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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Sep 25. 2020

정신과 의사는 내게 걱정된다고 말했다.


"차라리 네가 죽었으면 했어. 천천히 식어가는 네 체온을 느끼며 마지막에 나를 떠올리며 미안함의 눈물을 흘렸으면 했어. 아냐, 사실은 내가 죽었으면 했어. 네가 죽어도 네가 준 상처는 나한테 계속 남을 테니까. 근데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내 고통도 슬픔도 전부 느끼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차라리 너보다 내가 죽었으면 했어. 풍문으로 들려온 나의 부고에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으면 했어. 나와 자주 먹던 음식점을 지나칠 때마다 행복해하던 내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추천해준 노래가 우연히 들려올 때마다 내 목소리가 떠오르고, 나와 비슷한 이름을 들을 때마다 네가 멈춰 섰으면 했어. 근데 차라리 그런 것도 모르게 내가 죽었으면 했어. 그냥 다 잊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나만 조용히 사라졌으면 했어."


아픈 이별을 겪은 지 얼마 안 된 나는 내게 상처 준 이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그 말을 제삼자에게 조용히 풀어놓았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고 숨이 턱턱 막혔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죽으면 근데 가족들이 굉장히 슬퍼하지 않을까요?"

나는 커다란 눈물방울을 계속 떨궈내며 덤덤히 말했다.

"그런 걸 신경 썼다면 그 친구도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게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 힘들기 때문에 죽은 거예요. 제가 지금 그래요. 엄마도, 할머니도, 어느 누구도 걱정되지 않을 만큼 미련이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제가 죽더라도 처음엔 힘들지만 우리 가족도 나중엔 괜찮아질 거예요."


저요. 사실 죽고 싶어서 연탄불이라도 사려고 인터넷 주문도 알아봤고요. 타다 놓은 수면제를 먹지 말고 모아놓을까, 애매하게 깨는 건 아닐까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요. 근데요, 저 사실 알아요. 저 죽을 용기 없어요. 제가 만약 정말 죽고 싶다면 저는 그냥 한강에 뛰어들면 돼요. 전 수영을 못하거든요. 저는 지금 죽을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하는 거예요.


말을 아낀다.


"정말 아무 미련이 없어요?"

"네. 하느님이 나타나 아프지 않게 자다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죽을 거냐고 물어보시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할 거예요."


의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픈 이별들을 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별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아픔이라지만,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너무 현실적인 문제였다. 약을 먹는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였다면 나는 하루에 100알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약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저는 환자분이 너무 걱정돼요."

의사는 잠시 고민 끝에 걱정된다고 말했다. 우울 수치가 높아서 위험하다거나 약의 복용을 늘려야겠다거나 그런 전문의로서의 말이 아니라 내게 인간 대 인간으로 걱정된다고 얘기했다. 고개를 들어 의사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말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중년의 여성인 그 의사에게서 얼핏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그 한마디에 나는 괜스레 눈물이 더욱 흘렀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냥 가득가득 쏟아냈다.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나는 끅끅거리며 한참을 울었다. 의사는 책상 위의 휴지를 뽑아 내게 건넸다. 의사도 말을 아꼈다.


사별 증후군, 그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안장애. 내게 붙은 병명이었다. 의사는 내가 죽으면 정말 남은 사람들이 괜찮을 거 같냐고 말했다. 나의 죽음에 내가 사랑하는 엄마와 할머니도 따라 죽으면 어떡할 거냐고, 정말 혼자만 그렇게 죽는 게 끝일 거 같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맞다. 내가 죽으면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충분히 잘못된 선택을 하실 수 있다.


"나는 환자분이 조금 더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왜 더 살아야 하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돌아올 대답을 알고 있었다. 좋은 날이 올 거니까요. 알고 있다. 언젠가는 기적 같은 좋은 일은 아니더라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버틸 힘이 내게는 없다고 느꼈다.


사별 증후군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다. 죽음이 너무나 쉬워 보이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낸 사람이 있다면 그 영향이 꽤나 크게 미친다고 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도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나의 죽음이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면, 나의 행복 또한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해하면 그들도 행복 해할 테니까.


병원을 나온 뒤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눈물이라도 있는지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는 내게 의사와 똑같이 말했다. 살아야 한다고, 버텨야 한다고,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나는 살아야 한다. 오늘도 남김없이 나의 몫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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