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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Sep 06. 2020

이름 세 글자의 무게



나의 이름은 '높은 곳의 별처럼 반짝여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보통 보배 진(珍)을 많이 쓰는데 나의 이름에는 별이 담겨있다. 나는 나의 이름이 맘에 들었다. 굉장히 흔한 이름이지만 이름의 뜻은 너무나도 반짝거렸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간다. 그 이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나를 부르는 타인의 목소리에 애정이 담겨있든, 미움이 담겨있든 나의 이름은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무게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름이 증오의 단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 상처 받은 사람들은 비슷한 이름만 봐도 치를 떨 테니까. 내가 그랬다. 나를 배신하고 떠나간 사람들의 이름에 몸서리치고 비슷한 이름만 봐도 마음이 저려왔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겐 자연스레 색안경이 씌워졌다. 어떤 이름은 영원히 추억으로 남지만, 어떤 이름은 영원히 아픈 이름으로 남는다.


미움을 받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색깔이 남는다. 그 색은 숨길 수 없다. 타인에게 받은 미움을 아무리 지우려 해도 그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남아 잊고 살 수 없다. 쉽게 말해 죄짓지 말고 살라는 소리다. 죄책감은 생각보다 길게 남는다. 우리는 그 죄책감으로부터 평생 도망칠 수 없다. 선명한 색을 띠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일 뿐, 우리는 영원히 죄책감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다. 남에게 준 상처는 본인에게 그대로 돌아온다. 똑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상황으로 돌아오든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준 그 순간부터 나의 이름에는 부정적인 색깔이 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느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준 가해자였을 것이다. 아니, 틀림없다. 그래서 나의 이름은 순백색을 띠지 않고 얼룩덜룩 무언가 묻어있다. 내가 타인에게 준 상처는 돌고 돌아 어느 순간 나에게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의 몫만큼 똑같이 아파해야 했다. 어쩌면 그 고통의 절반일 수도, 그 고통의 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피해자가 된다. 마치 바람개비처럼, 처음과 시작이 어딘지 모르게 빙글빙글 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살아가면서 어떻게 어느 누구에게 상처 주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간단 말인가. 그러나, 적어도 나의 이름의 무게를 느낀다면 타인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아니라 흠집 하나로 끝날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에게 없어졌으면 좋을 이름이 아니라, 반짝반짝 은은하게 빛나는 이름 세 글자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이름이 어느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남아 떠올려도 아프지 않을 이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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