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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Dec 21. 2020

나는 고양이에게 사과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조그마한 원룸. 그 안에서 나는 고양이와 단 둘만이 가족이다(물론 사람 가족은 다른 지방에 있다). 어느 날, 나에게 덜컥 맡겨진 이 조그마한 고양이는 순식간에 나의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를 키울만한 여건이 안되었던 나는 이 하얀 털북숭이 고양이를 입양을 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더 넓은 집 가서 비싼 원목 캣타워에 위에서 그릉그릉 거리며 살라고. 그렇게 다짐한 날 잠들려는 나의 곁에 고양이가 다가왔다. 기분 좋을 때만 내는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나의 팔을 베고 누웠다. 따스했다. 이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내면 이 아이는 두 번이나 가족에게 버려지는 것이라고 느꼈다. 조그마한 집이라도, 비싼 원목 캣타워는 없어도 지금 나의 팔을 베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이 아이에게 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 아이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같이 산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사료도, 간식도, 화장실 모래도 가리지 않고 아픈 곳도 없었다. 잠도 잘 자고 놀기도 잘 놀았다. 애교가 늘어 나의 무릎을 베고 눕기도 하고, 나의 품에 아기처럼 안기기도 했다. 너무 예뻤다. 이 아이에게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 아이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가만히 품에 안고 눈을 맞출 때면 나도 모르게 사랑한단 말이 나왔다.


며칠 전, 목덜미 쪽에 땜빵이 생겼다. 불안한 마음에 반차까지 쓰고 동물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닌 것 같지만 무심코 들여다본 귀 속에는 진드기가 잔뜩 퍼져있었다. 충격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쩌면 귀가 항상 간지러워서 지금 피부가 좋지 않은 곳에 간지러움을 덜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약을 바르고 소독약을 받아왔다. 상태를 좀 두고 보고 다시 병원에 내원하기로 했다. 그때 느꼈다. 아픈 게 아니라, 사료가 마음에 든 게 아니라 어쩌면 그저 말할 수 없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미안했다.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서 나의 고양이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다음엔 이 아이를 안을 때마다 사랑한단 말 대신 미안하단 말이 자꾸만 나왔다. 물론 큰 병은 아니지만, 내가 이 아이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수다도 없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내게 애정만큼은 표현하던 아이였다. 누가 물으면 나는 내 딸이라고 할 만큼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 아이가 나 때문에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 그제야 마음 깊숙이 와 닿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 아이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돌아가는 그 날에, 나는 그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한번 더 와 닿는 그 순간, 그리고 이별의 무게를 느낀 그 순간에 나는 이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눈을 맞추고, 더 세심하게 돌봐주고.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만 느끼다가 우리가 이별하는 날 표정이 없는 이 아이가 옅은 미소를 뗬으면 하는 맘으로.


나의 고양이, 나의 가족, 나의 보물. 언제나 나는 너를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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