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난 May 10. 2023

마지막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아빠의 선택


https://brunch.co.kr/@uuunan/45


아빠는 시한부를 선고받고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다. 몇 년간 해오던 간색전술 시술은 간 상태가 좋지 않아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간이식도 불가했으며, 남은 건 방사선치료와 항암제 복용뿐이었다.


나는 아빠가 항암치료를 선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초기 암이면 모르겠지만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의 항암치료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걸 주변에서 많이 봐왔기에 그저 아빠가 지금 상태(통증은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죽을 것 같은 환자의 모습은 아닌)로 버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남은 건 4개월, 항암제를 복용하면 8개월까지 생명연장도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에 아빠는 희망을 건 걸까.


그때 당시엔 아빠의 그 결정이 내심 찝찝했고, 얼마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땐 '아빠가 항암치료 못하게 뜯어말릴걸.'하고 땅을 치고 후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빠의 결정은 무조건 옳은 선택이었다. 항암제를 복용하지 않고 4개월 후에 돌아가셨다면 임종시점에서 우리(아빠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는 얼마나 애가 타고 후회가 되었을까. 어떤 결정도 어떤 선택도 후회가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때 당시 아빠의 결정은 무조건 정답이다.(정답이어야 한다.) 아빤 8개월에 희망을 걸었고 어쩌면 약간의 기적도 추가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입원한 상태에서 간암이 림프절로 전이된 걸 확인했고 일주일 정도 입원해서 이것 저것 주사를 맞고 항암제 복용을 시작했다. 아빠는 기운도, 식욕도 없다 했다.


아빠, 원래 항암치료가 그렇게 힘들대요.
어뜨케.. 그래도 잘 이겨내야죠. 아자 아자!

지난 몇 달간 어깨 통증이 심해져 계속 잠을 잘 못 이루는 상태라 뼈스캔도 하고 어깨 MRA도 찍었다. 아빠가 그간 너무 아파하셨어서 혹시라도 뼈로 전이된 건 아닌가 내심 불안했는데 다행히 전이는 아니었다. 몇 가지 검사를 더하고 몇 달 치 항암제를 받아서 퇴원했다. 담당교수님이 아빠더러 2주 뒤에 내원해서 항암제가 잘 듣는지 보자고 했다.


아빠는 씩씩하게 걸어서 병원을 나왔다. 누가 봐도 시한부 환자는 아니었다.


예정에 없이 일주일 넘게 입원하느라 밀린 일이 많다며 아빠는 퇴원하자마자 출근을 했다. 어차피 혼자 하는 일 좀 쉬시지... 고집불통 아빠는 가족들의 말을 듣는 법이 없다.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아빠는 체력이 좋다. 술도 좋아하고 등산도 좋아한다. 그래서 간염, 간경화, 간암을 거치면서도 내내 술을 마셨다. '나는 술 안 먹고 오래 사느니, 일찍 죽어도 술 마시면서 살 거야.'라고 노래를 불렀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다음날 칼같이 일어나서 출근하거나 등산하거나 그렇게 철인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나는 아빠가 불사조 슈퍼맨인줄 알았다. 정말 그랬다.



그런 아빠도 항암치료는 힘드셨는지 중요한 일정이나 약속이 있을 때만 잠시 외출을 하고 기운이 없어서 계속 누워계셨다. 점차 식욕도 사라지고 끼니도 때우는 듯 마는 듯 겨우겨우 약을 복용할 수 있을 정도로만 드셨다. 점점 잠만 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친정에 가도 주무시는 모습밖에 못 보고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는 거 아니야? 병원에 연락 안 해봐도 돼?"

"원래 그런 거라는데... 아빠가 알아서 한다고 가만히 있으래."


몸이 힘든지 아빠는 계속 짜증과 화만 내고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리 얘기에도 불같이 화내면서 호들갑 떨지 말고 가만히들 좀 있으라 했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은 숟가락질을 못해서 식탁에 음식을 다 흘렸고 술 취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엄마, 좀 이상해.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증상이 간성혼수 같단 말이야. 담당 간호사님한테 전화해 봐."


엄마의 전화를 받은 간호사님이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심장이 벌렁대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구급차를 불렀다. 아빠는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갑자기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질 수 있는 거야?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아빠, 정신 차려봐요. 지금 병원 갈 거야. 병원 가야 돼. 병원에서 지금 바로 오래."


며칠째 절대 병원 안 간다고 자긴 괜찮다고 성질 벅벅 내던 아빠가 병원에 가겠단다.(아빠 성격에 그 정도면 정말 많이 심하게 아팠던 거다.) 겨우 몸을 일으키더니 쓰러질 듯 휘청댔다. 구급대원이 부축하려는데 아빠가 뿌리쳤다. 혼자 가겠단다. 현관밖으로는 나갔는데 구급차에는 오르지 못했다. 구급대원 두 분이 아빠를 부축해서 구급차에 태웠다. 엄마가 뒤따라 차에 올랐다.


구급차에는 보호자 한 명만 탈 수 있고 나는 아이 어린이집 하원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바로 따라갈 수 없었다.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떠났다. 구급차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쫓으며 빌고 또 빌었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게 해주세요.
아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세요.


'정신차리자. 정신차리자.'

계속 머릿속으로 이 말만 되뇌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우선은 엄마한테 연락오길 기다리고. 아이 하원해서 데리고 있다가. 남편이 오면 애를 두고 바로 병원을 가서. 엄마랑 교대를 하고. 내일 연가를 쓰고. 그리고 또. 뭐하고. 뭐하고.'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고 느꼈다.




며칠 전 두 발로 씩씩하게 병원을 나온 아빠는 퇴원한 지 5일 만에 혼수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갔다.



<제목 사진출저: 넥사바 이미지, 약학정보원.>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