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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Sep 19. 2020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쁜 편지 # 4



당신이 이별을 말할 때 나의 세상은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형태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온 몸의 피가 순식간에 역류하듯 손마디가 저렸고, 심장은 아주 차가워져 한겨울에 쌓인 눈을 만지듯 시렸어요. 그 후로 며칠을 나는 힘겨워야만 했어요. 앞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 어두운데, 내가 잡고 있던 줄은 중간에 뚝 끊어져버려서 나는 손을 버둥버둥거리며 그 암흑 속을 매우 천천히 걸어갔어요. 너무나도 두려웠고, 무엇이 튀어나올까 겁이 나고, 혹시라도 내 눈앞이 절벽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하며 그저 이 어둠이 끝나기를 기도하며 걸었어요. 한참을 걷고나니 어느덧 지나가더군요. 내 마음이 어떻든 말이에요. 어둠에 익숙해져 시야는 흐릿하게나마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고 저 멀리 자그마한 빛이 보이더군요. 저 빛을 품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나는 조금 더 서둘러 걸었어요. 여전히 내 눈 앞은 뚜렷하지 않았고 나는 손을 버둥버둥거렸지만 용기를 내서 더 빨리 걸었어요. 그랬더니 어느덧 나는 눈물이 나올만큼 밝은 빛 속에 들어와있었고, 그 빛은 내가 품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크고 따뜻했어요. 그래요. 나는 오히려 반대로 빛 속에 품어져 있었던 거에요. 뒤를 돌아보니 반대로 어둠이 굉장히 작아져 있었어요. 나는 그 길을 지나온 것이에요. 그러고나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더군요. 맞아요. 나는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 당신도 돌아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제 괜찮아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비가 많이 오네요. 우산 챙겨서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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