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었다. 10년 만에 이불 커버를 바꿨다. 지금 나의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낡은 여관방에 붙어있을 법한 촌스러운 꽃무늬 벽지, 그마저도 군데군데 뜯어져 있다. 천장의 모서리 쪽은 물이 샜던 자국이 있다. 6 평남 짓 작은 나의 방. 누렇게 변해버린 냉장고와 조리대.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싫어한다는 체리 몰딩. 이런 집에 50만 원의 월세를 내며 살아온 지 벌써 4년째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보드라운 이불을 좋아했다. 극세사가 아닌 면의 보드라운 감촉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여름에도 까끌까끌한 이불 대신 두꺼운 면이불을 덮었다. 이불은 금방 때가 타고 헤졌지만 온 몸을 감싸는 그 감촉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을 때, 할머니는 직접 나를 데리고 가게에 가서 내가 하나씩 이불을 만져보고 원하는 것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나이가 조금씩 먹을수록 이 조그마한 집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데리고 올 수 없었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지인들조차 데리고 오지 않으니 이 조그마한 공간은 오롯이 나의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집에 있을 때면 우울해지는 것을 느꼈다. 촌스러운 이불 커버와 보험 사은품으로 받은 라텍스 베개는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조금씩 나의 집을 내 취향대로 바꿔야겠다 싶었다.
내가 이 결심을 하기까지는 조금 오래 걸렸다. 별 것 아닌 돈도 나는 쓸 여유가 없었다. 꽤나 큰돈이 매달 부모님의 대출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게 침구 세트를 산다는 것은 고작 몇만 원의 돈이었지만 큰 변화였다. 몇 달 전부터, 아니 꽤 오래전부터 나는 집을 꾸미고 싶어 했다. 컴퓨터의 즐겨찾기에는 내가 사고 싶어 했던 인테리어 소품들의 사이트가 즐비해있었다. 하나씩 나의 공간을 정리하기로 했다.
금방 또 바래지고 낡겠지만 새로 산 침구세트는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주었다. 연한 파스텔톤의 분홍색 이불 커버. 체리 몰딩과 초록색 꽃무늬 벽지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후 내가 이 집을 나가게 되면 흰색의 깨끗한 벽지가 발라진 집으로 이사하겠노라 마음먹게 했다.
고작 이불 커버만 바뀌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난 꾸준히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작은 변화로 인해 큰 결심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것들이 모여 행복해지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아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