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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Jan 13. 2021

나는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예능의 한 장면을 보았다. 젊은 시절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설문 조사한 내용을 맞추는 장면이었다. 공개된 대답들은 참 먹먹해지는 답들이었다. 



나는 보지 못했던, 그리고 영영 볼 수 없는 우리 엄마의 젊은 시절. 나의 나이로 돌아간 엄마를 앞에 두고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역시나 많이 닮은 모습과 주름 없는 피부, 검게 그을리지 않은 뽀얀 피부, 거칠지 않은 부드러운 손과 생기 어린 그 눈빛. 상상만 해도 젊은 날의 엄마는 눈부시다.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온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 비록 엄마가 나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키워주지 않았더라도, 내게 다정한 말과 사랑한단 표현이 없었더라도, 그놈의 돈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그래도 나는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 엄마도 그래 왔으니까. 말도 못 하는 갓난아기였던 내가 새벽 내내 으앙 울어대도 학대 한 번없이 잘 키워왔으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저 시간의 너머에 나의 볼에 입을 맞춰주었고, 돈 없다며 안된다 하여도 결국은 그 운동화를 신겨주었으니. 나는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자주 하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내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달아나고 싶은데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자꾸 그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밥 먹을 돈이 아까워 점심을 거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주룩 심장에서 피가 쏟아진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자꾸 나는 화를 내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외로워지고, 따스해진다. 그 모든 것은 어떠한 한 곳으로 모여 뜨거운 액체로 떨궈진다.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어떨 때는 도망가라고 얘기하고 싶다가, 제발 내 곁에 있어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내게 왜 이런 짐들을 주었느냐고 밉다고 소리치고 싶다가, 그래도 나는 엄마가 있어서 버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밖에 없지'라고 얘기하면서 '나도 엄마밖에 없어'라고 얘기하고 싶고, 이제는 행복만 하자고, 아프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다.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 엄마에게 비싼 패딩과 털부츠를 신겨주고 싶고, 남부럽지 않은 명품백을 들려주고, 그 거칠었던 손에 새빨간 네일아트를 해주고 싶다. 소고기를 사주며 맘껏 먹으라 하고 싶고 사이드 걱정 말고 맘껏 시키라고 하고 싶다. 아니, 사실은 그냥 오붓하게 손 붙잡고 단둘이 쇼핑을 가고 싶다. 가서 엄마에게 새하얀 블라우스와 부드러운 캐시미어 목도리를 사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 아직 엄마에게 받지 못한 것들도, 엄마에게 해주지 못한 것도 많이 남았기에.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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