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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Jan 22. 2021

10년 만에 이불 커버를 바꿨다

10년이었다. 10년 만에 이불 커버를 바꿨다. 지금 나의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낡은 여관방에 붙어있을 법한 촌스러운 꽃무늬 벽지, 그마저도 군데군데 뜯어져 있다. 천장의 모서리 쪽은 물이 샜던 자국이 있다. 6 평남 짓 작은 나의 방. 누렇게 변해버린 냉장고와 조리대.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싫어한다는 체리 몰딩. 이런 집에 50만 원의 월세를 내며 살아온 지 벌써 4년째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보드라운 이불을 좋아했다. 극세사가 아닌 면의 보드라운 감촉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여름에도 까끌까끌한 이불 대신 두꺼운 면이불을 덮었다. 이불은 금방 때가 타고 헤졌지만 온 몸을 감싸는 그 감촉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을 때, 할머니는 직접 나를 데리고 가게에 가서 내가 하나씩 이불을 만져보고 원하는 것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나이가 조금씩 먹을수록 이 조그마한 집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데리고 올 수 없었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지인들조차 데리고 오지 않으니 이 조그마한 공간은 오롯이 나의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집에 있을 때면 우울해지는 것을 느꼈다. 촌스러운 이불 커버와 보험 사은품으로 받은 라텍스 베개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조금씩 나의 집을 내 취향대로 바꿔야겠다 싶었다.


내가 이 결심을 하기까지는 조금 오래 걸렸다. 별 것 아닌 돈도 나는 쓸 여유가 없었다. 꽤나 큰돈이 매달 부모님의 대출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게 침구 세트를 산다는 것은 고작 몇만 원의 돈이었지만 큰 변화였다. 몇 달 전부터, 아니 꽤 오래전부터 나는 집을 꾸미고 싶어 했다. 컴퓨터의 즐겨찾기에는 내가 사고 싶어 했던 인테리어 소품들의 사이트가 즐비해있었다. 하나씩 나의 공간을 정리하기로 했다.


금방 또 바래지고 낡겠지만 새로 산 침구세트는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주었다. 연한 파스텔톤의 분홍색 이불 커버. 체리 몰딩과 초록색 꽃무늬 벽지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후 내가 이 집을 나가게 되면 흰색의 깨끗한 벽지가 발라진 집으로 이사하겠노라 마음먹게 했다.


고작 이불 커버만 바뀌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난 꾸준히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작은 변화로 인해 큰 결심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이 모여 행복해지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아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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