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그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쁜편지 # 5
아주 가끔은,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그냥 너와, 그때의 나, 5살의 기억,
우리 엄마, 할머니, 그 날 건넜던 신호등.
잔잔한 적은 없었지만
큰 바람이 불지는 않았을 텐데.
이러한 것들은 수면 위로 아프게 떠오른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파도를 만들어낸다.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인연은 피해서 돌아간 길에서도 만난다고."
얼마 전 이별한 친구가
조금 더 빨리 이별한 나에게 헤어짐을 토로한 날.
친구에게 그렇게 위로하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말.
'나는 네가 그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면,
그거 내가 해봤는데 정말 못할 짓이야.
잔인하게도 기대는 상대방을
더 악당으로 만들 뿐 아니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단두대처럼
내 목에 시퍼런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 시간일 뿐이야.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랑을 다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잖아.
요즘 백세 인생이라는데 그중에 절반,
아니 3분의 1도 살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사랑이 뭔지,
인연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어.
그냥 나이가 먹을수록 이 정도 했으면
사랑이겠거니 하는 것뿐이지.
헤어지면 인연이 아니겠거니,
헤어지지 않는 동안은
이 사람이 내 인연이겠거니.
다 알면 좋겠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사람을 용서하는 일에 대해
내게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
용서를 한다는 것은 사실은
그 사람을 한 번도 원망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야.
그건 용서가 아니라
그저 그 아픔에 무뎌진 것뿐이야.
자세히 봐, 흉터는 여전해. 보이지?
혼자 있지 않지만 혼자인 것 같다.
내 꿈을 꾸었으면.
날 혼자 두지 말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