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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Sep 29. 2020

나는 네가 그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쁜편지 # 5



아주 가끔은,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그냥 너와, 그때의 나, 5살의 기억,

우리 엄마, 할머니, 그 날 건넜던 신호등.

잔잔한 적은 없었지만

큰 바람이 불지는 않았을 텐데.

이러한 것들은 수면 위로 아프게 떠오른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파도를 만들어낸다.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인연은 피해서 돌아간 길에서도 만난다고."

얼마 전 이별한 친구가

조금 더 빨리 이별한 나에게 헤어짐을 토로한 날.

친구에게 그렇게 위로하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말.

'나는 네가 그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면,


그거 내가 해봤는데 정말 못할 짓이야.

잔인하게도 기대는 상대방을

더 악당으로 만들 뿐 아니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단두대처럼

내 목에 시퍼런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 시간일 뿐이야.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랑을 다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잖아.

요즘 백세 인생이라는데 그중에 절반,

아니 3분의 1도 살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사랑이 뭔지,

인연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어.

그냥 나이가 먹을수록 이 정도 했으면

사랑이겠거니 하는 것뿐이지.

헤어지면 인연이 아니겠거니,

헤어지지 않는 동안은

이 사람이 내 인연이겠거니.


다 알면 좋겠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사람을 용서하는 일에 대해

내게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

용서를 한다는 것은 사실은

그 사람을 한 번도 원망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야.

그건 용서가 아니라

그저 그 아픔에 무뎌진 것뿐이야.

자세히 봐, 흉터는 여전해. 보이지?


혼자 있지 않지만 혼자인 것 같다.

내 꿈을 꾸었으면.

날 혼자 두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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