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이로 Dec 25. 2020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참 고요합니다. 특히나 이번 겨울의 크리스마스는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나의 겨울은 항상 사람이 북적북적한 날들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구들과 만나 맛집을 가거나 예쁜 카페에 들어가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혹은 연인과 함께 푸드트럭이 잔뜩 즐비해있는 축제에 가서 추운 날 손을 오들오들 떨면서 이것저것 요리를 맛보았던 기억도 있네요. 12월의 마지막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10대일 적엔 친구들과 매년 시청에서 모였습니다. 그곳에선 초대가수의 노래를 듣고 무료로 나눠주는 어묵을 사이좋게 나눠먹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의 겨울은 항상 사람의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연인도 없고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올해의 겨울은 참으로 고요할 것 같습니다. 본가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한데 혹시나 운이 나빠 잘못된다면 그게 나만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올해는 정말 조용히 보내기로 했습니다. 나의 어여쁜 고양이와 말이죠.


그렇다고 마냥 외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거든요. 크리스마스 연휴 때 볼 영화와 드라마를 정해두었습니다. 감명 깊게 읽었던 책도 다시 읽을 거고요, 방 안에서 먹을 호두파이와 간식거리도 잔뜩 사두었습니다. 벽 한쪽에는 꼬마전구를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으로 예쁘게 달아두었습니다.


사실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면 사람 마음은 더욱 부풀어져서 기대를 채우기에 급급 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특별한 날이니 상자를 더 큰 걸 준비해두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나는 큰 상자를 준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상자라도 예쁘게 꾸며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향기 나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언젠가 열어보았을 때 잔향이 살포시 내 콧등에 내려앉는 그런 추억 말입니다.


추억은 내가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다릅니다. 아무리 좋은 추억이어도 내가 하찮게 생각하거나 나쁘게 기억한다면 그건 영원히 나에게 썩 기억에 남기도 싶은 추억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이라도 내가 기쁘게 기억한다면 그 날은 내게 반짝거리며 아름답게 남을 겁니다. 어릴 적 듣던 캐럴처럼 말이에요.


특별한 날에 혼자인 우리는 지금 조금은 외로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이 시간을 기뻐할 가족과 친구들, 그 생각만으로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날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웃으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면 너무나도 좋겠지요. 그때에는 내가 사랑하는 어느 누군가와 커다란 트리 앞에서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너무나도 낭만적일 것 같네요.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고양이에게 사과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