수 있으니까… 아이랑 같이 쓸 수도 있고...
'에잇. 퇴직 기념 선물인데... 이 정도는 살 수 있어!'
인터넷 최저가로 검색해서 바로 주문 완료.
이틀 후, 아이패드프로 11인치가 내 손에 들어왔다.
아… 영롱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패드병에 걸리면 사는 거 말고는 답이 없다고 했나 보다. 나야 병에 걸리기도 전에 주문해 버렸지만...
아이패드는 처음이라 아직은 낯설지만 전자기기는 그저 새 제품이면 너무 좋고 볼때마다 뿌듯하고. ㅎㅎ
나의 첫 스마트폰은 아이폰4였다.
3년 가까이 썼지만 난 아이폰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10년 넘게 갤럭시폰만 썼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의 장점으로 꼽는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함도 나에게는 ‘불친절함’으로 느껴졌고 파일을 백업하는 것도 불편했고 문자판도 익숙지 않고. 그냥 나랑 안 맞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갤럭시탭이 아닌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요즘 아이인 초4 아들과 나중에 너무 디지털격차가 벌어지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무조건 애플이라는데…) 아직은 낯설고 화면이나 메뉴가 손에 익지 않아서 버벅대고 있다.
쓰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제목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