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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싫은 날

'오늘 출근 안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by 유난

유독 출근하기 싫은 날이 있다.

물론 출근하기 좋은 날은 없었지만 따르르릉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겨우겨우 눈을 뜨고도 한참을 이불속에서 눈만 끔뻑거리며 '오늘 출근 안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하면서 머리를 굴리던 그런 날...



나한테는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지난밤부터 비가 내려 아침이 되어도 날이 밝았는지, 일출 전인지, 일몰 후인지 가늠이 안 되는 어둑어둑한 하늘에 살짝 습한 공기와 추적추적 빗소리가 삼박자를 갖춰 '출근하기 싫다. 출근하기 싫다.' 노래를 부르게 하는 날.



우산을 써도 여기저기 빗물이 튀고, 가끔은 신발 안쪽도 젖고, 길은 막히고, 평소보다 힘들게 출근을 마치고 행정실에서 창밖을 보며 직원들이랑 날씨 토크를 하곤 했다.

"오늘 길 많이 막히지 않았어요? 전 비 오는 날이 너무 싫어요."

"이런 날은 지글지글 전 부쳐먹고 거실바닥에 이불 깔고 누워서 만화책이나 넷플릭스 봐야 되는데."

"맞아요. 맞아요. 딱 그런 날인데.."

그리고 급하게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믹스커피 한잔을 원샷하듯 들이키고 일을 시작했다.



그랬었다.

작년까지는. 작년에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날에는.





오늘의 나는 출근의 의무가 없는 백수이므로.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늘아침 정지영입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오랜만에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 결심한다.



하고 싶었던 거 해야지.


마침맞게 주말에 닭한마리 해먹느라 샀던 부추가 남아있다. 부추를 서걱서걱 썰고 부침가루를 붓고 찬물을 섞어서 부침개 반죽을 만들었다. 냉동실에 오랜 시간 자고 있던 오징어도 썰어서 넣었다.



치이이익.

달궈진 팬 위에 부추부침개 반죽을 한 국자 얹으니 지글대는 기름 소리가 맛깔난다. 냄새부터 맛있다. 반죽을 얇게 얇게 펴서 노릇노릇하게 부쳤다. 아침이니까 딱 한 장만 먹어야지. 요즘 아침과일식한다고 아침에 사과 1/4쪽, 블루베리와 그릭요거트, 허전하면 계란프라이 하나 추가해서 먹곤 했었는데, 아침부터 부침개라니.



지난주에 만들어놓은 달래간장까지 꺼내놓고 바삭한 부침개 테두리부터 먹었다. 순식간에 빈 접시만 남았다. 이제 이불 깔고 누워서 영화한판 때려주면 딱 좋겠지만 오늘은 주 1회 있는 아파트 분리수거일이라 두 팔 걷고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집안일은 언제쯤 끝나는걸까. 해도 티가 안나고, 안하면 금방 쓰레기장이고 어렵다, 어려워.



점심엔 부추 잔뜩 넣고 닭칼국수 해 먹어야겠다.




+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어릴때부터 비오는 날이 너무 싫었어요.

습한 기운, 척척하고 찝찝한 느낌. 거기다가 제가 곱슬머리였는데 비만 오면 앞머리와 정수리부분이 얼마나 꼬실꼬실 미친 머리카락이 되던지...

성인이 된 지금도 비오는 날은 실내에서 비오는 걸 보는 것만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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