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한국이 제일 좋아. 여보 치킨 시키자!
글 쓰는 오늘, 2020. 1. 7.(화)
오랜만에 브런치를 다시 켰습니다. 베를린에서 처음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고 10일 정도 미친 듯이 글만 쓰다가, 한 달 하고도 10일 넘게 지나서야 다시 글을 씁니다. 베를린 다음으로 여행한 탄자니아에서는 글을 쓰기에는 아프리카에 있다는 사실이 절 너무 흥분시켰었죠. 아프리카 여행이 끝나고 러시아에 잠깐 머물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도착한지는 2주 정도 되었는데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 친구들과 만나느라 바빴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글쓰기를 미루다 보니 어느새 2020년이네요. 앞으로는 조금 더 글을 자주 써야겠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요. 오늘은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가볍게 한국에 돌아온 소감(?)을 써봐야겠습니다.
아마 세계여행을 다녀오는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에게도 인천공항에 가득한 한국의 정취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곳곳에 쓰인 한글, 옆에서 들려오는 한국말, 왠지 모를 익숙한 냄새. 6개월간 낯선 곳에서 잔뜩 긴장해야 했던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누그러뜨렸습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10개가 넘는 공항을 지나갔지만, 인천공항은 역시 세계 제일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이점을 빼더라도 인천공항은 객관적으로 매우 좋은 공항입니다. 공항이 넓어서 쾌적하면서도 동선이 잘 짜여있어 길 찾기가 어렵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출입국시스템! 이것은 입국심사를 해야 하는 외국인들은 다를 수 있지만,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정말 꿀 같은 시스템이죠. 한국으로 들어오기 바로 직전 환승하기 위해 들렀던 러시아의 이르쿠츠 국제공항과 비교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이르쿠츠에서는 짐 검사만 무려 3번을 했고, 거의 100명이 넘는 사람이 단 세 개의 출국심사대로 통과해야 했어요. 하지만 인천공항에서는 여권 스캔하고 지문 찍고 앞 카메라를 향해 미소 한 번 지어주면 끝.
입국하고 짐 찾는데 까지 걸린 시간이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최근 오픈한 입국 면세점에서 양가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서 나오니 미리 예약한 버스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유럽의 느긋한 시간(느긋한 이라 쓰고 느린 이라 읽는다)에 익숙해진 우리는 별생각 없이 도착 예정시간보다 세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예약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빠른 속도를 그새 잊은 거죠.
한국에 와서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보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하면 아재인가요) 단언컨대 야식 배달입니다. 발리나 치앙마이에서는 한국 못지않게 배달이 잘 되긴 합니다. 'GRAB'이라는 어플이 유명하죠. 하지만 유럽의 음식점은 배달도 잘 안 할뿐더러 야식 배달은 정말 드물어요. 저녁이면 다 문을 닫아버리죠. 탄자니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지역마다 배달이 가능한 곳도 있습니다)
설령 배달이 된다고 하더라도 어플을 새로 다운받아야 하고, 카드 등록도 새로 해야 합니다. 어플이 아닌 전화 주문이라면 일단 어색한 외국어로 주문을 해야 한다는 용기를 먼저 내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낯가림이 심해 전화 주문을 잘 못하는 짝꿍은 용기를 두배로 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카드는 받아주는지, 현관까지 배달이 오는지, 아니면 받으러 나가야 하는지 이것저것 고민하다 보면 야식 타이밍을 놓치게 됩니다. (사실 야식 타이밍이라는 건 없어요. 늘 먹고 싶은 게 야식입니다. 전 용기가 부족했어요...)
집에 내려와 짐을 풀고는 바로 배달의 민족 어플을 켰습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에 수 없이 많이 주문해봤겠지만, 6개월 만에 쓰려니 처음에는 좀 어색하더라고요. 업데이트되면서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조금씩 보다 보니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랬죠. 하지만 마치 기억상실 걸렸다가 기억이 돌아온 것 마냥, 모든 것들이 떠오릅니다. 이미 어플에는 내 집 주소가 등록되어 있었고, 카드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할 것은 어느 음식을 주문할지 결정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띠링. (실제로 소리는 안 나지만 왠지 난 것 같은 카카오페이 결제 화면) 카카오 페이 화면이 뜨고 지문을 인식시켜주니 배달이 완료되었다는 카톡이 날아옵니다. '아, 그래 이거지. 원래 내가 이런 곳에 살았지.'
오늘 우리가 주문할 음식은 바로 양념치킨. 세계 곳곳에서 숱하게 많은 닭요리를 먹었지만, 닭요리의 최고봉은 한국의 양념치킨입니다. 절대 질기지 않은 쫀쫀한 살코기와 바삭하게 튀겨진 튀김옷 그리고 튀김 위에 입혀진 맛의 완성, 달콤한 빨간 양념. 거기에 살짝 매운기가 입에 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한국의 양념치킨 아닙니까.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다른 나라 치킨은 먹지 못하는 몸이 됩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이 가장 좋은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월 초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2주 당겨 크리스마스 전에 한국에 돌아온 것은 순전히 보고 싶은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20대의 마지막 연말이기도 했고, 왠지 이 연말을 외국에서 보내면 쓸쓸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도 하지만, 새로운 만남은 뜻밖의 즐거움과 동시에 피곤함을 주기도 하죠. 영어로 깊이 있는 의사소통을 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할 때는 입에 고구마를 왕창 때려 넣는 것 같은 답답함이 듭니다. 한국 사람을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은 언어의 장벽이 아니더라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아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죠. 아무래도 연말에는 굳이 이것저것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들이 필요한 법입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거의 대부분 그대로 이더라고요. 우리 부부야 이곳저곳 다니면서 늘 새로운 삶을 살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일상이었을 겁니다. 여행이라고 하면 6개월이 긴 시간이었겠지만 일상에서는 6개월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니까요.
처음 우리를 만나면 다들 궁금한 것들을 쏟아냅니다. 우리의 이야기에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6개월간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며 근황 업데이트를 마치고 나면, 이내 우리가 언제 여행을 갔었냐는 듯 일상으로 우리를 끌어줍니다.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요. 6개월 전에는 벗어나고 싶었던 일상들이 지금은 포근함으로 다가옵니다. 아마도 우리가 떠돌다 돌아와도 반겨줄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자유롭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제 다시 이 일상들이 지겹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포근한 일상을 한껏 느끼고 싶네요.